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람(이하 이): 대학에 입학해서 어머니 모시고 처음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반칙왕>이에요. 그때 동대문 메가박스에 가서 엄청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벌써 20년 전이네요. 최근 영화 작업으로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요즘 같은 시기에도 영화계가 아주 멈춰버린 건 아니구나 싶네요.
김지운(이하 김): 후반작업 중이에요. 보통 장편영화는 2년 주기로 작업하는데, 이번 건 단편이고 50분 정도 나왔는데 48분까지 자르는 중이에요. 보통 유트브에 올라오는 단편영화들은 30분 정도를 선호하고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다소 길어서 조회수가 안 나오겠구나, 걱정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언택트>라는 제목인데 스마트폰으로 찍었어요. 안 어울리게 멜로 영화를 시도했는데, 제 스스로도 이게 맞나 반신반의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이: 저도 기사를 통해 트레일러를 봤던 것 같아요. 영화 역시 극장에서 감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영관 이외의 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는 좀 다르게 다가올 것 같네요.
김: 극장 관객이 전년 대비 70퍼센트가 빠져나갔고, 수입 역시 같은 비율로 감소했어요. <반도>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같은 흥행작이 7,8월에 개봉하면서, 이제 회복을 하려나 보다 했죠. 그런데 8월 15일 느닷없이 엄청난 감염 확산이 일어나면서 극장뿐 아니라 모든 게 다 얼어붙었어요. 영화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극장의 위기 아닌가 생각돼요.
영화는 다른 플랫폼을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시네마적이지는 않겠죠. 이런 게 영화지, 하는 큰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있잖아요. 극장의 위기로 그런 시네마틱한 영화는 점점 소멸되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대체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겠지요. 전염병 도래로 인한 유례없는 상황을 전 세계인이 맞닥뜨리고 있어서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넷플릭스, 왓챠 같은 OTT베이스의 산업은 더 커지겠죠.
김: 한국의 경우 이른바 ‘K방역’으로 해외에 알려지게 되니, 외국의 메이저 회사들로부터 콘텐츠 의뢰가 많이 와요. 영화 산업의 선진적 시스템을 갖춘 나라들 가운데 거의 유일무이하게 영화를 제작하고 찍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니까요. 외국의 유명 작품을 한국에서 리메이크하는 의뢰도 많이 받고요. 펜데믹 상황에도 저 나라는 제대로 사회가 작동되고 있구나, 하는 거죠.
이: 미국도 거의 올 스톱되고 있는 것 같던데, 지금 상황이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겠네요.
김: 그게 사실 제한적인 기회인 거죠.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대처 같은 느낌이 더 강해요. 당장 저도 영화 하는 사람으로서 시네마틱한 영상을 영화의 본령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TV 사이즈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갑갑하긴 하죠.
이: 그렇다면 구상이나 접근 자체가 달라질 수 있겠군요.
김: 그럴 수도 있죠. 가령, 영화감독 마이클 베이(Michael Bay)가 최근에 넷플릭스와 작업한 영화가 있어요. <6 언더그라운드>라고, <트랜스포머> 같은 블록버스터를 만들다가 재빠르게 넷플릭스로 가서 액션 영화를 찍었더라고요. 그의 인터뷰를 보면, 항상 극장에서 즐기는 대형 영화를 만들지 않았느냐, 그런데 TV로 영화를 보면 답답하지 않겠느냐, 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했냐 하면, “큰 TV를 사라.” 그렇게 바뀔 것 같아요. 극장 산업이 무너지니 프리미엄 극장만 남거나 어떤 테마, 캐릭터가 있는 극장만 남게 되겠죠. 이런 데 아니고서는 시네마틱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OTT 기반의 플랫폼인데, 그걸 제대로 향유하려면 큰 TV를 갖춰놔야 하는 거죠. 얄미운 말이지만 맞는 말이 되어버렸어요.
김: 어느 쪽에선 기회가 되겠지만, 사실 저도 코로나 사태 이후로 직격탄을 맞은 사람 중 하나거든요. 한불 합작 스파이물을 4년 기획해서 1년 동안 프리 프로덕션을 준비하며 공들이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이제 막 캐스팅하고 촬영 들어가려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올해 유난히 해외에서 촬영하는 작업이 많았다고 생각되는데, 그게 다 무기한 연기되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죠.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서 보면,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분야 중 하나가 공연이라고 생각돼요. 극장에 사람이 오지 못하니 그 피해나 손실이 엄청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 공연예술계는 전체적으로 패배감에 젖어있다고 보여요. 더구나 젊은 예술가들은 버틸 수가 없죠. 택배 등 생계전선에 뛰어들면서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공연을 기다리는 상황이에요.
