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살짝 살펴보자. 먼저 여러 명이 멋진 춤을 추는 ‘부채춤’과 한 명이 도포에 커다란 부채를 들고 추는 ‘한량무’를 감상하고, 다양한 무늬가 그려진 부채를 색칠하며 나만의 부채를 완성하는 시간, 마지막으로 부채춤 배우기 시간을 가졌다. 자그마한 소반 위에서 부채에 색을 더할 때, 참여자들은 사뭇 진지했다. 아이들은 종알거리며 아빠가 색칠한 호랑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동물을 덧대어 그리기도 하는 등 대화가 쉴 새 없이 오가는 모습에 흐뭇하였다. 부채 하나에도 이렇게 나눌 이야기들이 많아진다.
꽃부채 하나로 ‘통’했다!
이 프로그램의 절정은 바로 부채춤 배우기다. 아이들은 먼저 양손에 부채를 들고 일렬로 줄을 선 뒤 파도를 타보는 활동에 둥글게 말아 커다란 꽃을 만드는 동작을 이어간다. 망아지처럼 이곳저곳 휘젓고 다니던 우리 아이도 줄 서서 부채를 높이 들고 서 있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순간이었다.
여기에 더 굉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부모님이 부채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부채춤 추는 모습에 어떤 아이돌보다도 열광하며 사진으로 담고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라고 크게 외친다. 여기에서 지난 평점이 좋았던 이유가 드러난다. 단순히 아이를 보조하는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군무의 일원이 되어 춤을 추면서 아이와 같은 경험을 한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몸짓에 신이 났고, 부모님도 굉장히 쑥스러워했지만, 아이의 행복한 모습에 역시 즐거워 보였다.
공연자들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주거나 색칠한 부채를 보며 친밀하게 말을 걸어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참여를 주저하는 부모님들께도 칭찬으로 용기를 심어주었다. 또 돌발 상황에서도 아이를 위한 대처가 마음을 빼앗기 충분했다. 실수로 연필통을 엎었을 때, 고운 한복을 입은 언니들이 우르르 달려와 정리해주는 모습에서 아이는 속상한 마음을 풀어냈다. 프로그램에 대한 주인의식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미래세대를 위한 어른의 역할
체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이다. 아이가 운용할 만한 공간을 바닥에 표시해 주는 것만으로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굿거리장단에 맞춰 춤을 춰보는 건 어땠을까. 한국춤 자체가 장단에 몸을 싣는 행위이기에 달크로즈의 유리드믹스(eurythmics)처럼 장단에 맞춰 걷기만 해도 훌륭한 춤이 된다.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좋다. 효과적인 교육 기법을 체험에 조금만 적용해도 꽤 정돈된 프로그램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날씨가 불안정하여 한옥에서 체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부모로서 아이들에게는 지하 연습실이 오히려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전통예술 창작자들이 깊은 사유의 단계 없이 습관적으로 ‘대중화’를 표방한다. 무조건 ‘쉽게’ 만드는 것이 대중화일까? 그렇게 해서 성공한 ‘대중화’가 있던가?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창작자는 그저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내놓는 것이 최선이다. 그게 대중에게 밈(meme)처럼 재생산하는 놀잇감으로써 흥미가 생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통문화는 취향이 아닌 생활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미래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은 ‘무한정’ 전통문화를 제공하는 것이다. 놀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양질의 문화적 재료를 공급한다. 그렇게 내 몸 안에 이식된 전통을 가지고 갖가지 변주를 통해 확장 시킬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의 국악 체험이 미국에서 블랙핑크가 부채춤 안무를 선보였던 것처럼, 방탄소년단(BTS)의 <Idol>에서 ‘덩기덕 쿵 더러러러’를 노래하듯 무엇으로 변신할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