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전통놀이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지만 아쉬운 것은 차츰 동력을 잃어가는 양상이다. 윷놀이, 씨름, 고누, 그네, 연날리기 등이다. 둘째, 전통놀이가 갑자기 소멸되는 양상이다. 장치기, 자치기, 투호, 골패, 투전 등이다. 소멸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놀이도구의 출현과 대체 놀이의 출현이다. 이를테면 투전, 골패, 쌍륙 등은 ‘화투’와 ‘트럼프’라는 놀이도구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이때가 19세기 말이다. 또 하나는 교육적 목적을 가진 신문사, 잡지사에서 외국의 새로운 놀이를 소개하거나 개발하여 보급한 탓이다. 시조놀이의 하나인 가투(歌鬪)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투는 시조 전체를 적은 카드(읽는 카드)와 종장을 적은 카드(바닥에 펼치고 찾는 카드)로 나누되 모두 100수를 선정하여 200장의 카드로 노는 시조놀이다. 1922년 윤태오가 만들었고, 194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사에서도 널리 선전했고, 고상한 취미로 여긴 수많은 여성이 대회에 참여하였다. 시조를 부흥하려는 목적에서 보급된 것이지만 이는 일본의 메이지(明治) 중기 이래 정월민속으로 전래한 가투놀이[歌ルタ遊ピ]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성인놀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당구’이다. 당구는 원래 ‘옥돌(玉突)’이라 불렸는데, 알렌(Horace Allen, 1858~1932, 조선 최초의 선교사이자 의사)의 회고에 따르면 1884년경에 이미 인천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883년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를 적은 <해관세칙(海關稅則)>에 “충구(衝球, 당구공)의 값을 100분의 30으로 관세를 매긴다.”고 했으니 그 이전부터 수입되었음이 분명하다. 순종도 당구를 매우 좋아해서 창덕궁 인정전 안에 ‘옥돌실’(당구장)을 설비하고 즐겼다. 오늘날의 점수로 따지면 150점 정도라니 퍽 잘 쳤던 모양이다. 일제강점기에 외국인들은 옥돌장(당구장)을 여기저기 열었고, 유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당시의 옥돌장에는 옥돌대(당구대)마다 짧은 치마의 신식여성이 배당되어 게임 기록을 맡았다. 이런 역사를 가진 당구는 최근 중·노년층의 인기 있는 놀이로 자리 잡았으나 코로나19 이후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잡지 <어린이>에 소개된 놀이로는 ‘어린이출세말판’(1927년 1월호)과 ‘명산대천 일주말판’(1928년 1월호) 등을 들 수 있다. 때로는 회사의 홍보 차원에서 만든 놀이 말판도 있다. ‘조선명소승경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는 1935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가 만든 것인데, 목적지인 금융조합본부에 도달한 사람이 일장기를 흔들고 있다. 이런 점을 들어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제작된 것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말판 놀이는 오늘날의 판놀이(Board game)에 해당하는데, 주사위나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끗수에 따라 말을 이동하여 최종 목적지를 빠져 나오는 놀이다.
셋째는 유치원, 학교 교육의 영향과 이주 일본인과의 접촉에 의해 퍼진 놀이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체육 활동의 일환으로 새로운 놀이를 보급하였고, 일상에서는 일본 청소년과의 접촉으로 새 놀이가 자연스럽게 향유되었다. 일례로 피구, 훌라후프, 고무줄놀이, 오재미, 주먹야구, 땅바닥 탁구, 깡통차기, 짤짤이 등이다. 고무줄놀이를 할 때에는 노래를 부르기 마련인데, 이때 일본식 창가를 놀이노래로 불렀다. 내용은 일본 군가가 대부분이다. 놀이하는 가운데 절로 황국신민의 자질을 교육(문부성령 소학교 시행규칙)받는 방식이라는 비판받는 대목이다.
주먹야구는 일명 ‘호무랑’(home run 또는 ‘하블러시’)이라 불렸는데, 고무공이나 테니스공 등을 야구공으로 삼고, 배트 대신 주먹으로 공을 치고 맨손으로 받으면서 즐겼다. 깡통차기는 깡통을 발로 차셔 멀리 보내고 술래가 찾아오는 동안 숨고 찾는 놀이로 흔히 ‘겐또바시’라 불렀다. 숨바꼭질의 근대적 변형이다.
그런데 이 놀이는 1914년 잡지 <청춘>(1권 1호)에 ‘고리 옴기기’로 소개되었고, 옮겨야 할 고리 8개의 순서를 차례대로 풀어 놓았다. 누구나 놀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인데, 9개로 늘여 판매되는 오늘날의 하노이탑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필자도 이 놀이를 익히기 위해 ‘열공’하면서 시간을 재보았는데, 9개의 고리를 옮기는 데 10여 분이 걸렸다. 그것도 정신을 집중하면서 말이다. 제법 머리를 개발함직한 수학적 놀이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