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한옥마을 현대음악시리즈 1

아시안아트 앙상블 <RITUALS> 

 

미래를 노크하는 현대음악의 진격지, 

아시안아트 앙상블

글_송현민

 

남산골한옥마을 현대음악시리즈 - 아시안아트 앙상블 <RITUALS> 포스터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음악이라는 연료는 금세 연소 되고야 만다. 하지만 새 음악을 찾는 사람들의 갈증은 금세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던 중 21세기가 열리고 2010년 즈음, 국내에 새로운 음악과 얼굴들이 등장 하기 시작했다. 

 

정가악회 창단멤버 출신으로 영국 유학을 마치고 2010년에 베를린에 정착한 대금연주자 유홍이 국내에 잠깐씩 들러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는가 하면, 2010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국내에 생소한 재독(在獨)작곡가 정일련을 발굴하여 그의 관현악곡 ‘파트 오브 네이처’를 신작으로 과감히 밀어 붙였다. 또한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독일 바이에른 주립극장의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올린 진은숙은 서양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생 황 협주곡 ‘슈’를 작곡, 우 웨이(Wu Wei)의 협연으로 2009년에 발표하기도 했다.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동서양의 연주자들이 2009년에 창단한 단체다.
 

 

정일련, 유홍, 우 웨이. 그들은 자국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서양음악과 만나는, 조금은 이색적인 교각 위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관객들은 이들이 동거하는 아시안아트 앙상블에 대 한 궁금증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2016년 아시안아트 앙상블의 첫 내한 공연은 예정된 수순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글에는 정일련의 인터뷰가 포함되어 있다.)

 

 

동·서 음악의 만남에 새 불을 놓다.

왼쪽부터 Matthias Leupold(바이올린), Gabriella Strumpel(첼로), Matthias Bauer(콘트라베이스), 유창연(비올라)

2009년 결성된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한마디로 ‘비-아시아권(유럽)’에서 태어난 ‘범아시아적’이고 ‘탈-유럽적’인 성격의 앙상블이다. 2007년 우 웨이가 독일의 뮌헨 무 지카 비바에 초청 받으면서 결성의 불씨가 피어났다.

“서양의 현대음악계는 새로운 악기의 도입에서 신선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당시나 지금도 그들(서양인)의 귀에 신선하게 들리는 것이겠죠. 동아시아 악기의 특별한 연주법과 음색은 서양 악기와 함께할 때 그 특성이 더 드러나잖아요.”

 

왼쪽부터 유홍(대금), Kikuchi Naoko(고토), 김웅식(장구), Wu Wei(생황)

임의적으로 모인 동·서양의 악기들 속에서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보았던 정일련은 이러한 만남에 지속성이 녹아들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 더 견고한 앙상블 창단을 제안했다.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한국·중국·일본 음악에 서양음악까지, 네 개의 색깔이 합쳐진 팀입니다. 각기 다른 음악들을 혼합하며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이것들 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이 필요했습니다.”

위촉 곡들은 2009년 창단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곡들은 동아시아와 유럽의 음악을 모으는 죔쇠였다.

“새로운 악기란 곧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서양현대음악은 그 방향의 유연함을 잃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길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예측 가능한 무엇일 뿐이죠. 동아시아 악기는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예를 들어 고토의 음은 단순하고 명상적인 성격이 있죠. 그래서 서양음악과 비교할 때 ‘절제된 음악’이 무엇인지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새로운 악기란 곧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입니다. 

동아시아 악기는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동서양의 음악이 만나는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의 예술사를 뒤져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서양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작곡가들은 서양음악의 무조건적인 수용에 대한 반성적 의식을 회복하려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고, 그 대안을 전통악기의 적극적인 활용에서 찾기도 했다. 이 흐름에는 작곡동인 ‘제3세대’(이건용·유병은·진규영·황성호)나 강준일을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활동해온 서울음악학회(SMA)가 있었다.