김: 그렇군요. 코로나19의 잔인함은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큰 타격을 입힌다는 점인데,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분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듯이, 영화 쪽에선 장편독립영화, 예술영화들이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죠. 공통점이라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이 시기를 버틸 만한 자본력이 없다는 점이에요. 정부나 문화단체의 긴급지원이나 독립영화, 예술영화 보기 운동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펼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이: 저도 그런 영화들을 찾아서 보는 편이긴 한데, 좀 더 의식적일 필요가 있겠네요. 어쨌든 요즘 공연계의 가장 큰 화두가 영상 제작이에요. 이번 코로나 상황으로 취소되는 공연도 많았지만, 저희는 그래도 활동을 한 편이에요. 3월부터 무관중 온라인 공연 중계를 여러 번 경험했는데,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공연했을 때는 코로나 터지고 한 달이 채 안 된 시기여서 모두가 패닉이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매뉴얼이 있지만, 당시 공연 소개 멘트를 제가 하는데 관객 없이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해야 하니 좀 당황스러웠어요.
또한 영화에는 드라이브인 상영관이 있는데, 공연에서는 이번에 처음 경험했어요. 관객들이 차에서 비상등을 켜거나 클랙슨을 울리면서 반응을 하더라고요. 저로서는 그런 공연이 무관중 온라인 공연보다 낫다고 생각되었어요. 어떻게든 관객 반응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김: 그렇죠. 공연은 공간예술이고 극장예술이잖아요. 모든 공연물의 정체성에는 비복제성, 현장성, 관객이 포함되는데, 이런 게 전부 박탈당한 상황인 거죠. 물론 대안으로서 온라인 영상작업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이 상실된 상태잖아요. 백신이 나와도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묵시록적인 상황이고,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게 가장 무서운 거예요. 얼마 전에 어딘가 차를 타고 가면서 운전자 옆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데,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됐지 싶더라고요. 두렵다기보다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었어요. 남녀노소 모두가 마스크를 쓰는 싸이파이(Si-Fi) 영화 같은 세상이랄까요.
이: 이런 소재로 영화를 찍으셔도 되겠네요. 어쨌든 지금까지는 온라인 말고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듯해요. 국가기금 급하게 나오는 것 또한 어떻게든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자고 하는 게 대부분이어서 예술가들도 그쪽으로 작업해야 하는데, 저희끼리는 정말 온라인 공연이 유일한 대안인가 의문을 많이 던지고 있어요. 일단 그걸 받아들인다면, 온라인 자체 내에서 콘텐츠의 변화라든지 공연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생각해봐야 하겠죠.
김: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많겠죠. 포스트 코로나의 언택트 마케팅, 이런 신조어가 생겼어요. 공연 쪽 관계자의 분위기를 보면, 비슷한 여러 고민의 레이어가 드러나지만, 어쨌든 관객이 없는 공연에서 주최자가 갖는 절망감 같은 게 단순히 온라인 상영으로 충족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중에 언급된 대안으로 눈에 띄는 것은, 많은 관객은 불가능하더라도 일부의 관객을 두고서 공연을 촬영하는 것이었어요. 말하자면 공개방송 같은 건데, 이런 형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연자는 관객이 전무한 동영상 작업보다는 온라인 상태로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면서 동시에 관객과 호흡을 느끼면서 어느 정도 만족감, 성취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이: 감독님 말씀에 동감하고요. 전통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공연장을 기본으로 하는 공연 형태가 본래의 전통예술 정신과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어요. 가령 조선 시대 풍류방 음악은 적은 인원이 즐기는 형태였잖아요. 그게 무대화되고 불특정 관객과 만나면서 괴리감을 느끼고 그 사이에서 답을 못 찾고 있다가, 이제 관객과 아예 못 만나는 상황이 되면서 어디로 가야 하나 싶은 거죠.
