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이하 김): 이 정원은 신경 안 쓰고 그대로 놔둬도 돼요. 손톱 깎듯이 조금씩만 손대는 걸로 족한데, 김춘옥이라는 전통정원의 대가의 솜씨죠. 특히 돌을 잘 다뤄서 현관에 장대석을 배치했는데 마치 천 년 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뛰어난 게 ‘차경(借景)’이라는, 경치를 빌려오는 기술이에요. 저기 보이는 인왕산이 내 것은 아니지만 보면 내 것이 되는 거죠. 이 집은 마당에서 네 개의 산, 그러니까 북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을 다 볼 수 있어요.
나무령(이하 나): 그런 묘미가 있군요. 저는 전통음악을 전공했지만 전통이 체감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요. 그래서 그러한 음악이 존재했던 시대나 환경을 찾아다녔어요. 익선동 한옥에서 공연한 것도 그러한 시도의 하나였죠. 거기서 공간 자체의 힘을 이용해보고 싶었어요. 전통악기는 음량의 발전이 없고 원래 작은 소리로 공간을 울려서 내는 악기인데, 한옥에서 연주하면 그대로 전달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 1984년에 국립국악원 설계를 맡았을 때 참 고민이 많았어요. 국악은 서양식 오디토리움에서처럼 연주하고 듣다가 박수하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국악원을 설계하려니 국악을 알아야 해서 그때부터 국악 하시는 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성경린, 이해구, 황병기 등 최고의 학자들, 연주자들과 그때 만났어요. 그분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사물놀이나 농악 등처럼 연주자와 관람자가 전부 다 같이 혼연일체로 노는 것인데 이걸 서양식 오디토리움에 집어넣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우리 음악은 연주자, 감상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국악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다는 게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죠. 왜 그럴까. 성경린 선생에 따르면, 창이나 가야금 등 스승에게 배우고서 하산하라고 할 때는 자기 것을 찾았을 때라는 거예요. 선생 흉내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기존의 것을 배우고 기록하는 게 전통이 아니라 ‘있는 것을 깨는 것이 전통’이라는 얘기에요.
나: 제 경우는 집에서 혼자 연습하면서 듣는, 억지로 크게 안 내는 악기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음악이란 게 계속해서 변화되는 시대의 문화, 즉 언어와 같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쓰던 단어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하죠. 음악도 예전에는 존재하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탄생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음악은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전통음악에 대한 장벽, 편견을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주로 이천 한정식과 햇반의 비교론을 펼치곤 하는데요. 물론 햇반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구요. 요즘의 전통음악 씬이 햇반화된다고 생각을 해요. 국악을 보급하고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 번을 먹더라도, 접하더라도 잊을 수 없는 그 맛을, 정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햇반에서 이천 한정식의 솥밥 맛이 난다면 되겠죠?
이렇게 정성껏 차린 한상을 드리자는 마음으로 자연속에 들어가 1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봤어요. 그게 제 첫 작업이었는데, 서울숲 안에 은행나무가 우거진 곳이 있어요. 그곳에 아크릴판으로 작은 투명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아크릴을 사용했던 건 전통악기가 친화적이다보니 자연을 보고 느끼면서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또한 악기의 작은 소리부터 연주자의 호흡까지 오롯이 전달하고 싶어서 자연음향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공간 자체가 큰 울림통이 되어 소리를 공명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과학적으로 소리가 튕겨 나가는 시간, 반복되어 울리는 음량, 두께 등을 공부하지는 못했어요. 단지 소리가 울리는 공간이 필요했던 거였죠. 한데 아크릴 소재라 소리가 너무 튕겨서 오히려 자연 음향인데도 큰 소리를 못 냈어요.
김: 요즘 공연은 왕이나 양반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 1,2천 명 앞에서 해야 하니 전달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가장 좋은 국악연주를 들으려면 10명 이내의 인원이어야 해요. 200명 오면 그만큼 전달력이 떨어지죠. 자연스럽고 무리하지 않는 게 음악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해서, 모차르트는 작곡할 때 여가수의 높은 음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요.
