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열(이하 허): 남원 김병종 미술관에 공연하러 갔을 때 작가님의 작업을 접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헤드폰을 쓰고서 미술관 안에 흩어져서 사물놀이를 듣는 작업이었죠. 서로 떨어져 있으면 솔로 악기 연주, 가까이 다가가면 합주가 되는데, 사물놀이가 굉장히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들으면서 춤을 추게 되더라고요. 다른 악기나 소리도 많은데 하필이면 전통 사물놀이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권병준(이하 권): 남원에서 사운드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소리로 뭔가 새롭게 시도해보고자 하는 문화기획자가 있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거기서 사물놀이팀이랑 만나 제가 갖고 있던 헤드폰으로 작업을 하게 된 거죠. 남원에 처음 가봤는데, 춘향과 추어탕만 알려져 있어 안타깝더라고요. 뜻있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덕분에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문화적으로 가진 게 많은 곳이었어요. 가진 것에 비해 뭔가 시도해보기에는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없을 줄도 몰랐고요. 그럼에도 자기 고향 지키는 마음으로 그곳에 계시는 분들을 보면서, 남원에서 일회성이 아닌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만복사지, 동학농민운동 제2의 성지 등 토박이들만이 볼 수 있을 법한 명승고적을 다 보여주셨는데, 그중에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오는 <만복사 저포기>가 굉장히 좋은 문화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로 만들어도 좋고 어떻게든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탈춤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셰익스피어를 탈춤으로 만드는 작업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만복사 저포기>는 영화 <천녀유혼> 같은 이야기에요. 어떤 여인과 만나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게 결국 영혼이었던 거죠.
이주원(이하 이): 말씀을 들으니 솔깃하네요. 최근에 작업한 <오셀로와 이아고> 말고도 염상섭의 <삼대>도 탈춤으로 만들었고, 연말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앞두고 있어요. 아직 작업 중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판타지적인 요소도 있거든요. 작가님은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작업을 하시면서도 전통에 관한 관심을 계속 놓치지 않으시네요.
권: 제 경우 테크놀로지나 다른 여러 분야와 협업도 많이 해왔는데, 예를 들어 최근의 머신러닝과 같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면서도 제게는 근본이 있고 뿌리가 있다는 거죠. 전통문화에 기반해서 작업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저의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남원도 그런 마음이 있을 때 간 거죠. 여기 있는 게 국악을 학습하는 AI에요. 머신러닝을 통해 새로운 국악의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건데, 원일 감독의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에서 하는 10월 페스티벌 때 함께하게 돼서 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분들의 연주를 녹음해서 컴퓨터에 학습시키고 거기서 도출되는 새로운 뭔가를 그분들이 받아서 작업하는 협업을 시도 중이에요.
허: 그런데 AI를 보면, 어느 정도까지 인간을 대체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작곡 같은 창작의 영역까지도 넘어오게 되는 거 아니냐는 등의 논란이 있잖아요.
권: 저런 걸 이용해서 더 창의적인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인간의 영역을 확실히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광고음악이나 영화음악 같은 게 그냥 기계가 해주는 것이 돼버린다면,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만드는 음악이 없어질 건 아니죠. 저 같은 사람이 이런 건 기계가 하면 된다고 답을 내려주면 될 것 같아요.
허: 저희는 허튼춤, 그러니까 즉흥춤을 출 때 어떤 음악이 나와도 추거든요. 요즘엔 로큰롤에 춰보기도 해요. 시민과 함께 출 수 있는 탈춤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시도해보고 있는 건데, 저렇게 AI가 만들어낸 음악으로도 허튼춤과 접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즉흥 대 즉흥으로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요.
권: 이런 것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센서를 붙이고 춤을 추면 관절의 움직임을 기록해서 그걸 AI에게 학습시키고, 거기에 기반해서 새로운 춤도 도출할 수 있겠죠. 전통 음악도 하는데 전통 춤이라고 안 될 게 있나요. 기술과 만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요.