두 번째는 상업예술이 아니다 보니 주어진 재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조차도 무대를 꾸미기에 너무나 부족한 상황에서 새롭게 촬영 장비나 영상 팀이 들어오게 되니 예산을 더욱 쪼갤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흔히 영화나 뮤직비디오에서 봤던 영상 퀄리티가 안 나오게 되고, 관객의 눈높이에 못 맞추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김: 해결책은 그런 콘텐츠에 대한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쪽 분야 전문가들이 좀 더 많은 논의를 거쳐야겠죠. 가령 유료 콘텐츠 동영상에 대한 논의랄까요. 지금은 무료로 많이 보고 있는데 유료화했을 때 누가 얼마나 보겠느냐 하는 예측 조사 같은 거죠. 이런 조사들을 통해 콘덴츠의 변화와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논의들. 물론 영화 같은 대중예술이 아닌 이상 순수예술은 아무래도 제한적인 측면이 있겠죠.
또한 온라인인 경우, 온라인에서는 좀 더 다양하게 서비스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요. 관객도 현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관람하게 되면, 극장 공간이 갖는 일종의 주술성이나 아우라가 있는데, 그 안에서 느끼는 감흥이나 에너지가 아무래도 반감되죠. 그것을 상쇄하는 좀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되려면 뭔가 계속 다른 메뉴들이 있어야 하거든요. 실시간 라이브인 경우 채팅도 할 수 있고요. 인터렉티브한 소통도 해야 하고, 그러니까 퍼포먼스 아티스트도 다른 탤런트가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린 듯해요. 그런 친화적 제스처를 보이는 걸 거북해하거나 힘들어하는 아티스트도 많잖아요. 억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은 좀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 네, 비주얼도 중요해졌고요. 인간적 매력으로도 어필하는 게 필요할 수 있겠죠.
김: 어쨌든 본령 이외의 다른 것들, 이 상황에서 이 판에 있으려면 그걸 개발하고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혹은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자기 작업만이 아니라 카메라나 관객을 위해 다른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인지 싶고요.
이: 저희는 연주가 아니라 연기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데요.
김: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메라의 클리셰라는 게 있잖아요. 클로즈업되었을 때 뭔가 연주에 심혈을 기울이는 절대적 순간들, 포착되는 피사체로서 룩이 요구되니 아무래도 신경 쓰이게 되죠. 그런 걸 생각하면 뭔가 멋있게 포즈를 취해야 하나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이: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영상물을 찍다 보니, 제일 많이 하게 되는 고민이 그거였어요. 관객이 공연장에 왔을 때는 큰 액자에서 각자가 보고 싶은 그림을 보게 되잖아요. 쉬고 있거나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공연의 일부로 볼 수 있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준비된 콘텐츠를 영상으로 찍다 보니, 현미경으로 공연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철저히 약속되고 영화처럼 엄청난 리허설을 거쳐서 작품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촬영하는 날 스태프들이 들어와서 한 번 쓱 훑어보고 촬영하다 보니, 아티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다른 결과물이 나올 때가 많은 거죠. 그래서 시청자들이 점점 외면하게 되는 게 아닌지 고민도 되고요.
김: 그런 비대면 공연물을 앞으로 계속 만들어야 한다면, 사실 비대면 공연, 낱말 하나 하나 한문으로 풀어봐도 그 말이 모순적이고 말이 안 되는데도 그 말을 써야 하는 시대가 와서 아이러니한데,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염병의 주기도 짧아지고 더 광범위해지니 계속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뉴 노멀’ 시대에 맞춰 생각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김: 그래서 소비자들이 즐길 만한, 원할 만한 다른 매체와의 결합, 비대면 공연물들을 어떻게 개발하고 만들 것인지, 어떤 새로운 형태로 관객에게 도달할 것인지, 많은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고민하겠고, 아직 방법은 모르겠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저희도 많이 고민해야겠죠. 그런 점에서 보내주신 자료 중에 다른 작가들과 협업하신 ‘상림 프로젝트’도 그 한 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더군요. 영상을 봤는데, 음악 자체를 향유할 수 있고, 거기에 바람 소리, 나뭇잎 휘날리는 소리, 새소리, 모두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더라고요. 단순히 동영상이나 온라인에 의지한다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만든다는 생각, 새로운 즐거움을 느꼈어요.
