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近代)는 근고(近古)와 현대(現代) 사이에 놓여있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옛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면서 혼종과 혼재, 이합과 집산, 충돌과 통합 등이 전개된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던 시기가 근대이다. 대중들은 새로운 신문물에 대해 비판 또는 환호로 화답하였다. 전통을 대체해가는 변화와 변혁의 물결에 국악(國樂)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악’이란 용어도 이 시기에 유입된 서양음악 즉, 양악(洋樂)과 구분하기 위하여 만든 단어이다. 근대시대에 한반도에 유입된 대표적인 서양악기는 바이올린(violin)과 피아노(piano)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또 다른 이름은 ‘사현금(四絃琴)’과 ‘귀신통’이었다. ‘사현금’의 사현(四絃)은 바이올린 줄이 네 줄이기 때문이며, 금(琴)은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한 현악기를 지칭하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만든 단어이다. ‘귀신통’은 피아노 소리를 난생 처음 들은 사람이 “나무통에서 귀신 소리가 난다.”고 표현해서 피아노를 ‘귀신통’으로 불렀다고 한다. 외국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 수용과 이해의 과정이 국악 용어와 악기 이름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악기(樂器)는 ‘소리를 담는 그릇’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樂)의 해석에 따라 ‘약을 담는 그릇’ 또는 ‘즐거움을 담는 그릇’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악기를 통하여 치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악기는 담는 소리에 따라 그 모양이 각기 다르다. 인류 최초의 악기로 추정되는 악기는 독일 남부지역에서 발견한 3만 5천 년 전 새의 뼈로 제작한 ‘뼈피리’이다. 한반도 최초의 악기도 대략 4천 년 전 청동기시대에 새의 뼈를 이용하여 제작한 ‘뼈피리’이다. 새의 뼈는 하늘의 날기 위해 뼈의 골밀도가 포유류보다 조밀하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가볍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악기가 관악기인 것은 아마도 타악기 관련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죽과 나무의 재료 구성된 타악기는 보존이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악기는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 순으로 형성 및 발달하였을 것이다.
현재 국악기에 해당하는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의 구성 비율은 타악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악기가 의식음악에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의식음악에 사용된 악기는 상징성과 의미를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감상보다는 의례 진행에 맞추어 악기를 사용한 경우가 다수이다.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음악은 인간의 감성을 수용하고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악기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국악기 개량은 이 시기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근대까지 지속적으로 변형과 개량이 진행되었다. 개량의 시간이 매우 완만하고, 개량의 범위도 제한적이지만 시대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관악기 개량방법은 관대의 길이와 굵기 그리고 관대에 뚫은 구멍의 위치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관대의 길이가 가장 긴 대금(大笒)과 중간 길이에 해당하는 중금(中笒) 그리고 관대의 길이가 가장 짧은 소금(小笒)이 있다. 대금의 관대 위에 구멍의 간격으로 인한 보조키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보조키를 설치한 대금은 흡사 플루트(flute)와 같은 형상이 된다. 관대의 굵기는 가장 굵은 당피리, 중간 정도의 굵기를 가진 향피리, 가장 얇은 굵기의 세피리가 있다. 그리고 관대의 숫자를 추가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생황은 관대 숫자를 13관, 17관, 36관 등으로 변화시키면서 음량과 음역을 확대하였다.
현악기 개량방법은 악기의 크기와 줄의 수 및 재질의 변화를 통하여 개량을 진행한다.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은 현재까지 외형적 변화 없이 유지 및 전승되고 있다. 현재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을 ‘풍류[정악]가야금’ 또는 ‘법금’으로 부르며, 풍류가야금에서 개량한 악기가 ‘산조가야금’이다. 산조가야금은 악기의 폭이 풍류가야금보다 좁으며, 오동나무 한판을 쓰지 않고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덧대어 만들었다. 이전 악기보다 순간적인 손놀림과 역동적인 농현(弄絃)의 사용이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었다. 악기의 크기 이외에 줄의 수를 조정하여 개량한다.
관악기와 현악기에서 사용한 악기 개량 방법 이외에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악기 개량을 추진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악기는 남한에서는 철현금(鐵絃琴), 북한에서는 옥류금(玉流琴)이다. 철현금의 줄은 철사줄을 사용한다. 줄은 악기의 몸통 위에 얹혀 있다. 철현금은 줄의 소재뿐만 아니라, 그 이국적인 외형 때문에 처음 이 악기를 접하는 사람은 국악기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 철현금은 1940년 말경에 김영철(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이 거문고와 ‘하와이안기타’의 장점을 흡수하여 만든 악기이다. 김영철은 가야금, 거문고, 기타 연주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기타를 뉘어서 연주하다가 착안하여 철현금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철현금은 8개의 철사줄과 24괘[줄받침]로 구성한다. 연주자는 오른손에 술대, 왼손에는 농옥(弄玉)을 사용한다. 술대를 이용하여 줄을 뜯거나 튕기고, 농옥을 사용하여 철사줄을 문지르듯이 흔들거나 눌러준다.
옥류금은 북한에서 1970년대 개량한 대표적인 현악기로 양금, 가야금, 하프의 장점을 합쳐서 만든 악기이다. 악기의 형태는 양금의 사다리꼴을 차용하였으며, 나일론 및 금속줄을 33줄 배치하였다. 하프처럼 페달을 사용한다. 연주방법은 가야금 주법을 양손을 이용하여 뜯거나, 튕기며 연주한다.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하프를 뉘어서 타는 것처럼 보인다. 악기의 소리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여, 옥류금이란 이름을 얻었다.
현악기 이동의 편리함을 위하여 악기를 절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몸통 중간 부분을 절단하였으며, 절단된 부분에 경첩을 달아서 ‘절금(折琴)’의 형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