<괴물이 없는 마을>은 ‘움직임 음악극’을 표방하고 있다. ‘그림’의 전작들보다 더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자 하는 듯하다. 그러나 음악과 무용과 극의 장르적인 호흡은 본래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가 관건이 된다. 이날 공연은 아직 이 장르들이 치열하게 부딪혀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지는 못한 것으로 보였다. 스토리의 전달을 위해 삽입한 대사들은 충분히 설명적이지도, 아름답게 은유적이지도 않았다. 또한 이 대사들을 직접 발화해야 했던 무용수는 배우와 춤꾼 사이에서 표류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움직임에도 몰입하지 못하게 했다. 각각의 음악은 좋았으나 시종일관 같은 편성으로 짜인 구성은 쉽게 지루함을 불러일으켰고 음향 또한 너무 크게 확성되어 피로감을 주었다.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어떤 주제를,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관객은 이것을 짐작하고 파악하며 의심하느라 결국 공연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공연은 막을 내렸다.
‘만남’(협업)의 마법에 기대하는 것
이번에 공개된 <스위트홈> 시즌2도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시즌1이 ‘그린홈’이라는 아파트 안을 주 무대로 했다면, 시즌2는 공간과 등장인물이 확대되고 보다 넓어진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인 듯한데, 그 때문에 이야기의 흡인력이 약하고 템포가 늘어진다는 관객평이 주를 이루는 모양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의 약이자 독이 되는 방법 중 하나로 ‘작품의 제작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연출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시스템’을 꼽는 사람이 많다. 연출자(감독)는 제작자나 투자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있어 매우 선호하지만, PD나 편집자의 의견이 개입될 여지가 적어 관객의 호응을 얻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괴물이 없는 마을>을 끌고 가는 이는 누구였을까? 연출자, 음악감독, 안무가, 제작PD가 서로를 너무 존중한 나머지 서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산업계에서 넷플릭스 등의 OTT서비스를 노골적으로 경계하지만, 공연계 역시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서나 보고 싶은 콘텐츠를 골라서 볼 수 있는 시대에 시간 맞춰 번거롭게 공연장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은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래서 움직임과 극과 음악이 한자리에서 만들어 내는 마법을 눈앞에 보여주고자 한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