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7호   山:門 FOCUS

나의 리얼 메타버스 공연 답사기

오영진_한양대학교 겸임교수
그림워뉴_일러스트레이터
발행일2021.07.06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관람의 장소가 셧다운 되자, 단지 온라인 중계의 형태만이 아닌, 비대면 상태에서 공연이나 관람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색하는 시도가 생겨났다. 최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사례에서 보듯, 국악계에서도 온라인 관객의 명령에 의해 공연 방식을 결정하는 퍼포먼스가 시도되는 등 공연예술 전반에서 게임 요소를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메타버스의 부상은 공연예술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얼마 전 메타버스 내에서 공연을 선보였던 연출자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봤다.

언택트 공연예술 시도의 역사는 무려 30년?

메타버스 셰익스피어 극단의 도메인[MShakespeare.com](http://mshakespeare.com/)은 현재 $1,595의 매물로 올라와 있다. 지금의 메타버스 개념이 유행하기 전, 또 다른 메타버스 기획이었던 게임 ‘세컨드 라이프’(2003~현재) 내에서 활동했던 이 가상공간 내 극단은 꽤 오랫동안 세컨드 라이프 내에서 활동해왔다. 현실의 연극에서는 세우기 어려운 거대한 세트장을 손쉽게 건축했고, 극중 사용될 코스튬을 실제보다 더 화려하게 구현해 초반에는 꽤 신선한 가상현실극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들의 가상극장을 세우기 위해 개발사 린든 랩에 지불했던 금액에 비해 자발적 후원 말고는 마땅한 공연에 대한 수익구조를 세우지 못해 운영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극단의 대표는 게임 내 공공극장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메타버스 셰익스피어 극단의 [햄릿] 공연 장면

한편,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수백 번의 록 밴드 U2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졌다. U2의 팬들이었던 제작자들은 팬덤 문화의 연장선에서 그들의 영웅을 아바타로 다시 디자인했고, 그들을 소환해 실제 라이브 음원을 같이 틀면서 유사 U2 공연을 게임 내에서 즐겼다. 그들은 말한다. “이것은 진짜 록밴드가 아닙니다. 롤플레잉입니다.” 한편으로는 창조적인 팬덤 문화처럼 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불법적인 라이브 이벤트처럼 보이는 이런 행사는 U2의 아바타가 무한 복제되어 통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될 위험을 안은 채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어 왔다.

일러스트레이션 ⓒ 워뉴

코로나19로 인해 인류가 가상공간에 강제로 머무르게 되면서, 비대면 상태의 공연예술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이 많은 것 같다. 이에 대해 다들 혼란스러워하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이미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 과거의 메타버스 기획의 결과물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이다. 기술적으로 메타버스를 이룩하려는 시도는 무려 30년이나 이어져 왔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만 하더라도, 가상현실 안에서의 공연산업의 경제성, 공공자본의 투입 필요성, 제도적 후원 등의 문제가 당장 화두로 떠오르고, 통제되지 않는 아바타들에 대해, 저작권이라는 과거의 보호책이 아닌 보다 창의적인 수용 방법을 고민케 한다. 가상과 현실의 중첩 공간인 메타버스는 단순히 현실의 일을 가상 안에서도 가능케 해주는 공간이 아니라 극대화시키며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통찰해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 공연 연출을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것들

필자는 올해 3월에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공간을 이용해 가상현실 속에서 강연과 투어, 집단적인 의식의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공연 <에란겔: 다크투어>(21.03.20-21, 공공예술 프로젝트 ‘가상정거장’, 행화탕)을 연출했다. 기존에 존재하는 게임엔진을 사용하다 보니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 또한 확실했다. 언리얼 엔진으로 구현된 가상의 섬 에란겔의 드넓은 자연풍경은 과거에는 컴퓨팅 파워의 부족으로 구현하지 못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공연 참가객들은 너도 나도 이 게임공간에서 풍경사진 찍기에 열을 올렸다. 아래는 그중 하나이다.
안개 낀 에란겔의 풍경. 3월 20일 공연 참가 중 촬영 ⓒ 김승범

