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악[正樂] : 머물러 듣는 음악> 프리뷰

우스타드 우스만 칸 : 한옥에서 전하는 인도풍류 - 시타르

 

시타르 연주와 함께 하는 음악의 신비

남산골기획공연 <정악>에 출연하는 인도 시타르 연주자, 우스타드 우스만 칸

 

"나는 내 가슴이 비나가 될 때 까지 비나를 연주하였다. 그 뒤에 이 악기를 신성한 음악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음악가에게 바쳤다. 그 후로 나는 그의 피리가 되었고, 그가 원할 때 그의 음악을 연주한다. 사람들은 이 음악에 대한 찬사를 나에게 보냈으나 사실 그 음악은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는 신성한 음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 Hazrat Inayat Khan

 

 

신비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음악은 우주의 시작이자 끝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와 움직임들은 음악적이다. 그것들은 어떤 존재계에 있는 진동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동양의 거의 모든 위대한 음악가들은 음악의 힘을 통하여 성자들이 되었다

우리가 음악에 이끌리는 까닭은 우리의 전 존재가 음악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마음, 몸,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우리들이 만든 자연, 그리고 우리의 근원에 있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 그것이 모두 음악인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음악에 가까이 있고, 음악 안에 살고 있고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으므로 음악은 우리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음악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왜냐하면 음악은 우리 전 존재의 매커니즘인 리듬과 음조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내가 상담심리학 공부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나의 스승님께서 <The Mysticism of sound and music>이라는 책을 건네 주셨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All Universe is Music!(온 우주는 음악이다)

All Universe is Vibration! (온 우주는 진동이다)

You are music! (당신은 음악이다)

You are  Vibration!(당신은 진동이다)

 

수피즘의 영적 스승이자 음악가인 이나야트 칸의 이 말은 나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음악은 단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이 메시지는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존재 자체가 음악이고, 음악을 통해 나의 존재의 근원과 만날 수 있다는 칸의 경험은 음악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여정은 음악의 힘과 그것을 경험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음악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증가 시키고, 나아가 영적 지혜와 진리를 깨닫는 방법들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다.

특히 인도에서의 라가(Laga) 연주는  음악의 힘을 즉각적으로, 특별하게 경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인사에서 열린 우스만 칸의 시타르 연주(사진출처: 사단법인 한인교류회) 

 

나의 Yoga of the Voice의 스승인 실비아 나카치와 각국의 참가자들이 인도에 한달 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매일 chanting 하고 인도의 연주자와 노래하는 사람으로부터 인도의 전통적인 음악에 대해 강연과 실습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가 묵었던 바라나시의  호텔 로비에서 싯타르 연주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라가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고, 그 음악회에 대해서는 단지 인도에서 유명한 시타르 연주자의 공연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앉아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이 연주자는 거의 40여분 이상을 시타르(악기)를 조율하는데 보냈다. 이 조율은 악기소리만이 아니라 이 공간에 있는 참가자들과 이 공간, 그리고 소리, 연주자 모두의 조율이라는 사실은 연주가 끝난 뒤에 알았다.

 

인도의 타악기 타블라. 시타르와 함께 연주에 사용된다.

 

처음엔 단조로움과 심지어 타블라(인도의 북) 반주도 없이 반복되는 듯한 선율이 계속되니 <뭘하는 거지?>라는 생각과 <지루하다>라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판단하는 마음이나 생각을 포기하게 되면서 스스로 그 소리에 몰입되기 시작했고 1시간을 훌쩍 넘어서자 온 몸에 전율과 함께 희열과 기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이 움직임이 미세하게 일어나더니 점점 더 큰 진동과 움직임이 일어났다. 희열이 나를 가득 채우고 내 내면은 춤추기 시작했다. 몸의 움직임이 잦아들자 내부에서 미세한 춤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세포 하나하나가, 내 존재 전체가 춤추기 시작했다. 연주가 점점 빨라지면서 이 희열은 점점 더 확장되었다.

3시간 이상의 연주가 종료되고 나서도 이 내면의 춤과 희열은 사라지지 않고 몇 시간 지속되었다. 저절로 평화로운 미소와 함께 고요하게 앉았다. 연주자의 온전한 몰입과 하나됨의 경험이 내 존재의 그것을 건드려 준 것 같았다. 많은 참가자들이 때로는 춤을 추고 희열에 차거나 고요하게 앉거나 . . . 