권: 2003년에 가야금 연주자 고지연씨와 함께 전자음악으로 협업한 음반을 내게 됐어요. 강태홍류 가야금 전수자인데 그때 들었던 전통의 이수 방법이 뭔가 깨달음을 주었어요. 강태홍 선생께 가야금을 배울 때, 처음엔 허공에 가야금을 치게 한다고 해요. 그때 선생이 제자의 손을 잡아주고 귀에 구음을 들려주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구음을 제대로 하기까지는 악기를 못 잡게 하는 거죠. 귀로 다 느끼며 체화하고 난 이후에야 가야금을 치게 하는데, 그런 식의 전수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물론 그분만의 교육 방식이었을 텐데, 이만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러다가 국악을 아카이빙한다는 명목으로 서양에서 공부한 이들이 오선보화하고, 지금은 구음도 하지 않고 악보만 보고 연주하는 거죠.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를 거쳐 국악이 오선보 안에 들어가면서 왜곡되기 시작했어요. 그런 현실에 대한 깨달음 때문에 전통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 질문하면서 작업을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허: 이건 정말 구전심수(口傳心授)의 표본인데요.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고. 탈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고 보여요. 선생께서 몸으로 보여주시고 그걸 따라 하고 마음으로 받는 거죠. 몸이 먼저 가고 덩기덕 하는 장구의 구음을 따라 하는 방식이죠.
권: 두 분이 탈춤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권: 그런 게 신명 아닌가 싶네요. 한국 사람들한테는 그런 게 내재되어 있나 봐요. 한국인의 신명이 지금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펼쳐져 있다는 게 다를 뿐이죠. 그게 K-팝이든 뭐든 다 있다고 생각해요.
이: 맞아요, 신명. 전통 탈춤에는 항상 뒤풀이 마당이 있는데, 누구나 그냥 나와서 출 수 있어요. 뒤풀이 때 나오면 어떻게 할 줄 모르는 분들이 있지만, 그저 움찔움찔하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몸짓을 하는 거죠.
허: 제 경우, 중학교 때 풍물을 먼저 접했어요. 주위 환경의 영향이랄까요. 기악은 없었고, 풍물과 탈춤이 있었죠. 고등학교 때 동아리에서 탈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저는 문둥춤을 보고 감명을 많이 받았죠. 문둥춤이라고 하면 나병환자의 춤인데, 그것도 양반을 풍자하기 위해서 등장해요. 양반이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자손이 문둥병에 걸린 거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보리 이삭을 긁어먹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 곤충을 잡아먹기도 하고, 북채를 잡으려고 하는데 못 잡아서 통곡하고, 결국 발을 이용해서 채를 잡아내는 과정을 그리는데, 이게 하나의 드라마를 이루는 거죠. 탈춤에 여러 캐릭터가 있는데 그 춤을 처음 접했을 때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동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추게 된 것 같네요. 탈을 썼을 때의 자유로움도 매력적이고, 마지막에 다 같이 추고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추는 허튼춤의 신명도 빼놓을 수 없고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어 현대철학을 좀 들여다보고 있는데, 와 닿는 지점이 있었어요. 존재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연결 속에 있고 경계에서 생겨난다는 거예요. 탈춤의 너나 없는 어우러짐 또한 맞닿는 지점이 없지 않은 것 같아요. 작가님의 남원에서의 작업을 떠올려볼 때도 경계에 있다가 경계를 넘어서 만나는 순간 새로운 작용이 일어나는 지점이 있더라는 거죠.
권: 공동체, 신명, 이런 게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 헤드폰 작업도 그와 관련된 작업이죠. 전시 때 네 사람이 개별 악기를 각자 듣다가 가까이 가면 소리가 서로 섞이고 인사를 하면 소리가 교환돼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성이에요. 누군가 다가가서 섞이고, 인사하고 교환하는, 그런 커뮤니티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협업이나 공동체의 큰 미덕은 두레랑 품앗이인데,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걸 기술과 엮어보려는 거죠. 물론 신기한 체험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세 가지 키워드를 주로 이야기해요. 자명해야 하고, 공명, 공감해야 한다는 거에요. ‘자명’이라는 건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울리는 것, 전통이라도 체화돼서 자기 것을 만들어내고, 이수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앞을 바라보는, 그런 게 자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물과 함께 하는 울림이 전해지는 것, 그게 ‘공명’이고 악기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하기도 하죠. 둘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원리라고도 생각돼요. 그것에 기반해서 아름다움이든 신명이든 ‘공감’할 수 있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왔어요. 그걸 헤드폰 작업으로 풀어본 거죠. 제목이 <자명리 공명마을>인데, 일종의 가상 마을에 관한 작업을 작년에 한 거죠.