반면, 연출자로서 절망했던 점은 공연 퍼포먼서의 감정과 표정을 전달할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게임 내 아바타들은 게임플레이에 최적화된 것으로, 본래 서로 총을 쏘며 승리자 한 명이 살아남는 배틀로얄 장르에 필요로 하지 않는 기능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을 수는 있지만, 눈빛이나 얼굴 근육은 변화가 불가능하다. 음성은 인간의 것인데, 몸은 기계와 같은 불일치가 일어나고 이는 관객이 몰입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렇다 보니 한편의 부조리 극 같은 스타일의 공연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같은 단점은 전 세대 메타버스였던 ‘세컨드 라이프’ 포함, 현재 모든 게임 기반의 메타버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작년에 주목을 받았던 남산골한옥마을의 ‘동물의 숲’ 기반 공연이나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마인크래프트’ 기반 공연 모두 같은 딜레마를 겪었을 것이다. 공연의 작품성과 그것이 기반한 게임의 게임성이 부조화를 이루거나 연출자의 의도를 게임성 밖으로 펼쳐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남산골한옥마을, 온라인 전시 퍼포먼스 '대기, 대기, 대기, 통신' 에필로그 영상, 게임 ‘동물의 숲’ 기반 공연

가상공간 안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고, 미팅도 진행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잘 봐줘도 전화로 단체음성연결한 채 게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팀은 이 같은 단점을 게임 ‘배틀그라운드’ 특유의 스피디한 이동 전개와 공연자의 쉴 새 없는 동선으로 무마하려 했다. 어느 정도 훈련이 되자, 관객이 이 기계-탈을 쓴 공연자에 의문을 품기 전에 다른 액션을 미리 취하고, 참가객들에게도 특정한 장소로 이동할 것을 자주 권유하는 방식으로 몰입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묘안을 짰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관람객들은 공연자의 음성은 듣되, 특유의 산만함으로 게임 공간을 훑어나갔다. 

안양문화재단, 마인크래프트로 떠나는 가상문화예술체험 '신비한 동물시계'

오히려 문제는 공연자 쪽에서 발생했다. 게임 경험이 전무한 공연자의 경우, 이 산만한 관람객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메타버스 안에서 공연한다는 것의 의미는 화려한 아바타로 분장한 멋진 관람객들과 같이 호흡하는 일이 아니라 낫을 들고 기어 다니고, 쉴 새 없이 이유 없는 점프를 하고, 다른 관객에게 주먹질하는 유저들과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마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이 글의 필자가 메타버스 공연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정반대다. 나는 이러한 지점들이 언뜻 기존의 공연이 가상세계로 이양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반대로 공연의 개념 자체가 가상세계에서는 바뀌어야 함을 논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공연, 새로운 관객의 패러다임 도래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관객은 과거와 같이 더 이상 통제받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프레임을 얻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점프를 할 수 있고, 공연제작자가 준비한 내용의 부분만을 절취해 청취하는 존재일 수 있다. <에란겔: 다크투어>의 공연자들은 이 같은 감각을 공연자들이 수용하고 반복적인 리허설을 통해(고의적으로 산만하게 굴기) 내면화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메타버스 속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기능적 요소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아니라, 이 새로운 관객의 패러다임을 기존의 공연자가 어찌 수용할 수 있느냐, 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레이션 ⓒ 워뉴

다가올 메타버스 시대에는 과거의 어떤 공연 형태보다 더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요구하고, 관객의 창발성을 유도하는 상호작용의 공연디자인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공연자와 관객, 공연장과 객석이라는 이분법을 가진 전통적인 공연 개념을 흔든다. 

특정한 가상공간에서 어떤 시도를 ‘한 번’ 해봤다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책임 있게 응답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다 같이 머리를 맞대어 연구하는 모임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과거로 손쉽게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기에 모호한 미래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이미 실패한 과거를 꺼내보는 일이 필요하다. ‘세컨드 라이프’부터 공부해보자.

오영진_한양대학교 겸임교수
한양대학교 에리카 한국언어문학과 겸임교수다. 2014년 잡지 <쿨투라>에 문화평론가로 데뷔했고, 이후 문학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써왔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2017),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등을 집필했다.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며, <에란겔: 다크투어>(2021)의 연출자이다.
그림 워뉴_일러스트레이터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라는 주제로 인스타그램(@wonnu_joke)에서 그림을 그린다. 익살스러운 일러스트 외에도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 다양하게 경계없이 표현하고 있다. 주로 해외 IT 기업들과 작업했으며, 최근에는 경칩을 기념하는 네이버 로고를 작업하였다. 이번 일러스트는 ‘메타버스’와 ‘게임’이라는 소재에서 느껴지는 유쾌함을 ‘만화’ 같은 표현으로 담아내었으며, 과감한 레이아웃과 컬러로 메타버스의 비범한 감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