나: 보통 많은 분들이 왜 전통악기를 굳이 자연 속에서 연주해야 하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가설의 중독자입니다, 라고 말하곤 해요. 우리 안에는 자연에 대한 본능이 내재되어 있고 자연으로 가야 인간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거죠. 한옥 공간도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익선동에서 공연했을 때는 뼈대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내부는 완전히 현대식이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의 역사가 변화하는 과정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김: 한옥도 정말 불편한 게 많고 좋은 점도 많아요. 우리 집은 절충된 형태죠. 한옥이 아닌 본채에서 음식, 세탁 등 물, 불 쓰는 일을 하고, 한옥에서는 낮잠 자고 멍때리고 마당 쳐다보고 그러죠. 삶의 양식이 변하니 공간, 연주, 악기도 변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의 것만 고집하면 보수,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거예요. 예술가는 결코 보수일 수가 없어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니 어제 한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어요.
나: 선정 기준이 어떻게 되었나요?
김: 상태가 좋은 것 우선이었어요. 일제 강점기 부잣집, 양반집 등을 옮겨와서 조립한 것인데, 그중 윤비 생가만은 카피해서 지었어요. 왜냐하면 그걸 다 모으다 보면 평평하고 변화가 없어요. 윤비 집은 높이가 있어 중심으로 해서 배치했죠. 하필 친일 계열의 집이냐는 논란이 있긴 했지만 회현동이 일본인 주거지였잖아요. 동네 이름을 보면 회현동은 현자들이 모인 동네란 뜻이고, 예장동, 필동, 묵동, 주자동 등 다 선비, 예술, 글쓰기랑 관련된 이름이에요. 그래서 일본인이 차지하고 선비들을 쫓아낸 거죠. 정신의 고향을 되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아픈 역사가 누적된 곳이에요.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 노태우 사령관의 어머니가 꿈에 절을 지어 시주하면 대통령이 된다는 계시를 받았대요. 그래서 아들에게 얘기했더니 절 하나 짓자고 해서 그 안에 충장사라는 절을 지었어요. 노태우가 워낙 인기가 없어서 이 이야기가 잘 안 알려졌지만 어쨌든 영험한 절이 된 거죠. 한옥마을 조성 당시 마침 남산 1호 터널을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있었고 그 절이 그 위치에 있어 헐어버리려고 했는데,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이상한 압력이 들어와서 결국 못 헐었죠.
나: 서촌의 홍건익 가옥에서 하루 동안 작업하는 레지던시를 한 적이 있었어요. 공공재로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한옥인데 그곳을 벗어나면 혼잡한 길거리가 굉장히 이질적이에요. 대문까지 깊숙이 들어가야 해서 그 안에 그런 게 있을지 몰랐어요.
김: 그곳이 상징적인 곳이에요. 의관, 역관 등 중인 계급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이 모여 살던 곳이죠. 고씨네 역관이 5대째 살던 집인데 중인 계급인 역관의 집치고는 문간채, 사랑채 등 양반집처럼 완벽히 갖추고 있어요. 사회 계급 때문에 밖으로는 눈에 안 띄게 하면서 내실을 갖추고 살았던 거죠. 마지막 대의 아들에게는 불어 역관을 시키려고 해서 그 아들이 불어를 배우다가 화가가 되었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에요. 그 가옥은 ‘역관 고씨 집안’으로 이름을 바꿔야 의미가 있어요.
나: 그렇군요. 저는 감사하게도 특별한 장소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이 주어져서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해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한옥의 경우 도심의 한옥과 자연 속의 한옥이 많이 달랐는데, 환경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설계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김: 건축가로서 당연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건축이라는 게 자연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려는 명목으로 자연을 거부하고 훼손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건축가로서 원죄가 있죠. 한데 한옥은 그렇지가 않아요. 서양처럼 철저히 막는 게 아니라 조립식이고, 공간에 대해 접근하는 견해가 달라요. 서양 건축은 구획해서 공간을 만드는 벽이 중요한데 한옥은 벽이 없어요. 기둥 네 개에 지붕을 얹고 흙벽으로 막거나 터놓거나 해서 주로 벽은 없는 거예요. 기단과 지붕이 있고 그 사이 빈 공간으로 바람이 통하죠. 그게 ‘천지인(天地人)’의 구조에요. 이게 오랜 세월 동안 하나의 철학으로 발전시켜오면서 세련되어졌어요.
나: 혼잡한 도심 안의 한옥은 보존이 되면서도 적절하게 변화되고 흡수되는 그런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갖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한옥에서 작업하면서 궁금했던 점들이 대화 나누면서 많이 풀린 것 같네요.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