연주자도 연주가 끝난 후 고요하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 밤은 어느 날 보다 기쁘고 평화로웠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더욱 인도 음악에 매료되었다. 인도에 머무르는 동안 타블라 연주나 시타르 연주, 바잔(신성을 노래함)을  한다는 알림이 있으면 그럴 때마다 달려갔다.

이때의 경험은 매번 다르긴 했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첫째, 연주곡의 제목이나 가사내용을 전혀 모르고 듣고 있다는 점,

둘째, 일정 시간이 지나야 몰입과 고요, 희열 등의 내적 작업이 일어난다는 점,

셋째, 귀로, 생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세포 하나하나>로 느끼고 듣게 된다는 점,

넷째, 정도의 차이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유사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인도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음악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음악, 소리 그 자체>로 그 힘을 경험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나의 일상의 균형회복과 수행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음악을 접했을 때는 생소함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분들에게, 또 이미 음악을 접하신 분들에게는 좀 더 깊은 경험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도의 음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세계적인 시타르 연주자 우스타드 우스만 칸과(왼쪽) 프라카쉬 칸다사미(오른쪽)

 

인도에서의 음악은 예술가와 같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거나 취미 생활의 한 가지가 아니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매일 음악을 공부하며 지낸다. 이들에게 음악은 기량을 인정받거나 단순하게 여가를 즐기거나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을 찬양하고, 이렇게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동안에 신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들은 이를 통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에 잠긴다.

인도의 음악의 가치와 힘은 바로 여기에서 온다. 그들의 음악은 삶이고, 신과의 합일을 위한 수행이며 기쁨이기도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과 함께 노래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신성함을 공명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도의 현자들은 모든 존재의 근원은 침묵이며, 이 침묵으로부터 생겨난 모든 활동&#8228;물질들은 “진동(vibration)”의 창조물이다. 이 창조물들은 다른 진동에 의해 각자의 무게, 숨, 색깔, 영향력, 리듬, 소리들을 갖게 되지만 모든 진동의 근원은 같다고 본다. 음악은 존재들에게 이러한 근원적 리듬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Khan, 1988).

인도음악은 이러한 종교적, 철학적 기반을 함께 공유하는 역사와 전통이 아주 긴 음악이며 발달되고 세련된 음악체계 중의 하나이다. 미묘한 음 체계인 스루띠(sruti), 오묘한 선율 체계인 라가(Laga), 정교한 리듬 체계인 딸라(Tala)는 전통을 잘 이어오고 있는 위대한 음악적 유산이다. 인도의 음악은 화음을 사용하여 음악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선율이 중심을 이루는 평면적인 음악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 음악과 같다.  

엄격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그 구조 안에서 여러 가지 리듬, 장단, 음색들의 다양함이 있다. 

 

라가(Laga)는 어떤 법칙이 있기는 하지만, 즉흥연주로서 제한이 없는 자유로운 형식이다. 라가는 기본적으로 선율을 색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엄격한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연주자는 자기의 음악성을 라가로 나타낼 수 있다. 

 

라가와 같은 인도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형식을 느끼기 어렵다. 시작이나 끝이 명확하지 않고, 즉흥연주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음악을 연주한다. 연주자는 악보를 외우고 있다가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어떤 때는 길게 하기도 하고 짧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주자 자신이 만족할 때 끝난다.  

라가 연주자들은 음악이란 소통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굳이 형식을 느끼거나 이해할 필요는 없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듣고 그저 느끼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라가는 가장 섬세하게 표현되는 첫 부분으로 연주자의 성숙도와 창의성을 가늠할 수 있는 알랍(alap)으로 시작한다. 대부분 알랍은 장단이 없는 선율로만 구성되며, 대게 낮은 음계로 느리게 시작한다. 이 부분은 이 곡의 주제이기도 하고 연주자와 청중, 그리고 악기, 공간, 나아가 전 우주와 조율하는 시간으로 이해된다. 이 시간은 많은 청중들에게 인내와 집중을 필요로 할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지루함이 일어나더라도 그냥 지켜보며 선율에 맡겨보라 권한다. 이렇게 느린 알랍이 끝나면 장단이 있는 부분으로 넘어가는데 이때 타블라 라는 타악기가 함께 연주되며, 점점 빨라져서 음악을 마무리 하게 된다.

