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기획공연X현대음악시리즈 2
카산드라
남산골기획공연 <카산드라>
카산드라.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저주도 함께 얻었다.
미래를 보았으나 늘 현재를 살았다. 그렇게 살았다. 능력과 저주 사이를 살았고, 미래를 현재에 살았다.
경계.
그 말은 분명하나 삶에선 모호하다. 능력과 저주, 선과 악, 흑과 백 .. 서로는 분명한 다른 이름을 갖고 다름에 기대어 존재한다.
우리의 삶 역시 카산드라처럼 이 모호한 경계를 살아가고 있다. 경계는 모호하다.
다만 하나 분명한 건, 능력과 저주, 선과 악, 과거와 미래 ... 모두는 바로 지금 유일한 이 시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산드라의 미래는 지금에 의해 증명되고 승인된다. 예언의 가치 또한 지금 요구될 뿐이다. 우리에겐 오직 지금이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엔 분명한 경계가 있지만 오직 현재를 살 뿐인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긋는 경계는 한 없이 광활하여 차라리 없다.
현재라는 경계는 광활하다. 거기서 본다. 구릿빛 차가운 눈으로 앉은 작은 소녀와 고여 썩고 있는 강과 가라앉은 배와 노란 눈물들을 본다. 카산드라의 눈으로 광활한 현재에 가운데서 본다. 죽임당한 애비와 죽임당한 아이들, 썩어가는 강과 가슴 썩은 할머니들이 있다.
지금 여기, 카산드라와 함께 많은 과거와 미래가 지금 여기에 있다. 욕망과 욕망이 엉켜 눈이 어둡다. 슬픔과 조소가 섞이고 주장과 주장이 섞인다. 안위와 안부가 두려운 눈으로 어제를 말하고 내일을 주장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
현재라는 광활한 경계에서 카산드라가 외롭게 서있다.
카산드라는 죽었다.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죽음의 대문에 들며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말일지 모르겠다.
오늘도 카산드라는 죽음의 문으로 든다. 매일 매일 죽었고, 순간 순간 죽었고, 죽어서 살고 있다.
매 순간 살아 있음으로 그녀는 매 순간 죽을 수 있다. 능력과 저주를 품었고, 행복과 외로움을 품었다. 그 마음으로 사실의 순간을 살았다.
그 광활한 경계에서 혼자 있었다. 카산드라.
우리가 카산드라다.
글_천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