권: 몸으로 움직이는 작업을 주로 해왔던 분들은 서양식으로 창작자 위주의 창작 방식,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길 많이 하시더라고요. 가령, 서양 현대무용이라고 하면 안무가를 따라가는 방식일 테고, 전통의 경우, 대가를 따라 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겠죠. 탈춤으로 현대적인 창작을 하실 때 그런 측면이 어떻게 조율되는지 궁금하네요.
허: 일단 저희는 전통춤을 추면서 창작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전통춤의 경우 ‘더늠’이 생겨나지요. 선생님께 배운 것에 자기 생각과 철학 담기 시작하는 거예요. 더늠이란 건 답습하기보다 설득 안 되는 부분에 돋보기를 대든 어떻게 하든 자기 것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문둥춤, 이매춤도 자기만의 춤이 되는 거죠. 뿌리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이 시대의 창작을 시도하는데, 전통에 기반하되 그 금기를 깨려고 해요. 탈을 벗거나 깨버리거나, 그런 시도를 하기도 해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진화되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이: 저희가 창단을 할 때 원래의 탈춤이란 것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탈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박제화되었어요. 대사도 양반 탓만 할 게 아니라 부자를 탓하고, 그런 식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안 되니 답답한 측면이 있죠.
권: 시대를 풍자하는 게 마당극에서 중요하죠. 아까 얘기했던 전통에 대한 깨달음 중 또 다른 하나가 전통이란 어떤 고정된 것이라는 인식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전통 관련해서 ‘무현금’이라는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는데, 충북 진천에 있는 세계 유일의 종 박물관에서 인간문화재 원광식 선생과 협업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에 했던 작업은 종을 실내에 배치해서 울리는 식의 접근보다는 맥놀이를 가지고 작곡한 것이었어요. 그분은 평생 7천여 개의 종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한국의 범종을 거의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그분은 절대로 전통 안에서 머물려고 하지 않아요. 스승이 일본 종을 본떠서 만드시는 분이었는데, 거기서 떨어져 나와 전통을 새롭게 복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아요. 칠순이 넘었는데도 그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계속 얘기하시죠. 다 끊어진 전통을 살리고자 일본에 건너갔다가 경찰에 붙잡혀 추방당하기도 하셨어요. 신라 종이 일본에 훨씬 많아 그 틀을 만들기 위해 갔던 건데 그 기록을 다 남겼어요. 서울대 금속공학과 사람들과 함께 과학 실험을 했던 것도 학회지 형태로 후배들을 위해 기록을 남겼죠. 일본 종은 옛것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데, 이분은 거기에 더해서 더 나아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지금의 전통을 넘어서서 이 시대의 종을 만들고자 하시는 거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서 그분의 종을 사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느끼는 점이 많았어요.
이: 예전에 진도북춤 하시는 박병천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장구 장단이 매번 달랐어요. 선생님께 지난주와 다르다고 말씀드렸더니, 좋은 게 자꾸 생각나신대요. 좋으면 바꿔야지, 그런 말씀을 하셨죠.
권: 전통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그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죠. 탈춤은 풍자와 해학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지금 사람을 웃겨야 하고 풍자를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전통을 따르되 이 시대에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으실 것 같아요.