 

시타르는 길이가 약 120cm이고 지름이 40cm정도 되는 제법 큰 악기이다. 위 아래로 박통으로 만든 울림통이 붙어 있다.  괘(Fret)는 모두 20개인데 반원형의 철사로 되어 있다. 시타르의 매력은 미묘한  농현(*국악에서 현악기를 연주할 때, 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서 여러 가지 꾸밈음을 냄)의 구사와 다양한 리듬의 변화를 이용한 긴장과 이완의 대비이다. 이러한 점은 거문고의 매력과 통하는 데가 있다. 라가의 서두에서 들을 수 있는 무장단 선율인 알랍의 기교는 듣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시타르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은 열려진 구조이다. 알랍에서 주제를 연주하고 나면 연주자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구사하기 시작한다. 마치 연주자와 청중이 대화하는 것처럼 타블라 연주자가 추임새를 하기도 하고, 중간에 청중들이 지루해 하면 건너뛰기도 한다. 반대로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길게 늘여 연주하기도 한다.

 

인도에서의 연주자들은 연주회 전에는 가급적 집을 떠나 조용히 기도하고 명상에 잠긴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대는 마치 제례를 거행하는 신전과 같다. 연주자가 신성을 노래하고 우주의 질서와 통하는 문을 여는 연주를 할 때,  우리는 점점 가벼워 진다. 연주가 깊어지면서 우리의 가슴이 열리고 기쁨과 희열이 내면에서 올라오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주자와 음악,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다.

 

정악正樂 - Spirituality Music에서 시타르 연주자로 초청된  우스타드 우스만 칸(Ustad Usman Khan)은 빠른 기교의 연주 보다는 가슴으로 연주하는 감성적인 연주자로 명성이 높다. 그의 연주 중 어떤 곡은 굉장히 현대적인 익숙한 선율로 들리기도 한다. 2014년 그의 한 연주는 나에게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때로는 고요함으로 다가왔다. 이번 연주에서는 나의 어떤 부분을 공명시켜줄지 기대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온전히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교감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시간을 가지려고 하였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초청 공연에서는 그의 짧은 연주만 들을 수 있어 아쉬웠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충분한 공명과 조율은 우리의 경험을 깊게 도와준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인도에서처럼 지루함, 고요, 기쁨, 희열, 그리고 다시 고요로 가득 채워진 밤샘공연을 기대하지만, 인도가 아닌 곳에서는 이 시간도 짧지 않은 연주 시간이다.

 

라가의 전체 선율과 리듬에 온전히 젖어 연주자와 함께 각자에게 온전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_이정은 음악명상전문가

 

 

<참고문헌>

소리와 음악의 신비, Hazrat Inayat Khan, 황정선, 이정은 공역, 슈리크리슈나다스 아쉬람

Indian Music:인도음악의 멋과 신비, 전인평 저, 아시아음악학회

 

[정악(正樂) : 머물러 듣는 음악] 출연진

 

 10.14(금) 20:00 천재현 <렉처콘서트 : 마음을 듣는 음악-풍류>

 출연_거문고 천재현, 정가 김윤서, 피리·생황 이향희, 대금 김현수, 가야금 김현채, 아쟁 박혜림

 

 10.15(토) 18:00 우스타드 우스만 칸 <한옥에서 전하는 인도풍류-시타르>

 출연_시타르 우스타드 우스만 칸(Ustad Usman Khan), 타블라 프라카쉬 칸다사미(Prakash Kandasamy)

 우스만 칸은 유서 깊은 음악 집안 출신의 시타르 연주자. 한 분야의 마스터를 칭하는 구루지(Guruji)로 통하며 가슴에서 우러나는 

 감성적 연주의 대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프라카쉬 칸다사미는 아시아의 여러 국제대회에서 인정받은 타블라 연주자이며 우스타드 우스만 칸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음악 파트너로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강 및 대담_이정은 음악명상전문가

 현 음악명상 심리치유연구소 소장. 음악명상, 소리치료 강의와 명상 및 힐링 프로그램 컨설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0.16(일) 18:00 강태환 <걸리지 않는 바람, 나팔풍류-알토색소폰>

 출연_알토색소폰 강태환

 알토색소폰 연주의 대가.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유일무이한 연주자이며 가장 독특한 음악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