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1호   山:門 PEOPLE

공간을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김원(건축가) × 나무령(해금연주자) 대담

건축가김원
음악가나무령
발행일2020.06.02

봄날, 한옥이 있는 마당을 거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설렘이 있다. 그만큼 그러한 공간이 지금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금연주자인 나무령의 경우, 예술 작업을 하는 특수한 장소로서의 한옥보다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한옥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한옥채를 거느린 건축가 김원의 집을 찾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남산국악당의 ‘청년국악 단장’에 선정된 아티스트로 그간 꾸준히 공간 작업을 해온 나무령과 한옥 연구와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온 건축가 김원은 그렇게 만났다.

자연을 닮은 공간과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김원(이하 김): 이 정원은 신경 안 쓰고 그대로 놔둬도 돼요. 손톱 깎듯이 조금씩만 손대는 걸로 족한데, 김춘옥이라는 전통정원의 대가의 솜씨죠. 특히 돌을 잘 다뤄서 현관에 장대석을 배치했는데 마치 천 년 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뛰어난 게 ‘차경(借景)’이라는, 경치를 빌려오는 기술이에요. 저기 보이는 인왕산이 내 것은 아니지만 보면 내 것이 되는 거죠. 이 집은 마당에서 네 개의 산, 그러니까 북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을 다 볼 수 있어요.

김원 건축가 옥인동 자택 내 한옥채 앞 ⓒ 남산골한옥마을

나무령(이하 나): 그런 묘미가 있군요. 저는 전통음악을 전공했지만 전통이 체감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요. 그래서 그러한 음악이 존재했던 시대나 환경을 찾아다녔어요. 익선동 한옥에서 공연한 것도 그러한 시도의 하나였죠. 거기서 공간 자체의 힘을 이용해보고 싶었어요. 전통악기는 음량의 발전이 없고 원래 작은 소리로 공간을 울려서 내는 악기인데, 한옥에서 연주하면 그대로 전달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1984년에 국립국악원 설계를 맡았을 때 참 고민이 많았어요. 국악은 서양식 오디토리움에서처럼 연주하고 듣다가 박수하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국악원을 설계하려니 국악을 알아야 해서 그때부터 국악 하시는 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성경린, 이해구, 황병기 등 최고의 학자들, 연주자들과 그때 만났어요. 그분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사물놀이나 농악 등처럼 연주자와 관람자가 전부 다 같이 혼연일체로 노는 것인데 이걸 서양식 오디토리움에 집어넣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우리 음악은 연주자, 감상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국악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다는 게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죠. 왜 그럴까. 성경린 선생에 따르면, 창이나 가야금 등 스승에게 배우고서 하산하라고 할 때는 자기 것을 찾았을 때라는 거예요. 선생 흉내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기존의 것을 배우고 기록하는 게 전통이 아니라 ‘있는 것을 깨는 것이 전통’이라는 얘기에요.

김원 건축가 옥인동 자택 정원 ⓒ 남산골한옥마을
: 그렇게 보면 지금은 오히려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네요. 제가 늘 고민하고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제가 ‘나만의 전통’이에요. 아직 새로운 전통을 쓸 만한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제가 공간 작업에 관심이 많은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해요. 오래된 장소에 가서 90년대에 태어난 제가 몇백 년 전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노라면 미묘하게 다른 시간과 조건이 만나는 것들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아가서 음향을 위한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 잔향 이펙트가 중요하죠. 설계자가 바닥이나 천장, 청중의 머리나 몸에서 흡수하고 반사하는 음의 잔향 시간을 잘 계산해야 좋은 음악을 들을 수가 있어요.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에는 좋은 연주홀이 없어요. 한데 서양식 공연장과 국악원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해요. 가령 가야금의 잔향 시간은 어떻게 될까. 그런데 이걸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어요. 국악 명인들은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는 소리’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을 안 하니까요. 꽹과리, 나발 같은 실외 악기는 반경 1km까지 소리가 들려요. 종묘제례악의 경우, 실내가 아니라 종묘 마당에서 연주하던 음악이죠. 그러다가 일본에 자료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옛 선생들의 가르침에 관한 기록이나 교과서가 잘 남아 있어요. 거기 가서 많이 배웠죠.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들이 우리한테서 배워갔다는 것. 조금 해결이 됐지만 우리 음악의 범위가 워낙 넓어 잔향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가변적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고, 매번 변환 무대로 할 수 있게 했는데, 지금은 고정석으로 바뀌어버린 게 아쉽죠.

