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9호   山:門 HISTORY

근대, 국악기 개량의 변곡점

문주석_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문학박사
발행일2021.11.09

지난달 서울남산국악당의 ‘살롱1890’이 선보인 철현금은 근대의 역동성과 변화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 개량 국악기였다. 근대를 거쳐 음악의 수용이 개인화되면서 악기의 개량 역시 개인화되고 다양화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소리를 찾고자 하는 욕구와 결부된 국악기 개량의 몫과 폭, 그 변천의 양상을 살펴본다.

소리를 담는 그릇의 이름을 묻는다

근대(近代)는 근고(近古)와 현대(現代) 사이에 놓여있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옛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면서 혼종과 혼재, 이합과 집산, 충돌과 통합 등이 전개된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던 시기가 근대이다. 대중들은 새로운 신문물에 대해 비판 또는 환호로 화답하였다. 전통을 대체해가는 변화와 변혁의 물결에 국악(國樂)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악’이란 용어도 이 시기에 유입된 서양음악 즉, 양악(洋樂)과 구분하기 위하여 만든 단어이다. 근대시대에 한반도에 유입된 대표적인 서양악기는 바이올린(violin)과 피아노(piano)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또 다른 이름은 ‘사현금(四絃琴)’과 ‘귀신통’이었다. ‘사현금’의 사현(四絃)은 바이올린 줄이 네 줄이기 때문이며, 금(琴)은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한 현악기를 지칭하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만든 단어이다. ‘귀신통’은 피아노 소리를 난생 처음 들은 사람이 “나무통에서 귀신 소리가 난다.”고 표현해서 피아노를 ‘귀신통’으로 불렀다고 한다. 외국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 수용과 이해의 과정이 국악 용어와 악기 이름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기생이 양금(洋琴)을 합주하고 있는 모습, 1930 ⓒ 서울역사아카이브. 양금은 한국의 전통 현악기 중 하나로 서양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서양금', 유럽(구라파)에서 전래된 철현을 가진 현악기라 하여 '구라철현금'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악기 중에서는 유일하게 쇠줄을 가진 현악기이다. 사다리 모양의 몸통으로 되어있으며 그 위에 가는 줄 넷으로 이루어진 현 14개가 걸쳐져 있고, 손에 해죽(海竹)으로 된 가는 막대기를 들고 연주한다.

악기(樂器)는 ‘소리를 담는 그릇’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樂)의 해석에 따라 ‘약을 담는 그릇’ 또는 ‘즐거움을 담는 그릇’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악기를 통하여 치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악기는 담는 소리에 따라 그 모양이 각기 다르다. 인류 최초의 악기로 추정되는 악기는 독일 남부지역에서 발견한 3만 5천 년 전 새의 뼈로 제작한 ‘뼈피리’이다. 한반도 최초의 악기도 대략 4천 년 전 청동기시대에 새의 뼈를 이용하여 제작한 ‘뼈피리’이다. 새의 뼈는 하늘의 날기 위해 뼈의 골밀도가 포유류보다 조밀하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가볍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악기가 관악기인 것은 아마도 타악기 관련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죽과 나무의 재료 구성된 타악기는 보존이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악기는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 순으로 형성 및 발달하였을 것이다. 

41,000년이 넘은 뼈 피리 ⓒ 위키피디아

감수성의 변화에 따른 악기 개량의 요구

현재 국악기에 해당하는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의 구성 비율은 타악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악기가 의식음악에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의식음악에 사용된 악기는 상징성과 의미를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감상보다는 의례 진행에 맞추어 악기를 사용한 경우가 다수이다.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음악은 인간의 감성을 수용하고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악기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국악기 개량은 이 시기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근대까지 지속적으로 변형과 개량이 진행되었다. 개량의 시간이 매우 완만하고, 개량의 범위도 제한적이지만 시대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선 여인의 모습, 1930 ⓒ 서울역사아카이브
악기 제작기술은 고도의 최첨단 기술에 비유할 수 있다.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기존의 악기를 개량하여 성공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왜냐하면 악기 개량에는 수학·물리·과학·재료의 물성 등의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여 악기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능력과 수준을 구비하였다고 하더라도 연주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거나, 연주자가 이용하지 않으면 박제화된 악기에 불과하다. 악기는 주변 환경과 연주자의 요구에 의해 변화하거나 적응하면서 활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실험적인 상태로 창고에 남겨지는 사례도 있었다. 무수히 많은 실험과 실패작 위에 개량된 악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악기의 변화가 음악의 변화로

관악기 개량방법은 관대의 길이와 굵기 그리고 관대에 뚫은 구멍의 위치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관대의 길이가 가장 긴 대금(大笒)과 중간 길이에 해당하는 중금(中笒) 그리고 관대의 길이가 가장 짧은 소금(小笒)이 있다. 대금의 관대 위에 구멍의 간격으로 인한 보조키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보조키를 설치한 대금은 흡사 플루트(flute)와 같은 형상이 된다. 관대의 굵기는 가장 굵은 당피리, 중간 정도의 굵기를 가진 향피리, 가장 얇은 굵기의 세피리가 있다. 그리고 관대의 숫자를 추가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생황은 관대 숫자를 13관, 17관, 36관 등으로 변화시키면서 음량과 음역을 확대하였다.

