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기획공연 <정악> 기획의도
정악(正樂) : 머물러 듣는 음악
남산골기획공연 <정악>
‘바른 음악’이라고 해석합니다. 바른 음악이라고 해놓으니 바르지 않은 음악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르고 바르지 않고, 선하고 악한 것들은 세상을 유지하는 윤리적 기준입니다. 그러나 ‘바르다’라고 이야기하는 이 정자는 인간세상의 윤리를 넘어 혹은, 윤리 이전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를 정자’는 ‘한일자一’와 ‘그칠지자止’의 합으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나에 머무른다는 의미입니다. 바를 정자를 해석함에 있어 하나 그리고 머무름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를 어떻게 해석 할까요? 혹자는 본성으로, 혹자는 참 자아로, 그리고 성령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무엇이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자리, 최고의 자리, 깊은 자리, 본연의 자리.... 그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옳다 그르다는 하나의 자리에서 한 생각이 발현된 이후에 생길 수 있습니다. 이 하나의 자리가 성령의 자리이고 성령과 합일 된 자리입니다. 이 하나의 자리가 내 본래의 본성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태극의 자리고 무극의 자리여서 옳고 그름도 좋고 나쁨도 없습니다. 여기에는 사실 너와 내가 없습니다. 유일한 하나의 자리에 합일하거나 제 자신의 깊은 무극의 본성을 보았다면 그 본성이 너에게는 왜 없겠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가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바를 정자가 의미하는 하나. 그 깊은 하나는 커다란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커다란 하나로만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우리라 만들어 주는 커다란 하나의 개념과 더불어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개별자로서의 독특한 자기 특성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소위 자아 혹은 에고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라는 보편자와 개별자로서의 분명한 자기 색깔이 조화로운 곳이 바로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우주일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이 개성, 자아가 보편자로서의 하나를 망각할 때 이기심이 생기고 그 결과 괴로움苦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많은 성인들이 보편자로서의 하나와 개별자로서의 자아가 조화롭기를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 조화를 강조하기 위해서 잊기 쉬운 하나에 자주 머물고자 이야기 하였던 것입니다. 자기 수양이라는 말도, 소위 명상이라는 말도 성령과의 합일을 강조하는 것도 자아와 보편자의 조화를 위해 이야기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머문다는 것은 아마도 수양을 통해 그 자리에 든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명상이고, 그것이 기도겠지요.
음악을 깊이 들을 때 우리는 종종 이 자리에 머문다고 합니다. 음악의 깊이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을 놓습니다. 소유의 욕망도 없습니다. 그저 음악 안에 있을 뿐입니다.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조선시대 음악문헌인 악학궤범이라는 책에선 음악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깃들었다. 허虛에서 발하여 자연에서 완성된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 말만 그대로 따라가면 하늘은 앞서 이야기한 하나입니다. 그 하나는 이미 사람에게 있지요. 그 하나는 텅 비어 있습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이미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내게 이미 보편자로서의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음악은 이미 내 마음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음악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허에서 발아여 자연에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음악은 음악을 드러내는 연주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을 드러내는 연주자는 보편자로서의 하나의 텅빈 곳에서 음악을 드러냈기 때문에 듣는 사람에게도 이미 있는 하나와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음악의 전달 방식은 공명입니다. 떨림입니다. 같은 주파수가 만나면 같이 떱니다. 이것을 공명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음악은 떠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공명하는 것으로 소통됩니다. 현악기가 조율할 때 같은 음을 가지고 진동하고 공명하게 하며 음정을 찾아 갑니다. 두 줄의 음정이 같을 때 두 줄은 공명하고 이 공명을 통해 조율합니다. 조율됨을 확인합니다. 떨림을 기본으로 하는 음악을 통해서 마음과 마음을 조율합니다. 저 밖의 소리가 내 마음을 울려 냅니다. 감동, 공감, 공명 이런 말들을 사용합니다. 그 상태가 될 수 있는 건 음악으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연주자가 자산의 마음을 들어 음악을 내고 그 음악에 청중의 마음이 공명하는 것이 음악의 이유며 목표입니다.
연주자가 듣고, 청중이 공명한 자리가 하나의 자리입니다. 이것이 음악의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에 머물러 듣는 음악. 正樂이라 합니다.
글_예술감독 천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