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수백 번의 록 밴드 U2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졌다. U2의 팬들이었던 제작자들은 팬덤 문화의 연장선에서 그들의 영웅을 아바타로 다시 디자인했고, 그들을 소환해 실제 라이브 음원을 같이 틀면서 유사 U2 공연을 게임 내에서 즐겼다. 그들은 말한다. “이것은 진짜 록밴드가 아닙니다. 롤플레잉입니다.” 한편으로는 창조적인 팬덤 문화처럼 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불법적인 라이브 이벤트처럼 보이는 이런 행사는 U2의 아바타가 무한 복제되어 통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될 위험을 안은 채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어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인류가 가상공간에 강제로 머무르게 되면서, 비대면 상태의 공연예술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이 많은 것 같다. 이에 대해 다들 혼란스러워하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이미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 과거의 메타버스 기획의 결과물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이다. 기술적으로 메타버스를 이룩하려는 시도는 무려 30년이나 이어져 왔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만 하더라도, 가상현실 안에서의 공연산업의 경제성, 공공자본의 투입 필요성, 제도적 후원 등의 문제가 당장 화두로 떠오르고, 통제되지 않는 아바타들에 대해, 저작권이라는 과거의 보호책이 아닌 보다 창의적인 수용 방법을 고민케 한다. 가상과 현실의 중첩 공간인 메타버스는 단순히 현실의 일을 가상 안에서도 가능케 해주는 공간이 아니라 극대화시키며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통찰해야 할 것이다.
반면, 연출자로서 절망했던 점은 공연 퍼포먼서의 감정과 표정을 전달할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게임 내 아바타들은 게임플레이에 최적화된 것으로, 본래 서로 총을 쏘며 승리자 한 명이 살아남는 배틀로얄 장르에 필요로 하지 않는 기능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을 수는 있지만, 눈빛이나 얼굴 근육은 변화가 불가능하다. 음성은 인간의 것인데, 몸은 기계와 같은 불일치가 일어나고 이는 관객이 몰입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렇다 보니 한편의 부조리 극 같은 스타일의 공연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같은 단점은 전 세대 메타버스였던 ‘세컨드 라이프’ 포함, 현재 모든 게임 기반의 메타버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작년에 주목을 받았던 남산골한옥마을의 ‘동물의 숲’ 기반 공연이나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마인크래프트’ 기반 공연 모두 같은 딜레마를 겪었을 것이다. 공연의 작품성과 그것이 기반한 게임의 게임성이 부조화를 이루거나 연출자의 의도를 게임성 밖으로 펼쳐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상공간 안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고, 미팅도 진행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잘 봐줘도 전화로 단체음성연결한 채 게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팀은 이 같은 단점을 게임 ‘배틀그라운드’ 특유의 스피디한 이동 전개와 공연자의 쉴 새 없는 동선으로 무마하려 했다. 어느 정도 훈련이 되자, 관객이 이 기계-탈을 쓴 공연자에 의문을 품기 전에 다른 액션을 미리 취하고, 참가객들에게도 특정한 장소로 이동할 것을 자주 권유하는 방식으로 몰입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묘안을 짰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관람객들은 공연자의 음성은 듣되, 특유의 산만함으로 게임 공간을 훑어나갔다.
오히려 문제는 공연자 쪽에서 발생했다. 게임 경험이 전무한 공연자의 경우, 이 산만한 관람객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메타버스 안에서 공연한다는 것의 의미는 화려한 아바타로 분장한 멋진 관람객들과 같이 호흡하는 일이 아니라 낫을 들고 기어 다니고, 쉴 새 없이 이유 없는 점프를 하고, 다른 관객에게 주먹질하는 유저들과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마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이 글의 필자가 메타버스 공연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정반대다. 나는 이러한 지점들이 언뜻 기존의 공연이 가상세계로 이양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반대로 공연의 개념 자체가 가상세계에서는 바뀌어야 함을 논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관객은 과거와 같이 더 이상 통제받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프레임을 얻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점프를 할 수 있고, 공연제작자가 준비한 내용의 부분만을 절취해 청취하는 존재일 수 있다. <에란겔: 다크투어>의 공연자들은 이 같은 감각을 공연자들이 수용하고 반복적인 리허설을 통해(고의적으로 산만하게 굴기) 내면화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메타버스 속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기능적 요소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아니라, 이 새로운 관객의 패러다임을 기존의 공연자가 어찌 수용할 수 있느냐, 일지도 모른다.
다가올 메타버스 시대에는 과거의 어떤 공연 형태보다 더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요구하고, 관객의 창발성을 유도하는 상호작용의 공연디자인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공연자와 관객, 공연장과 객석이라는 이분법을 가진 전통적인 공연 개념을 흔든다.
특정한 가상공간에서 어떤 시도를 ‘한 번’ 해봤다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책임 있게 응답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다 같이 머리를 맞대어 연구하는 모임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과거로 손쉽게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기에 모호한 미래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이미 실패한 과거를 꺼내보는 일이 필요하다. ‘세컨드 라이프’부터 공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