음향은 과학적, 기술적으로 해결이 가능해요. 창문의 여닫음에 따라 흡음판이나 반사판으로 조절 가능하도록 만들어놨죠. 또 국악은 계단식 좌석보다는 평상 형태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문공부에서 반대했어요. 지금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죠. 국악원을 설계하긴 했으나 잘 됐다고 할 수가 없어요. 이런 데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계기가 있어요.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공간사랑 소극장을 만들었을 때 30~60명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방석을 깔고 앉았어요. 거기서 사물놀이, 병신춤 등 전통 공연이 많았죠. 공연 형식에 맞게 공간이 유연해야 한다는 거예요.
국립국악원 ⓒ 정정웅

: 제 경우는 집에서 혼자 연습하면서 듣는, 억지로 크게 안 내는 악기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음악이란 게 계속해서 변화되는 시대의 문화, 즉 언어와 같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쓰던 단어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하죠. 음악도 예전에는 존재하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탄생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음악은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전통음악에 대한 장벽, 편견을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주로 이천 한정식과 햇반의 비교론을 펼치곤 하는데요. 물론 햇반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구요. 요즘의 전통음악 씬이 햇반화된다고 생각을 해요. 국악을 보급하고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 번을 먹더라도, 접하더라도 잊을 수 없는 그 맛을, 정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햇반에서 이천 한정식의 솥밥 맛이 난다면 되겠죠?

이렇게 정성껏 차린 한상을 드리자는 마음으로 자연속에 들어가 1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봤어요. 그게 제 첫 작업이었는데, 서울숲 안에 은행나무가 우거진 곳이 있어요. 그곳에 아크릴판으로 작은 투명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아크릴을 사용했던 건 전통악기가 친화적이다보니 자연을 보고 느끼면서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또한 악기의 작은 소리부터 연주자의 호흡까지 오롯이 전달하고 싶어서 자연음향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공간 자체가 큰 울림통이 되어 소리를 공명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과학적으로 소리가 튕겨 나가는 시간, 반복되어 울리는 음량, 두께 등을 공부하지는 못했어요. 단지 소리가 울리는 공간이 필요했던 거였죠. 한데 아크릴 소재라 소리가 너무 튕겨서 오히려 자연 음향인데도 큰 소리를 못 냈어요.

투명 아크릴판을 이용해 연주 공간을 만든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나무령 작가 ⓒ 남산골한옥마을

: 요즘 공연은 왕이나 양반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 1,2천 명 앞에서 해야 하니 전달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가장 좋은 국악연주를 들으려면 10명 이내의 인원이어야 해요. 200명 오면 그만큼 전달력이 떨어지죠. 자연스럽고 무리하지 않는 게 음악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해서, 모차르트는 작곡할 때 여가수의 높은 음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요.
 

전통과 변화의 수용 사이에서

: 보통 많은 분들이 왜 전통악기를 굳이 자연 속에서 연주해야 하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가설의 중독자입니다, 라고 말하곤 해요. 우리 안에는 자연에 대한 본능이 내재되어 있고 자연으로 가야 인간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거죠. 한옥 공간도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익선동에서 공연했을 때는 뼈대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내부는 완전히 현대식이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의 역사가 변화하는 과정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한옥도 정말 불편한 게 많고 좋은 점도 많아요. 우리 집은 절충된 형태죠. 한옥이 아닌 본채에서 음식, 세탁 등 물, 불 쓰는 일을 하고, 한옥에서는 낮잠 자고 멍때리고 마당 쳐다보고 그러죠. 삶의 양식이 변하니 공간, 연주, 악기도 변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의 것만 고집하면 보수,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거예요. 예술가는 결코 보수일 수가 없어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니 어제 한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어요.

나무령 <전통, 익선하다>, 2018, 사진 제공: 나무령
: 저의 세대가 겪고 있는 가장 풀리지 않는 난제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전통도 지켜야 하지만 새롭기도 해야 하는데, 고민을 하기에도 속도감이 너무 빠른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건축에 대한 가치관이라든지 변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 것이 있나요?

