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1호   山:門 HISTORY

남산골 야시장으로 ‘긔긔’

윤성진_남산골 한옥마을 총감독, ㈜쥬스컴퍼니 예술감독, 문화학 박사
발행일2020.06.02

‘1890 한양’이라는 컨셉으로 기획된 ‘남산골’ 브랜드 첫 번째 프로젝트 남산골 야시장. 충무로와 명동을 잇는 서울 최초의 가로등길로 ‘불야성’이란 말을 탄생시킨 바로 그곳에서 당신을 그때 그 시간으로 데려간다. 여전하지만 여전하지 않은 새로움 속으로.

2017 남산골야시장 포스터


구한말 야시장으로의 시간여행


이 포스터는 3년 전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처음 열린 ‘남산골 야시장’ 포스터이다. ‘조선 말기 개화기 한양의 저잣거리에서 다양한 음식과 신기한 문물들의 향연이 펼쳐지며 이 시대를 주름잡는 명인들의 공연이 함께한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문구와 함께 옛 한양의 장터인 듯 아닌 듯한 이미지들이 포스터를 채우고 있다. 과연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야시장이 열렸을까? 와본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로 이런 야시장이 매주 열렸다.

전통 장터는 지역의 문물과 이야기, 상품과 놀이가 한자리에 어우러져 펼쳐지는 전통사회 최대의 플랫폼이었다. 사람들은 3일장, 5일장을 통해 사람들을 만났고, 소식을 주고받았다. 물건을 바꾸고 판매하며 일상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한양의 육의전과 같은 상설 장터가 아닌 대부분의 지역 장터는 정기시장의 형태를 띠었다. 3일장, 5일장, 7일장. 장마다 찾아다니는 장돌뱅이들은 지역 장터를 다니며 물건을 팔았고, 이야기를 전했다.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통틀어 이르는 ‘보부상’들은 삼삼오오 또는 큰 상단을 이뤄 전국의 장들을 찾아다녔다. 장터는 전통사회 최고의 핫 플레이스였으며, 세상의 모든 정보가 가장 먼저 유통되는 최첨단의 소통 채널이 되기도 했다. 남산골에 야시장을 연다는 것은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 살거리로 서울을 찾은 방문객을 끌어들여,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과거 한양 저잣거리 풍경을 연출하여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통 장터의 재현 장면 ⓒ 남산골한옥마을

불야성 이룬 밤풍경의 묘미

1890년대 남촌의 장터와 일제 강점기 명동과 충무로에 만들어졌던 야시(夜市)를 결합하여 현대적 감성으로 재현해낸 테마야시장인 ‘남산골 야시장’은 도심에서 숙박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한옥마을로 유도하는 도심 속 테마장터로 시작되었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것처럼 축제장에서 흔히 보이는 MQ천막(몽고텐트)이나 자바라텐트 등을 설치하지 않고, 컨셉에 맞게 디자인된 친환경 부스를 설치하고 모든 상인은 당시 상인들이 입었을 법한 민복을 착용했으며, ‘어서 오시오’, ‘잘 가시오’, ‘무슨 물건을 찾으시오’ 하는 “~하오”체의 말투로 방문객들을 구한말 한양의 장터로 안내하는 타임슬립 테마장터로 연출되었다.
야시(夜市)는 1914년 태평로에서 처음 열렸으며 일제강점기 서울 종로와 충무로 일대의 야시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위 사진은 2019년 버전의 남산골 야시장의 한 장면 ⓒ 남산골한옥마을