허: 지금까지도 통하는 보편적 이야기를 찾아보자고 해서, 셰익스피어나 염상섭의 작품을 탈춤으로 만들었죠. <삼대>는 지금의 삼성가(家) 이야기로도 보여요. 지금의 관객과 호흡하고 교감하기 위해서 이런 창작 작업을 하고 있는데, 흔히 전통이라고 하는 건 거리감이 있어요. 하지만 전통이란 예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이 시대에도 통하는 것 아닐까요? <오셀로와 이아고>를 무대에 올렸을 때 ‘이게 탈춤이구나’ 하는 반응이 있었고, 탈춤을 제대로 보여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작업을 할 때는 연출가와 협업해서 내용을 공동 집필하고 발췌해서 탈춤의 형식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거쳐요. 대본의 무거움을 탈춤의 거뜬함으로 전환해보자 해서, 최소한의 대사만으로 함축적으로 장면을 구성하죠.
권: 탈춤의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해요. 그 아우라와 에너지가 언젠가 꽃이 필 것 같아요. 방금 말씀하신 작업은 잘 알려진 기존의 작품을 탈춤으로 변환해서 근대적 개념의 무대에 올리는 작업으로 보이고, 좀 더 전향적으로 지금에 대한 탈춤 작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BTS가 부채춤을 가져다 쓰는 게 의미 있지만 충분하진 않다고 보일 수 있는데, 그 이상으로 훨씬 멋스럽고, 더 현대적이고, 지금 젊은이들의 마음이 담겨 나올 수 있는 그런 탈춤 작업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거죠.
허: 작가님의 <This is Me>라는 작업을 보니, 얼굴이 표정으로 바뀌는 탈로 느껴졌어요. 탈춤꾼으로서는 그 얼굴의 변화에 춤을 더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권: 그 작업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치 변검처럼 얼굴이 바뀌는 효과를 미디어로 만들어낸 거죠. 여러 얼굴 이미지가 화면에 크게 나오면서 제 얼굴에 겹치면 얼굴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탈, 표정이 바뀌는 탈이 되는 거예요. 마릴린 몬로나 백남준 등 유명인의 얼굴이 계속 나오는데, 원래는 조상의 얼굴을 나오게 하려고 했어요. 어쨌든 제가 받았던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여러 얼굴을 제게 씌우면서 나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거죠. 탈춤에서 탈의 정체성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처럼, 그걸로 나를 바꾸면서 내가 왜 이렇게 수많은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죠. 저는 제어해야 할 게 많아서 춤을 추지는 못했지만, 다르게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3년에 했던 그대로 남아 있는 작업이고, 그때 이렇게 스케치북에 드로잉으로 가면을 그렸어요. 이런 걸 계속 내 얼굴에 씌우면, 이것들이 내 표정에 따라 살아나는 거죠. 얼굴에 탈을 씌우진 않아도 그 자체로 춤이라고 생각돼요. 두 분은 기술적 요소와 협업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허: 모션캡처 작업을 해본 적이 있어요. 탈춤 추는 몸에 센서를 달고 그 움직임을 따서 캐릭터를 입혀보는 기본 작업을 경험해봤죠. 상당히 생소했어요. 움직임대로 화면에 나오고 내가 손에 들지도 않았던 천도 화면에 넣어줄 수 있고요.
권: 그런 직업이 온라인 비대면 시대에 시도해볼 만하겠죠. 이것도 시대의 부름 같은 건데, 이런 시대에 탈춤이 어떻게 온라인으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될 것 같네요.
이: 김덕수 선생님과 함께 VR작업을 해봤어요. 시선을 돌리면 이매춤을 추는 게 보이는 3D 영상 작업이었어요. 저희가 기술과 가장 접목해보고 싶은 건 탈이에요. 그걸 어떻게 다양하게 접목시킬까. 매핑을 해보자는 제안도 있었어요. 표정이 바뀌는 게 어떻게 기능적으로 가능할지. 움직이는 탈이 될 텐데요.권: 지금 생각나는 건 프로젝션보다는 메카니컬한 구조로 만들어서 모터를 이용해 변하는 탈이 어떨까 싶어요. 약간 기계적인 마스크이긴 한데, 표정이 전기 전자 무선신호 같은 메카니컬한 구조로 만들어져 제어되는 걸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많은 변화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몇 가지 기능이 있을 듯해요. 눈썹이 올라가고 코가 벌어지고 입이 올라가는 등 겉에서 봤을 때, 탈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겠네요. 거기서 출발해서 더 화려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겠죠. 로봇처럼 보이겠지만 만들고 실험하는 공방이 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허: 요즘 ‘멀티 페르소나’라는 키워드가 언급되고, 이른바 ‘부캐’의 시대이기도 하잖아요. 탈춤과 잘 맞지 않을까 싶네요. 얼굴 표정에 따라 여러 인물이 나오는 것처럼, 탈춤의 여러 캐릭터와 접목되고 맞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런 발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춤추고 있어요.