이: 2014년 장민승 작가, 정재일 음악가와 함께한 작업이에요. 경남 함양의 오래된 숲인 상림숲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휴대폰에서 나오는 음악을 감상하게 하는, 블루투스와 연동한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이었어요. 보신 건 이와 함께 제작한 상림 숲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기록 영상이죠. 저는 이런 시도를 좀 더 해보려는 생각이 있는데, 수천 명이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보는 시대에서 관객이 주체가 되는 공연 형태가 개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 기존과 다른 관객층이 어딘가 잠재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노르웨이에 슬로우TV라는 게 있어요. 기차 맨 앞이나 뒤에 카메라를 달고 풍경을 찍거나 하루 종일 불 쬐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하는데, 그걸 말 그대로 ‘멍때리면서’ 보게 돼요. 그런데 이게 시청률 30프로가 나오면서 대박을 쳤어요. 현란한 앵글이 아니더라도 편안하게 들여다보는 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거죠. 멍때리면서 사람들이 힐링 한다는 것을 콘덴츠로 바꾼 겁니다. 어쨌든 대중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은 고급 순수예술의 형태, 더 나아가 상림 숲에서처럼 체험형 공연을 찾는 관객층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에 맞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객층을 유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요즘엔 기술력을 담보하지 않아도 각자가 스스로 크리에이터가 되는 시대잖아요. 예술도 다르지 않다고 봐요. 수동적 관객이 아니라 모두 향유하고 헤쳐 모일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김: 그리고 국악이 크로스오버를 통해 현란하게 현대적 기법으로 작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얼마 전 지인의 가족이 가야금 공연을 한다고 해서 카톡(메신저 프로그램 카카오톡의 약칭)으로 보내주더라고요. 그것도 코로나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경험인 거죠. 그래서 카톡을 통해 실시간 라이브로 가야금 공연을 봤어요. 순간적으로 일단 신기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 이런 공연을 카톡으로 봐도 되나, 세 번째, 어쩌면 비상업적 순수예술이 이런 디바이스, IT 기반의 산업, OTT 플랫폼 산업을 이용해서 좀 더 확산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장일단이 있겠으나,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어쨌든 이런 상황이 되니 카톡으로 가야금 공연을 보는 경험이 생긴 거죠. 저도 그렇지만 대중들이 전통예술 공연을 찾아서 보진 않잖아요. 찾아가서 알려줘야 이게 재미있고 흥겹고, 뭔가 다른 예술적 즐거움이 있구나, 알게 되는 거죠.
이: 그런데 아까 유료화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전통예술의 경우, 비상업 예술이다 보니 정말 극소수 예술가 빼놓고는 만 원짜리 공연도 사람들이 잘 안 찾는 경우가 많아요. 이게 온라인으로 옮겨져 일정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면, 과연 이게 가능할까요. 그러려면 영화처럼 영상미가 담보되어야 하는지, 고민될 수밖에 없어요.
김: <북청아리랑> 연주하시는 걸 영상으로 봤는데, 대금 특유의 구슬픈 느낌이 너무나 와닿았어요. 다른 나라에도 저마다의 처량과 청승이 있겠지만 이런 느낌을 주는 악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일단 그런 좋은 콘텐츠를 유료로 봐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아까도 언급했듯이, 현란한 편집, 카메라 무브먼트로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풀샷으로 극장에서 보듯 전체를 한번에 보는 것을 선호하는 수용층도 있을 것이고요. 수용층의 욕구가 다양하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그 방식을 계속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 한데 가까이 술집만 봐도 다닥다닥 붙어서 즐기고 있는 걸 보면, 회의가 들기도 해요. 과연 공연이 이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남산국악당이나 국·공립 공연장은 휴관 중인데 뮤지컬 공연들은 매회 매진되면서 순항 중이고, 저희로서는 역차별받는 느낌인 거예요. 만약 전체 공연계가 중단되고 공연을 못할 것 같으면 정말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자고 할 텐데, 순수예술 하는 분들은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공연 영상도 이걸 만들어서 누가 보는지, 영상의 퀄리티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김: 그러고 보니 K방역의 한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의견을 접한 적이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예술가들이 ‘이제는 달라져야 살아남을 거야’ 체감하며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는데, 우리는 ‘언제 끝나나’ 날짜 계산만 하고 있다는 거예요. K방역이 굉장히 안전하지만 미래에 훨씬 늦게 대처하게 되는 단점도 있는 거죠.
이: 그런 면이 있을 수 있겠네요. 한데 영상화 작업이 한국은 코로나로 인해 생겨나고 있는데, 서구의 경우 공연의 영상화 작업이 꾸준히 있어왔잖아요. 내한하는 해외 공연들만 봐도 공연장에서 영상물을 같이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공연을 다른 맥락으로 볼 수 있어 소장의 욕구를 자극해요. 우리는 아직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영상화해서 유료화하는 데도 불리하고요.