판매하는 상품은 핸드메이드 공예상품들과 친환경 농산물과 농가공품, 패션소품과 다양한 먹거리로 구성되었으며, 전통연희 공연과 전통놀이 경연 등의 부대행사로 한옥을 배경으로 한 이색 장터가 만들어졌다. 야시장에 참여하는 상인들은 지역주민, 핸드메이드 작가, 외국인 유학생 현대판 보부상들이 참여하여 활기찬 저잣거리를 연출하였다. 친환경 농산물이 판매되는 날에는 전국에서 상인들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남산골 야시장이 열리는 5월~10월의 매주 토요일에 적게는 50명 이상의 상인들 참여하고, 많을 때는 100개 이상의 부스에 2백 명 이상의 상인들이 손님을 맞으며 지난 3년간 남산골 한옥마을을 대표하는 야간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평소 2천 명 미만이 방문하는 야간시간대에만 5천 명 이상의 방문객이 몰려 불야성을 이루었다. 구한말을 지나면서 1900년대 초 일본인 거류민들은 충무로에서 남대문로까지 길을 닦고 서울 최초의 가로등 길을 만들었다. 그때 사람들은 그 가로등이 만들어낸 밤풍경을 ‘불야성(不夜城)’이라고 불렀다. 밤에 불을 밝히며 좌판을 펼치는 야시장은 바로 한옥마을 앞 충무로와 명동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남산골 야시장은 구한말 한양의 저잣거리 모습과 일본인들이 충무로와 명동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만들어진 구한말 야시(夜市)를 재현하여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구한말 야시(夜市)를 재현한 남산골 야시장 2019 ⓒ 남산골한옥마을

1890의 꿈, 멋, 풍류를 재해석하다

남산골 야시장은 ‘1890 한양’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1890 한양’은 ‘남산골 한옥마을’을 들여다보는 ‘시대의 창(窓)’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만들어진 연출 콘셉트이다. ‘1890년대의 한양’의 창으로 남산골 한옥마을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한말 ‘남산골 ***’의 명칭을 가진 여러 개의 브랜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남산골 야시장이다. 조선 시대 청계천 남쪽으로부터 남산골까지를 일컫는 남촌 일대는 궁궐과 가까운 입지조건 때문에 수많은 대신들의 집이 자리 잡고 있었고, ‘딸깍발이’라고 불리는 유생들이 모여 살면서 입궐을 꿈꾸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기도 했다. 흐르는 계곡과 정자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한여름 남촌의 주민들과 선비들의 피서지로 즐겨 찾던 곳이기도 했다. 청학이 노닐었다고 해서 청학동으로도 불렸으며, 한양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함께 한양 5동으로 손꼽혔다고 한다. 구한말을 지나면서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충무로 인근에 조선통감부가 설치되고 필동 일대는 혼마찌(本町)란 이름의 일본인 집성촌이 들어섰는데, 이때부터 명동과 충무로를 중심으로 근대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런 이유로 서울에서도 가장 짙게 왜색이 드리워졌던 이곳 필동은 광복 이후에는 충무로 인근을 중심으로 영화산업의 메카로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이곳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1890년대를 전후로 만들어진 5채의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다. 구한말의 격동기 1890~1900년대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다양하지만, 이 시기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1897)을 선언하며 해외 열강들과 크고 작은 교류를 시작했던 시기이고 일제 강점기 이전 조선이 개방성 · 주체성 · 역동성을 가지고 제국을 꿈꾸었던 시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 최초 민족자본은행이자 신한은행이 흡수한 조흥은행의 전신이었던 한성은행, 출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1890년대의 조선은 시카고 세계만국박람회에 참가(1893)하였으며, 현대적인 은행(조흥은행의 전신 한성은행 설립, 1897)을 설립하였고, 경인선 철도를 개통(1899)하였으며, 아시아를 통틀어 수도에 부설된 최초의 전차인 서울 전차를 개통(1899)하였다. 또, 근대적인 초등교육기관인 소학교를 설립(1895)하는 등 조선이 외세의 침탈로 주권국가로서의 주체성이 상실되기 이전 우리 민족의 풍류와 멋을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많은 한옥마을이 전국적으로 들어서고, 서울의 북촌과 서촌, 익선동 등 한옥 골목들이 인기를 끌면서 지역의 상권과 결합하여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한편,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다양한 절기행사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넘은 전통가옥들은 정체된 유물 같은 역할로 관심을 잃고 단체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의 배경으로만 활용되는 시기를 거쳐왔다. 단체 관광객의 방문이 줄어들고 개별 자유여행객인 FIT 관광객들이 80% 가까이 늘어나면서, 단체 관광객이 아닌 이색 체험을 찾아다니는 개별 관광객들의 욕구를 분석하여 ‘1890 한양’이라는 컨셉을 설정하였다. 1890년대의 한양이라는 ‘창’을 통해 한옥마을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살아 있는 구한말 한양 남산골의 풍경과, 어울리는 사람들, 자연과 벗하며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 장터에서 만나는 정겨운 인심 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남산골 한옥마을’을 테마가 있는 살아 있는 한옥마을로 새롭게 해석하면서 ‘1890 한양’이라는 연출 콘셉트를 가지고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을 이색적인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서울을 만날 수 있는 테마공간을 연출한 것이다.
남산골한옥마을 전경 ⓒ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안에 살아나는 또 다른 서울