: 엄청나게 달라졌죠. 대학 졸업 후 김수근 선생의 ‘공간’사에 다닐 때 지향하던 것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었어요. 그때 우리는 너무 못살고 지저분하고 불결했던 거죠. 어떻게 할 거냐. 대학 졸업 후 다들 미국 유학 가는데 나는 그게 싫었어요. 건축을 전공했는데 미국 안 가겠다는 건 법대 나와서 고시 안 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죠. 한데 땅도 넓고 돈도 많은 그 나라와 우리는 상황이 다르니 미국에서 배울 게 없겠더라고요. 마침 네덜란드를 봤더니 우리나라처럼 땅 좁고 환경도 열악하고 우리와 문제가 비슷해서 배울 것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덜란드 여왕이 주는 장학금으로 기회를 잡았죠. 어렸을 때 잘 판단했던 것 같아요.  첫 시간에 엄청난 경쟁을 뚫고 각국에서 온 학생 20명이 모였는데, 교수가 들어와 제 이름을 부르더니, 한국에서 왔냐며 잠깐 일어나보라고 하더라고요. “이 사람 잘 봐둬라. 한국은 건축에 관한 한 정말로 배울 게 많은 나라다. 한국에 가면 온돌이라는 난방 시스템이 있는데 그 시스템은 오천 년 동안 세계 다른 어떤 민족도 가져보지 못한 아주 독창적인 난방 방식이다. 그런데 그것을 만든 나라가 한국이다. 거기서 왔으니 너희랑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분이 주택을 대량생산하는 매스하우징(mass housing)을 연구하는 학자였는데 북한에서 온돌을 경험했나 봐요. 고맙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그 이후부터 언덕 위 하얀 집의 꿈을 버리고 자랑스런 우리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한옥마을의 숨겨진 이야기

: 2018년 ‘저니투코리아(Journey to Korea)’라는 아트마켓 프로그램을 남산 한옥마을에서 진행한 적이 있어요. 한옥마을의 정원에서 지도를 가지고 산길을 다니며 음악 보물찾기를 하는 작업이었는데, 자연 속에서 음악을 가까이 들으니 좋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죠. 한옥마을은 전통정원도 함께 조성되어 있어서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남산골 한옥마을 조성에 기여하신 분이기도 한데, 그 과정에서 염두에 두신 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지네요.

: 그게 고건 시장 때의 일이었죠. 당시 그곳에 수도방위사령부라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부터 조선통감부의 주둔 부대가 있던 곳이에요. 그래서 우리 민족으로서는 재수 없는 곳이었죠. 그러다가 고건 시장이 당시 사령관인 노태우를 설득해서, 수도방위사령부를 옮기고 그곳을 무엇으로 활용하면 좋은지 연구 용역을 맡게 되었어요. 가서 봤더니 지금 대문이 있고 주차장이 있는 곳에 탱크 20대가 있었어요. 국악당 자리가 연병장이었고 타임캡슐은 사령부 숙소였고요. 외침으로부터의 수도 경비가 아닌 내부 반란이 있을 때 즉각 진압할 수 있는 부대였죠. 직접 보니까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게 마음이 아파서 무엇보다도 문무(文武)를 교대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남산 딸깍발이’가 살던 곳이잖아요. 남산 한옥마을은 북향 언덕이라 좋은 집터가 아니에요. 그래서 땅값이 싸니 돈 없는 선비들이 집 짓고 살면서 정계 진출을 기다리던 곳이죠. 남산 딸깍발이의 문기(文氣)로 무기(武氣)를 씻어내야겠다고 생각했죠.

둘째로는 삼단으로 깎아서 망쳐진 지형을 최대한으로 계곡의 흙을 파서 능선을 살리고 자연천인 실개천을 복원했어요. 지금 조성된 실개천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옛날 원형으로 돌아간 거예요. 이 두 가지, 문기와 자연 지형의 복원이 주요한 개념이었어요. 여기에 무슨 기능을 집어넣을 것인가. 한국의 전통 공예, 공방 등을 공원에 만들자고 했죠. 공사를 한창 하고 있었는데 서울시가 엄청나게 팽창하던 시기라 새로운 길을 내면서 헐리는 한옥들이 많았어요. 한옥은 분해하면 다시 조립되지만 밀어버리면 다 쓰레기가 돼버려요. 그걸 다 모아서 거기에 복원하자고 했죠.

: 선정 기준이 어떻게 되었나요?