권: 제가 기술을 다루기 때문에, 화면으로 들어갈 때 고유의 것을 잃어버린다는 걸 알아요. 탈 만드는 전통 공방과 아티스틱하게 기술을 다루는 협업으로 이제까지 있었던 것과 다른 탈을 만들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거기서 출발해서 다른 작업도 나올 수 있겠죠. 또 하나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동작 센서를 붙이고 움직이면 캐릭터를 넣을 수도 있을 거예요. 말하자면 온라인 탈춤 공연인데, 탈춤을 출 때 가상의 캐릭터가 온라인상에서 춤을 추는 거죠. 센서나 키넥트를 이용하는 이런 방식의 작업이 보통 게임에서 많이 쓰죠. 그 탈춤 버전이 만들어져서 내가 추는 것에 따라 가상의 캐릭터가 추고, 관객들이 온라인으로 그걸 보면서 따라 추는 거죠. 온라인 공간에 춤판이 벌어지는데 일방적 감상이 아닌, 탈이나 의상, 캐릭터 등을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탈춤판으로 만들어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실제 춤판은 여기서 벌어지는데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여러 가지를 바꿔볼 수 있는 거죠. 요새 자꾸 요구되는 비대면 기획으로도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권: 한데 VR작업의 경우는 기기를 가진 사람도 많이 없고 접근성이 떨어져요. 오히려 360도 카메라가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이런 게 마당놀이에 적합하죠. 360도로 촬영된 영상을 볼 때는 마우스로 돌려가며 보거나, 아니면 핸드폰으로 볼 수 있어 접근성이 더 있죠. 여기에 맞게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앵글 하나에 갇히는 게 아니라 돌려가며 보거나 원하는 부분을 찾아서 볼 수도 있어요.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연결해서 스트리밍까지 바로 가능한 360도 카메라도 있어요. 5G나 에그 등을 이용하면 야외에서도 바로 송출할 수 있죠. 또 라이브 스트리밍을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고요.
이: 작년 공연 홍보 때 360도 영상 촬영을 시도해봤어요. 카메라 주위로 돌아가면서 춤을 추는 작업을 해봤는데, 준비가 덜 돼서 결과가 좋지 못했어요. 약간의 왜곡도 있고요. 관객 참여도 가능할 것 같긴 하네요.
권: 360도 카메라에 맞게 작업해야 해요. 이 환경에 맞게 창작극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죠. 화면의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극의 요소로 받아들여서 그것에 맞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겠죠.
이: 작가님의 경우, 음악 활동을 하기도 하셨고 지금은 미디어아트 등을 포함해서 다양한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던 걸까요?
권: 아까 이런저런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또 하나의 깨달음은 음악 하는 마음으로 다른 일을 할 수가 있구나, 라는 거였어요. 제 음악을 넓히고자 하는 마음으로 여러 장르를 건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허: 저희는 움직임을 다루는 사람들이라 로봇의 움직임 작업은 어떻게 접근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권: 이 로봇이 제가 생각하는 커뮤니티를 또 다르게 표현한다고 볼 수 있어요. 로봇 머리가 조명으로 되어 있는 것 보이시죠? 빛의 세기나 색이 제어되어서 계속 서로를 비추는 로봇이에요. 그러면 당연히 그림자가 생길 것이고, 여러 다른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죠. 세상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이렇게 서로 비추는 행위의 중요한 부산물이 그림자인 거죠.
허: 작가님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탈춤에 대해서도 좀 더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것 같네요. 코로나 상황에서 온라인, 언택트가 많이 요구되지만, 역시나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돼요. 빨리 상황에 변화가 와서 다음에는 공연장에서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허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