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겨울

리뷰|서울남산국악당 [젊은국악 단장] 연희_농악천하지대본 <홑 : 겹>

장윤희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발행일2023.11.27

신세대 풍물패가 보여준
농악의 다채로움

‘농악천하지대본’(農樂天下之大本)은 우리 조상들이 더불어 즐기며 염원을 담았던 삶 속의 소리를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뭉친 6인의 청년 예술가 집합체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 국가무형문화재 진주삼천포농악, 김천금릉빗내농악, 지역문화재인 구미무을농악(경상북도), 정읍농악·고창농악(전라북도) 등 여러 지역의 농악을 배우고 전승해 온 전문연희자들로, 서울남산국악당이 기획한 <젊은국악 단장>을 통해 새롭게 구성한 농악을 선보였다(태평소 임동식, 꽹과리 조예영, 장구 이강희, 양북 김광수, 고깔소고 성유경, 채상소고·징 권우식, 의상디자인·제작 박근여, 소품제작 박혜진).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농악은 지루하거나 촌스러운 음악이 아닐까 하던 의문이 객쩍은 걱정이었음을 깨우쳐 준 신나는 공연이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크고(大) 중요한(本) 주류 문화로 농악이 존재할 수 있도록 전승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입힌 도전적 시도의 무대였다.
 
농악천하지대본 ⓒ 주현우

농악의 다원성을 보여주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농악은 과거 농민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풍농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행했던 공동체적 제반 문화 활동으로, 무속신앙, 마을축제, 세시놀이, 민간연희 등 한국인의 삶 속 여러 부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농악천하지대본은 농악이 지닌 다원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그 신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무대 위에 세워진 농기를 보면서 곧 등장할 연주단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예상과 다르게 관객석의 뒤편에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복을 받기 바란다”라는 축원의 외침과 함께 나타나 관객의 옆으로 다가가며 공연을 시작했다. ‘덩덕 쿵쿵’거리는 타악 장단과 힘차게 울려 퍼지는 태평소 선율에 이어 펼쳐지는 상모돌리기, 연풍대는 판굿의 흥과 보는 재미를 더했고, 색색의 큰 고깔과 화려한 의상은 세련되어 패셔너블했다. 이 농악의 다양성 표출에 일조했다.
이번 공연은 최근의 창작 국악이나 민속공연의 현대화 과정에서 종종 보이는 미니멀리즘적인 요소-절대적 간결함과 단순함의 부여-대신 농악의 요소들을 보태고 쌓아 관객에게 농악이 지닌 여러 면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다음 것을 기대하는 설렘을 선사한 공연이었다.
 

홑과 겹,
따로같이만들어 가는 음악

<홑 : 겹>이라는 다소 난해하게 생각되던 제목은 무대 위의 공연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깨닫고 느낄 수 있었다. 연주자마다 각기 모양과 소리가 다른 악기를 두드리고, 그 울림도 때론 느리고 때론 빠르지만, 그 다름 하나에 또 다른 것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점점 조화롭게 합쳐 “겹”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농학천하지대본 <홑:겹> 공연사진 ⓒ최태연
꽹과리·장구·북·징과 고깔소고·채상소고가 지닌 각각의 연주법과 음색이 주는 묘미는 개인놀이에서 마음껏 뽐냈고, 농악단에서 따로 떨어져 늘 무대 뒤 한쪽 편에서 연주하던 태평소도 무대 가운데로 등장하여 그 소리가 지닌 특성을 오롯이 전달했다. 그러나 느린삼채, 자진삼채, 짝두름 등 장단이 변화할 때마다 동선을 바꾸어 가며 함께 만들어 내는 큰 대형과 합주는 함께 할 때만 가능했다. 연주자 둘이 짝을 지어 서로 마주 보며 손뼉도 치고 뒤돌아 등을 맞대며 밀고 당기는 호흡이 척척 맞는 몸짓을 보고 있자니 관객석에서도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수박치기와 콩등지기를 하며 노는 모습에 관객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추임새를 넣고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농악천하지대본은 ‘마음을 춤추게 하는’ 농악을 꿈꾸고 있다. 이 음악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즐거움을 샘솟게 하고 더불어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흥의 기운을 재생할 수 있을까? 이번 공연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시간이었다.
농악의 어느 하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오늘의 무대 위로 찾아서 가지고 온 젊은 예술가들의 노력과 패기는 농악이 주는 즐거움과 다채로움의 소리를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다음은 무엇이 더해질지 궁금했고, 어떠한 새로운 소리와 변화의 몸짓이 생겨날지 기다려졌다.
자신들 스스로 “미지수의 음악이다”라고 소개했듯이 농악천하지대본의 농악은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변수가 가득한 것이다. 앞으로도 누군가 정해놓은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더하기와 빼기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농악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장윤희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민족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국립호치민대학교에서 한류연구로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에 출강 중이다.
사진제공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