박순아 <노쓰코리아 가야금>, 2019 ⓒ 천유신

현악기 개량방법은 악기의 크기와 줄의 수 및 재질의 변화를 통하여 개량을 진행한다.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은 현재까지 외형적 변화 없이 유지 및 전승되고 있다. 현재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을 ‘풍류[정악]가야금’ 또는 ‘법금’으로 부르며, 풍류가야금에서 개량한 악기가 ‘산조가야금’이다. 산조가야금은 악기의 폭이 풍류가야금보다 좁으며, 오동나무 한판을 쓰지 않고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덧대어 만들었다. 이전 악기보다 순간적인 손놀림과 역동적인 농현(弄絃)의 사용이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었다. 악기의 크기 이외에 줄의 수를 조정하여 개량한다.

좌로부터, 산조가야금, 정악가야금 ⓒ 국립국악원
가야금은 12현에서 17현·18현·21현·25현 등으로 줄의 수를 확대하였다. 줄의 수가 늘어나면서 악기의 몸통은 커지고 양손 주법이 가능하게 되었다. 가야금에서 양손주법 사용은 서양음악의 화성적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기의 개량이 음악의 변화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리고 가야금 줄의 재질을 명주실에서 나일론실 또는 철사줄로 다양화하여 음색의 변화도 개량하고자 하였다. 명주실은 부드럽고 깊은 여운이 있으며, 나일론실은 습도에 강하여 음정 변화가 적으며, 탄성이 뛰어나다. 철사줄은 맑고 청량한 음색을 선사하지만, 온도차에 따른 음정 조정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국악기 중에 철사줄을 사용하는 악기는 양금(洋琴)과 철가야금(鐵伽倻琴)이 있다. 양금과 철가야금은 기존의 악기 외형 변화 없이 줄의 소재만 다르다.

개량(改良)과 개악(改惡)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관악기와 현악기에서 사용한 악기 개량 방법 이외에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악기 개량을 추진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악기는 남한에서는 철현금(鐵絃琴), 북한에서는 옥류금(玉流琴)이다. 철현금의 줄은 철사줄을 사용한다. 줄은 악기의 몸통 위에 얹혀 있다. 철현금은 줄의 소재뿐만 아니라, 그 이국적인 외형 때문에 처음 이 악기를 접하는 사람은 국악기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 철현금은 1940년 말경에 김영철(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이 거문고와 ‘하와이안기타’의 장점을 흡수하여 만든 악기이다. 김영철은 가야금, 거문고, 기타 연주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기타를 뉘어서 연주하다가 착안하여 철현금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철현금은 8개의 철사줄과 24괘[줄받침]로 구성한다. 연주자는 오른손에 술대, 왼손에는 농옥(弄玉)을 사용한다. 술대를 이용하여 줄을 뜯거나 튕기고, 농옥을 사용하여 철사줄을 문지르듯이 흔들거나 눌러준다.

서울남산국악당의 근대음악축제 '재.재.재: 다시. 또. 한번'의 프로그램 중
'농옥전: 근대국악기의 재발견'에 소개된 철현금, 유경화 연주 ⓒ 서울남산국악당

옥류금은 북한에서 1970년대 개량한 대표적인 현악기로 양금, 가야금, 하프의 장점을 합쳐서 만든 악기이다. 악기의 형태는 양금의 사다리꼴을 차용하였으며, 나일론 및 금속줄을 33줄 배치하였다. 하프처럼 페달을 사용한다. 연주방법은 가야금 주법을 양손을 이용하여 뜯거나, 튕기며 연주한다.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하프를 뉘어서 타는 것처럼 보인다. 악기의 소리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여, 옥류금이란 이름을 얻었다.

현악기 이동의 편리함을 위하여 악기를 절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몸통 중간 부분을 절단하였으며, 절단된 부분에 경첩을 달아서 ‘절금(折琴)’의 형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옥류금을 연주하는 북한 학생,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 ⓒ 통일뉴스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악기 개량도 이와 같다. 악기가 처음 출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악기는 소수이다. 악기가 유입되고 전파되면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시대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면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소리로서 즐거움과 치유의 파동을 전해주기 위함이다. 악기 개량의 이면에는 인간의 간절함이 있다. 새로운 소리를 찾아서 들려주고자 하는 염원이 악기 개량의 갈망으로 이어진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마주하는 국악기 개량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문주석_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문학박사
경북대학교 및 영남대학교에서 국악학·음악학·한국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부를 하였으며, 그 길에서 본 것들을 담아내고 풀어내기 위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국악진흥의 공로로 2011년 제15회 난계 악학 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조선후기 음악연구의 성과로 2012년 제8회 이혜구 학술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