1990년대에는 ‘연주자’가 창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작곡가로 쏠린 무게를 나눠 가졌다. ‘악보의 음표’보다 ‘악기의 소리’를 통하여 보다 실질적이고 실제적인 자세로 한국과 서양의 만남을 꾀했던 것으로 1998년에 창단한 한국현대음악앙상블(CMEK) 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통악기(가야금·대금·피리·생황·타악기)와 서양악기(첼로· 클라리넷·타악·클래식기타)로 구성된 CMEK는 연주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중심 으로 서양현대음악을 국악기로 연주하는 등 20세기 (서양)현대음악조차도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국악기로 그려내며 한국과 서양음악의 이면을 탐구해 나갔고,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로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곤 했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약속’보단, 약속이라는 ‘가능성’을 찾는 실험실

작곡가 정일련

‘크로스오버’와 ‘퓨전’이라는 말이 대변하는 섞임의 기능성을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창작방식이 넘겨받으면서, 지금의 동서양 연주자들은 작곡가를 찾기보다는 직접적 인 ‘만남’을 통하여 음악을 생산하고 있다. 감각적이고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만남··· 이러한 행위가 보다 자유로운 창작 행위를 유행시켰지만, 한쪽에선 “연주자들이 사라지면 그 음악과 실험도 끝”이라는 걱정의 한숨도 나온다. 아시안아트 앙상블의 강점은 여기서 부각된다. 동서양의 음악과 악기가 만나는 실험과 시도부터 그 과정은 악보화되어 기록되고, 멤버들의 실질적인 연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존재는, 역시 작곡가이다.

“동아시아의 악기들을 새로운 양념처럼 생각하는 것보단 음악과 연주자들의 특징을 이해하는 작곡가를 찾고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세계로 동아시아적인 요소들을 흡수하기보단 자신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 나와 새로운 경험을 하며, 음악을 깊이 이해 하려는 작곡가들이 정말 이상적인데··· 흔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작곡가들이 이 악기에 매료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작곡가와 작업을 할 땐 아시아 악기(대금, 생황, 고토)의 특징을 먼저 공유하고 연주자들이 어떠한 곡을 연 주하고 싶은지를 논의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더 재밌는 음악들을 만나기도 하죠.” 

 

 

"아시안아트 앙상블의 강점은 여기서 부각된다. 

동서양의 음악과 악기가 만나는 실험과 시도부터 

그 과정은 악보화되어 기록되고, 

멤버들의 실질적인 연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2016년 6월 15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진다.


작곡가-연주자, 동양-서양의 이분법은 아시안아트 앙상블이라는 지대에서는 해체된다. 이들의 음악이 어떤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교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배열체이며, 단일체가 아니라 여러 상황의 힘이 역학하는 집합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안에서 동양과 서양, 작곡가와 연주자가 공존하고 상생하며 자신이 구사하는 작곡기법과 악기가 지닌 내면을 동시에 돌아보게 된다. 즉, 서양음악으로 아시아악기를, 아시아악기로 하여금 서양음악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각자가 밀실이 아닌 광장에 나와 고민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음악을 빚는 것이다.

“요새는 작곡가들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스타일의 작곡가 들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솔직히 10곡 중 우리가 원하는 1~2곡만 나와도 다행스러운 것이죠. 모든 곡에서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악기는 동아시아 관악기들의 음색과 어울릴 수 있는 악기라는 생각도, 여러 번 만나다보니 갖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해금·거문고 등을 추가해보곤 하는데요, 우리가 거주하는 베를린에서 늘 함께 할 수 없다면 고정 멤버가 될 수 없습니다. 일단 한 곳에서 꾸준히 해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곡가-연주자, 동양-서양의 이분법은 

아시안아트 앙상블이라는 지대에서는 해체된다. 

자신이 구사하는 작곡기법과 

악기가 지닌 내면을 동시에 돌아보게 된다."

 

 

피에르 불레즈(1925~2016)가 전통-현대를 잇고자 한 실험실 이르캄(IRCAM)이 파리에 있다면, 베를린에 거주하는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동양-서양음악이 만나는 플랫폼이자 그 만남의 실험실이 되어가고 있다.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올 6월, 악기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즉흥음악 마스터클래스와 렉처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2017년에는 아시안아트 앙상블의 이름을 걸고 페스티벌을 기획·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의 악기들이 함께할 예정이며, 지금보다 음악적 부피와 질량을 높일 계획이다. 동서양의 악기가 섞였다는 점에서 아시안아트 앙상블의 음악을 월드뮤직의 감수성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정일련은 철저히 “현대음악에 기초했다”며, ‘월드뮤직’보다는 세계의 여러 음악을 아우르는 ‘뉴 뮤직 오브 월드’를 염두에 두고 이끌어 나가겠단다.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한 작곡가를 발굴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일련은 이번 내한공연(15일) 외에 작곡가를 발굴하기 위한 마스터클래스와 워크숍(16일)에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 작곡가들이 아직도 서양의 현대음악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집 니다. 제 생각에 그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작곡가들에게 저와 아시안아트 앙상블이 가능성과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