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4호   山:門 AROUND

국악 주위에서, 그 안에서 바라보다

김채운_공연기획팀 인턴
발행일2020.12.08

국악이 좋아서, 국악 주변을 맴돌다 국악 기획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그것은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의 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길을 가게 되는 누군가의 눈에 그 안과 밖의 차이는 어떨까? 국악 전공자가 아니지만 국악 마니아이면서, 서울남산국악당의 ‘청년국악기획자 양성과정’을 거쳐 인턴으로 선발된 예비 기획자의 시선에 국악, 그리고 국악당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국악 덕후’에서 인턴 기획자로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남산국악당 ‘2020 청년국악기획자 양성과정’ 교육을 수료하고, 공연기획팀 인턴으로 선발되어 지난 9월부터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난 9-10월 열린 ‘2020 K-뮤직페스티벌’과 ‘춘영 콘서트’를 담당했고, 이제 4개월 인턴 생활을 거의 마쳐가고 있답니다. 저는 사실 국악 전공자도 아니고, 공연예술 관련 경력도 전혀 없는 일반 대학생인데요. 이런 제가 어떻게 서울남산국악당에 인턴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직접 국악당 안에서 일하며 느낀 것은 무엇인지 적어보려고 합니다.

처음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어렸을 때, 서너 살쯤부터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른바 ‘퓨전국악’이 인기를 끌었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공명’, ‘슬기둥’ 등 퓨전국악그룹의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된 것이지요. 그 외에도 ‘난타’, ‘김덕수패 사물놀이’, ‘김영동’ 등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공연을 보고 집에 오면 항상 CD를 무한반복으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부터 국악을 자주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흥미가 생기게 되었고, 중학생 때 방과 후 사물놀이 수업을 계기로 사물놀이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풍물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진지하게 전통연희 전공을 고민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국악 덕후'의 시작, 이우고등학교 풍물패 ⓒ 이우고등학교 사진동아리 시선

비록 다른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했지만, 사물놀이를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었기에 사단법인 민족음악원 단원이신 임수빈 선생님께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뒤 저는 한편으론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가면서, 다른 한편으론 국악 공연과 사물놀이 연주에 푹 빠져 지내는 ‘국악 덕후(한 가지 분야에 깊이 빠진 사람.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의 삶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왜 사람들은 국악을 모를까?

‘아리랑유랑단 뉴욕프로젝트 1기’ 참가 당시, 뉴욕 할렘에 위치한 ‘데모크라시 프렙 차터 스쿨’에서
필자의 장구 독주 공연 ⓒ 이준호

이렇게 나름 오랜 세월 동안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향유하면서 든 질문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좋은 걸 왜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라는 것이었지요. 저처럼 국악을 즐겨 듣는 또래 친구들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관심이 없거나, 아예 접해본 적이 없거나, 느리고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국악에 대한 수요가 있으며, 즐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분명했습니다. 풍물패 친구들이 그랬고, 유튜브의 국악 관련 동영상에 달리는 댓글들이 그랬습니다. “이런 걸 왜 모르고 살았을까”, “국악이 이렇게 멋있을 줄 몰랐다”, “왜 이런 공연을 주변에서 볼 수 없나요?”... 그 두 가지 반응의 간극을 바라보며 저는 자연스레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이 국악의 매력을 알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던 차에 서울남산국악당의 ‘청년국악기획자 양성과정’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제 질문을 실제 공연 기획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을까 궁금해서 교육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마냥 ‘팬심’으로만 바라보던 국악 공연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내막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제 질문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뜻밖에도 인턴으로 선발되어 넉 달 간 서울남산국악당 공연기획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020 청년국악기획자 양성과정’ 교육 수료 후 최종 발표 모습 ⓒ 서울남산국악당

국악으로 줌인, 현장을 체험하다

그렇게 저는 국악 전공자도, 공연예술인도 아닌 ‘국악 덕후’로서, 국악 전용 공연장을 표방하는 서울남산국악당에 들어와 일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공연 관련 업무는 완전히 문외한이었기에 행정처리, 계약서 작성과 같은 기본적인 업무부터 차근차근 배운 뒤, ‘2020 K-뮤직페스티벌’과 ‘춘영 콘서트’ 담당자로 공연 전반을 운영하게 되었고요. 입사 직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그나마 계획된 공연들도 취소되거나 온라인 영상 송출로 전환되며 공연 현장을 경험하지 못 할 뻔했지만, 다행히 10월 들어 1단계로 완화되면서 ‘춘영 콘서트’를 정상적으로 대면 공연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2020 한옥콘서트 ‘춘영 콘서트’, 팥POTT <Piri On The Table> ⓒ 서울남산국악당
2020 한옥콘서트 ‘춘영 콘서트’, 이드 <쿨콘: Cool-Con> ⓒ 서울남산국악당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근무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아티스트들의 고민이 담긴 다양한 작업들을 관객이 아닌 기획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국악 마니아를 자처하는 저도 그동안 잘 몰랐던 수많은 공연단체들이 있었고, 수많은 전통예술인들이 국악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예술적 고민을 치열히 풀어나가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요. 더불어 실제 아티스트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이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의견 조율과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도 현장에서 직접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치 영화의 메이킹 영상, 혹은 비하인드 신을 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모든 것이 저에겐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제 질문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이렇게 많은 국악인들이 노력하고 있고, 작품도 음악도 너무 좋은데, 왜 대중들은 여전히 국악을 모를까요?