이: 어쨌든 공연 말고도 영상이 홍수처럼 나오고 있는 시대이고, 잘 만든 것끼리 경쟁하는 시대잖아요. 공연 영상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더구나 온라인 공연 중계 영상은 퀄리티가 좋지 않고, 얼마 전에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가 도쿄발레단과 함께한 공연을 영상으로 봤는데, 심지어 이같은 웰메이드 공연 영상이라 해도 극장 아닌 환경에서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더라고요. 영상화 공연을 봤을 때 아쉬웠던 점들, 공연의 감각이 영상으로 어떻게 호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일단 극장 문화가 서구의 것이죠. 극장 공연물을 어떤 기록이나 상품, 콘텐츠로 다양하게 개발하는 건 그쪽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우리의 예술은 계승 혹은 전승예술이고, 서양은 기록예술이니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하거나 여러 작업들을 아카이빙 하지 않은, 두 가지 면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공연의 영상화라는 건 사실 자본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자본과 상관없는 접근이나 아이디어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더 그럴싸한 영상을 만들고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려면 어쨌든 그만큼의 자본이 들어가야 하고, 들어간 자본은 환수가 되어야 하는 거니까... 당연히 두 가지가 불일치되는 상황인 거죠. 많은 콘덴츠들이 수지가 안 맞을 겁니다. 아까 국가 지원금이 영상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쪽으로 좀 더 집중되고 특화된 전문가, 프로그램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영상화에 대한 미학적인 측면들은 영상을 찍는 사람과 연출자, 퍼포먼스 간에 수많은 논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돼요.
이: 예를 들면, 국립극장의 NT 라이브(National Theatre Live, 영국 국립극장이 영미권 연극계의 화제작을 촬영해 세계의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영상의 퀄리티가 굉장히 좋은데 한국의 국립극단 1년 예산에 맞먹을 정도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해요. 비용 문제로 따지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고, 그보다는 말씀하신 것처럼 사전 계획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7월 여우락 페스티벌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공연과 함께 영상까지 제작하려고 미리 준비한 경우와 공연만 준비했다가 영상을 온라인으로 내보내는 경우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당시 이태원 코로나 발발 이후 갑작스럽게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변경되어서, 중간에 계획을 바꾼 팀도 있었거든요. 저는 개막작을 맡았는데 공연 전날 미리 촬영을 해두었고, 전통음악에 기반한 창작이라 즉흥성의 요소도 많아 카메라 워크를 많이 안 하고 풀샷으로 촬영했어요. 라이브의 현장성을 살리느냐, 뮤직비디오 같은 형태를 선호하느냐의 차이가 있는데, 제 경우는 전자에 속하죠. 림킴(투개월 김예림)의 경우, 사전 촬영분과 공연 실황을 섞어서 송출했는데, 음악방송에서 그렇게 많이 해요. 타이거JK와 함께한 유경화 예술감독의 폐막작은 공연처럼 진행하기보다 한 곡 찍고 중간 중간에 인터뷰를 내보내거나 하면서 녹화 형태로 송출했는데 현장성은 아무래도 떨어지죠. 신기하게도 시청자들은 카메라에 신경 썼는지의 여부를 다 알더라고요.
김: 저도 타이거JK와의 협업 영상이 가장 눈에 띄었어요. 어쨌든 그런 셀럽과의 협업이 초기에는 관객 유인의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원, 민희의 <남창가곡>도 약간 놀랐고 신선했어요. 치보 마토(Cibo Matto)라는 일본 걸그룹 듀엣이 있는데 그 조합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단순히 동영상이 살길인가, 라는 반문보다는 즐겁게 새로운 예술을 하고 콘텐츠를 만든다는 마인드를 가지만 더 좋은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건 어쩌면 두려움에서 나오는 반문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공연의 근본적인 부분이 박탈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랄까요. 그런데 뭐 이렇게 된 이상 이 상황이 언제 끝나지, 하고 바라기보다 창작의 에너지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또 한 번 뼈저리게 느낀 것은 저도 그렇고 대부분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세계는 하나로 엮여있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살벌하게 각인시킨 겁니다.
이: 제가 요즘 하는 생각은, 예술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기회를 틈타 시류를 타기보다는 국부적으로, 게릴라적으로 만나 실험하고 작업하면서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관객의 짐을 덜어주는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감독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영상과 공연에 걸쳐 여러 생각해볼 지점들을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정리 허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