‘1890 한양’을 콘셉트로 만들어낸 ‘남산골’ 브랜드 프로그램은 남산골 밤마실 · 남산골 드라마 · 남산골 바캉스 · 남산골 야시장과 손탁야회 등으로 도심 속에서 만나기 힘든 과거의 문화를 장터와 체험, 공연과 놀이로 복원하고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국내외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120년 전 한양 남산골 마을 주민들의 일상과 축제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남산골 야시장은 2020년 Ver 4.0 모델로 ‘보부상’과 ‘전기수’들이 연출해내는 더 재미있는 조선 시대 야시장으로 방문객들을 인도할 예정이다. 전통가옥 일부도 장터의 무대로 활용되어 이색적인 야간 한옥체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1890년대 한양 풍류를 재해석한 남산골 야시장 ⓒ 남산골한옥마을
서울에는 연간 150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이들이 걷고 만나는 명동, 종로, 광화문은 그들이 사는 도시와 많이 다르지만 또 많이 비슷하다. 비슷한 고층 빌딩과 면세점, 전 세계 어디나 볼 수 있는 브랜드의 자동차들, 도시를 이동하는 세련된 시민들 틈에서 관광객은 서울의 다른 모습을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서울이 다른 도시와 무엇이 다른지 ‘궁궐’이 아닌 ‘민가’는 어떤 모습으로 유지되어왔는지를 보여주어 서울의 다름을 느끼게 하고자, ‘한양’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으로 기획한 것이 남산골 브랜드 프로그램들이다.
한옥마을에는 밤에, 한여름에, 한겨울에 방문객이 줄어든다. 밤 시간대에 도심 숙박형 관광객들을 이끌어 들여 서울의 밤에서 갑자기 한양의 밤으로 이끌고, 한양의 여름과 겨울의 이색적인 풍경을 통해 서울의 문화와 전통을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남산골 프로그램이다. ‘1890 한양’의 창을 통해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 서울 도심의 빌딩 숲에 가려져 있던 서울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시간여행은 관광객들에게 또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들에게도 새로운 체험을 선사하고 잠시 ‘현재’를 떠나게 한다. 이런 잠시의 일탈과 여유가 바로 도심 속 여행의 백미가 아닐까? 우리는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땅 밑에는 꿈틀대며 우리에게 손짓하고 속삭이는 살아 있는 과거의 시간이 있다. 한옥마을은 이렇게 살아 있다.
윤성진_남산골 한옥마을 총감독, ㈜쥬스컴퍼니 예술감독, 문화학 박사
20여년간 문화기획 현장에서 전방위로 활동해온 축제전문가이면서 (사)한국문화기획학교의 교장으로서 축제 및 문화기획분야의 전문인력을 육성해왔다. 지난 6년간 한강몽땅 총감독을 맡아 한강몽땅을 서울의 대표 여름축제로 만들어왔으며, (주)쥬스컴퍼니 초창기부터 예술감독으로 참여하면서 2017년부터 현재까지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