천하제일탈공작소, <삼대의 판> ⓒ 서울남산국악당

당위가 아닌 일상의 일부로 즐길 수 있을까

평소 국악 공연을 관람하러 가면 제일 신기했던 것이 바로 관객들의 추임새였습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렇게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망설임 없이 추임새를 넣는지. 나중에 대부분의 관객이 공연자의 지인이거나 동료 국악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대중들은 국악을 접할 기회가 적고, 따라서 그 음악을 제대로 향유하는 법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그 때문에 저 같은 일부 애호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연이 지인과 동료 국악인들로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공연자와 관객이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사이라는 느낌을 받다 보니, 일반 관객으로서 왠지 모를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이렇다 보니 국악 공연은 일반 대중이 아닌, 국악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만 찾아가게 된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제가 어떻게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돌이켜보면, 그 한가운데 ‘일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 속에서 항상 국악을 듣고, 종종 공연도 보러 가면서 자연스레 그 특유의 음악적 어법과 표현방식에 익숙해졌던 것이지요. 이에 따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국악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이처럼 ‘한국인이니까 한국 전통음악을 찾아 들어야 한다’라는 민족주의적 당위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가 순수하게 일상 속에 스며들 때 사람들이 국악을 더 친근하게 여기고, 더 자주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대중가요를 접하고, 일상 속에서 항상 노래를 듣기에 따로 이른바 ‘실용음악’을 ‘보존’하고 ‘발굴’하고 ‘대중화’할 필요가 없듯이요.

2020 K-뮤직페스티벌, <K-뮤직 스페셜: 헤이스트링 콘서트> ⓒ 서울남산국악당

‘청년’과 ‘창작’으로 대중에 다가서기

여기서 자연스레 공연장의 역할, 특히 국악 공연장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술가들이 아무리 치열하게 작업을 하더라도, 결국 그 결과물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곳이 바로 공연장이니까요.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 국악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공연장이 바로 좋은 국악 공연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남산국악당은 전통의 보존·계승에 집중하기보다는 ‘청년’과 ‘창작’을 화두로 삼는 공연장이라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체로 대중들이 ‘국악’ 하면 떠올리는 것이 지루함, 옛날, 오래됨, 고루함 등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임을 생각할 때, 젊음과 창작을 내세우는 것은 대중에게 좀 더 다가설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 역시 젊은 소리꾼들의 판소리에 트렌디한 음악을 얹어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대중들을 매료시킨 것처럼 말이지요. 서울남산국악당 대표 기획 프로그램인 ‘젊은국악 단장’을 비롯해 ‘젊은국악도시樂’, 그리고 제가 담당했던 한옥 콘서트 ‘춘영 콘서트’까지 모두 젊은 신진 국악인들의 창작 작품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또 예상과는 달리 국악당에 소속된 직원분들 대부분이 국악 전공자 출신이 아니었는데요, 다양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만들기에 더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더불어 ‘365일 국악이 흐르는 서울남산국악당’을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국악영상상영회’, ‘남산골 국악마실’ 등 야외 상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역시 점심시간에 남산골한옥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일상’에 국악이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습니다.

2020 젊은국악도시樂 ‘낮낮: 남산에서 쉬어가기’, 연희극제작소 와락 ⓒ 서울남산국악당

국악당이여, ‘덕후’를 공략하라!

국악 공연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요? 전통을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창작 작품을 발굴해서 그 모두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바로 국악 전용 공연장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궁극적으로는 국악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 그렇게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국악에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소위 ‘국악의 대중화’의 첫발은 저와 같은 마니아층, 즉 ‘덕후’들을 공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악 공연이 대중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진다면, 전공자와 대중 사이에 있는 마니아들이야말로 첫 번째로 공략(!)해야 할 타깃이기 때문이지요. 전국 각 대학교마다 하나씩 있는 풍물패들, 취미로 전통악기를 배우는 동호인들, 각 학교 방과 후 문화교실 수강생들, 지역 문화센터에서 국악을 배우는 중년층,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국내외 애호가들... 이처럼 이미 국악, 혹은 전통문화의 매력을 접해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만, 그들에게 국악 공연 정보가 잘 가닿지 않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공연장의 역할은 바로 그 마니아들에게 다양한 아티스트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겠지요. ‘국악·전통문화 덕후’들로 하여금 수면 밑에서 분투하는 수많은 전통예술인들의 존재를 알게 한다면, 자연스레 그들의 발걸음이 국악당으로 향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국악 공연 객석은 관계자·전공자가 아닌 마니아들로 서서히 가득 차게 되지 않을까요. 

2017년도 서강대학교풍물패연합(서강풍연) 가을공연. 서강풍연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학 풍물패이며,
국악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 서강풍연
어쨌든 내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올 서울남산국악당의 공연들이 어떤 모습일지 정말 기대됩니다. 저는 12월을 끝으로 인턴 생활을 마무리하지만,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도 ‘국악 덕후’로서 언제나 공연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서울남산국악당이 대표적인 국악 공연장으로서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김채운_공연기획팀 인턴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재학. 서강대학교 풍물패연합 활동과 더불어, (사)민족음악원 분당지부 ‘운풍헌’에서 사물놀이를 학습하고 있다. ‘2020 청년국악기획자 양성과정’ 교육 수료 후 서울남산국악당 공연기획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