: 상태가 좋은 것 우선이었어요. 일제 강점기 부잣집, 양반집 등을 옮겨와서 조립한 것인데, 그중 윤비 생가만은 카피해서 지었어요. 왜냐하면 그걸 다 모으다 보면 평평하고 변화가 없어요. 윤비 집은 높이가 있어 중심으로 해서 배치했죠. 하필 친일 계열의 집이냐는 논란이 있긴 했지만 회현동이 일본인 주거지였잖아요. 동네 이름을 보면 회현동은 현자들이 모인 동네란 뜻이고, 예장동, 필동, 묵동, 주자동 등 다 선비, 예술, 글쓰기랑 관련된 이름이에요. 그래서 일본인이 차지하고 선비들을 쫓아낸 거죠. 정신의 고향을 되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아픈 역사가 누적된 곳이에요.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 노태우 사령관의 어머니가 꿈에 절을 지어 시주하면 대통령이 된다는 계시를 받았대요. 그래서 아들에게 얘기했더니 절 하나 짓자고 해서 그 안에 충장사라는 절을 지었어요. 노태우가 워낙 인기가 없어서 이 이야기가 잘 안 알려졌지만 어쨌든 영험한 절이 된 거죠. 한옥마을 조성 당시 마침 남산 1호 터널을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있었고 그 절이 그 위치에 있어 헐어버리려고 했는데,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이상한 압력이 들어와서 결국 못 헐었죠.
 

벽으로 구획한 공간, 벽 없는 공간 

: 서촌의 홍건익 가옥에서 하루 동안 작업하는 레지던시를 한 적이 있었어요. 공공재로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한옥인데 그곳을 벗어나면 혼잡한 길거리가 굉장히 이질적이에요. 대문까지 깊숙이 들어가야 해서 그 안에 그런 게 있을지 몰랐어요.

: 그곳이 상징적인 곳이에요. 의관, 역관 등 중인 계급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이 모여 살던 곳이죠. 고씨네 역관이 5대째 살던 집인데 중인 계급인 역관의 집치고는 문간채, 사랑채 등 양반집처럼 완벽히 갖추고 있어요. 사회 계급 때문에 밖으로는 눈에 안 띄게 하면서 내실을 갖추고 살았던 거죠. 마지막 대의 아들에게는 불어 역관을 시키려고 해서 그 아들이 불어를 배우다가 화가가 되었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에요. 그 가옥은 ‘역관 고씨 집안’으로 이름을 바꿔야 의미가 있어요.

: 그렇군요. 저는 감사하게도 특별한 장소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이 주어져서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해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한옥의 경우 도심의 한옥과 자연 속의 한옥이 많이 달랐는데, 환경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설계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 건축가로서 당연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건축이라는 게 자연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려는 명목으로 자연을 거부하고 훼손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건축가로서 원죄가 있죠. 한데 한옥은 그렇지가 않아요. 서양처럼 철저히 막는 게 아니라 조립식이고, 공간에 대해 접근하는 견해가 달라요. 서양 건축은 구획해서 공간을 만드는 벽이 중요한데 한옥은 벽이 없어요. 기둥 네 개에 지붕을 얹고 흙벽으로 막거나 터놓거나 해서 주로 벽은 없는 거예요. 기단과 지붕이 있고 그 사이 빈 공간으로 바람이 통하죠. 그게 ‘천지인(天地人)’의 구조에요. 이게 오랜 세월 동안 하나의 철학으로 발전시켜오면서 세련되어졌어요.

: 혼잡한 도심 안의 한옥은 보존이 되면서도 적절하게 변화되고 흡수되는 그런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갖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한옥에서 작업하면서 궁금했던 점들이 대화 나누면서 많이 풀린 것 같네요.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김원 건축가와 나무령 작가 ⓒ 남산골한옥마을

정리 / 허명진 (편집장) 
건축가 김원
1943년 서울 출생, 서울공대 건축공학과 졸업, 김수근 건축연구소 근무, 네덜란드 바우센트룸 국제대학원 DIPLOM. 현재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및 도서출판 ‘광장’ 대표, 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 한국실내건축가협회 명예회장, 서울특별시 광화문포럼 위원장으로 있다. 주요작품으로 한강성당, 명동 센뽈수도원, 국립국악원, 통일연수원, 남양주종합촬영소, 광주 가톨릭대학교, 주한 러시아대사관, 이화여대 경영관ㆍ국제기숙사,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 태백산맥문학관 등이 있다.
음악가 나무령
나무령은 전통과 현대, 음악과 예술이라는 시대와 장르의 개념적 한계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유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탐험하는 창작자이다. 주요 작업으로 <1인을 위한 시공간전_회귀>(2018, 서울숲), 서울 아트마켓 저니투코리아 루키 쇼케이스(2018, 남산한옥마을), <전통, 익선하다>(2018, 익선동 한옥거리), ‘젊은국악 단장’ 선정 및 쇼케이스 <제1행, 물:수>(2019, 서울남산국악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