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남산골기획공연 

평롱[平弄]: 그 평안한 떨림 

글_서정민갑 대중문화평론가

 

사실 나는 한국 전통음악을 잘은 모른다. 한국 전통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전통음악을 마니아처럼 듣지도 않았다.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 풍물패 활동을 잠깐 했고, 유명 연주자들의 대표적인 음반을 조금씩 들었을 뿐이다. 물론 퓨전 국악이나 크로스오버 계열의 음악은 챙겨서 듣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 전통음악을 이 정도로 듣는 이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재야에는 귀명창들이 수두룩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일천한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한국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어떤 편견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옛날 음악이라거나, 지루한 음악, 고리타분한 음악이라는 편견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국 전통음악은 더 이상 생활 속에서 존재하는 음악이 아니다. 이제 많은 이들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서 산다. 농촌에서 살더라도 삶은 대부분 도시화되어 있어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보니 한국 전통음악은 애써 음반을 사거나 국악방송이나 특정 프로그램을 틀지 않으면 듣기가 어렵다. 한국 전통음악 하면 옛날 사람들이 듣던 음악,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음악, 뭔가 지루하고 답답한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퓨전화되고, 크로스오버화한 한국 전통음악이 생활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지만 한국 전통음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먼 음악이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3년째 펼쳐지는 공연 <평롱>이 빛나는 대목은 바로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평롱>은 한국 전통음악이 우리 음악이라고 강변하지 않는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고, 우리 것은 우리가 지키고 아껴야 한다고 호소하지 않는다. 한국 전통음악이 세계적이라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다만 <평롱>은 한국 전통음악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으며,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를 묵묵히 들려주고 보여준다.

한국 전통음악은 단지 음악적 쾌감과 방법론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기획된 음악도 아니다. 한국 전통음악은 우리의 역사와 삶이 아로새긴 거울이자 흔적이며, 이 땅이 키우고 피워 올린 꽃다지이다. 우리는 대대손손 그 음악과 함께 울고 웃었으며 잠들고 꿈꾸었다. 삶의 동반자이자 역사의 숨결이고 겨레의 척추 같은 음악이 바로 한국 전통음악이다. 한국 전통음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삶이 끝내 나아가고 닿아야 할 반짝이는 별이다. 그러나 서구화, 현대화, 자본주의화한 흐름에 밀려 한국 전통음악은 과거의 유물로 밀려나거나 길을 잃은 채 서성일 때가 많다. <평롱>은 우리가 옛 음악이라고 생각한 한국 전통음악을 2010년대인 오늘로 끌어오는데, 절대로 타협하거나 스스로의 기품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평롱>은 한국 전통음악의 오랜 전통과 정통성의 핵심을 고스란히 살리는데 주력한다.

 

<평롱>의 첫 곡 ‘아침을 여는 노래’는 ‘종묘제례악’과 ‘보허자’를 재구성하며 한국문화유산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종묘를 비춘다. 종묘의 근엄함과 엄중함 위로 흐르는 것은 『악학궤범』이다. 악학궤범은 말한다. ‘악이란 하늘에서 나와서 사람에게 깃든 것이요, 허(虛)에서 발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피와 맥박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이는 음악이 하늘에서 왔다는 뜻이다. 음악이 하늘에서 왔으니 숭고한 것이고 운명적인 것이며, 사람에게 깃들었으니 따뜻하고 이로운 것이라는 뜻이다. 음악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평롱>은 자신이 펼쳐보이는 한국 전통음악 공연을 단지 음악만의 향연으로 끝내지 않는다. <평롱>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침을 여는 노래’에서 시작하는 공연은 ‘나는 걷는다’, ‘나는 그립다’, ‘나는 방황한다’, ‘나는 소망한다’, ‘나는 사랑한다’, ‘다시 별에게 이르는 길’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삶을 훑고 껴안는다. 과거의 한국 전통음악이 이미 그러했듯 다시 이 땅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마음을 움직이고, 피와 맥박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평롱>은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담은 곡과 악기를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서 이 음악들이 관객들의 가슴에 더 깊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준비했다. 먼저 한국 전통음악 공연에서 늘상 입는 한복을 벗고 경건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곡과 곡 사이 멘트는 소박하지만 진실하다. <평롱>공연을 시작했을 때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공들여 준비한 영상이다. 종묘를 비추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추고, 전통춤 춘앵무를 재현하며, 화려하게 구성한 영상은 비주얼의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이 온몸으로 공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 사이 사이 민요 긴아리랑과 수제천, 강원도 아리랑, 여창가곡이 천천히 스며든다. 한국 전통음악을 들어오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거북스럽지 않다. 전통의 본령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으로 다듬고, 때로는 크로스오버적인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평롱>은 한국 전통음악을 몰랐던 이나, 한국 전통음악을 오해하고 있던 이, 혹은 한국 전통음악을 오래도록 사랑했던 이 모두를 만족시킨다. 음악이 현실과 유리된 음악가들만의 고뇌 어린 세계이거나 고담준론을 담은 난해한 창작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평롱>을 주목해야 한다. <평롱>은 한국 전통음악이 지향하는 가치와 깊이, 그 방법론을 가지고 저자거리로 가만히 내려와 우리를 응시하고 다독이며 위로한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사건의 아픔을 격하게 토로하면서 삶 속으로 뿌리내리는 음악은 더 이상 옛날 음악도 아니고 어려운 음악도 아니다. 너와 나라는 개인과 개인, 여기와 저기라는 무수한 현장과 터전을 연결하고 품으며 비상하는 음악은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순간이 영원이 되며 그것이 우주이자 삶임을 일러줌으로써 깨달음의 환희까지 이르고 만다.

 

대략 70여분의 공연으로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감동적인 울림을 맛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