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집단 The 광대 <몹쓸춤판>

비정상의 약진

 

젊은연희주간 <몹쓸춤판> 포스터 

 

연희집단 The 광대의 신작 <몹쓸춤판>이 지난 8월 28일 남산골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공연됐다. 서울남산국악당 ‘젊은연희주간’ 프로그램의 하나이자,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으로 연을 맺은 연희집단 The 광대와 서울남산국악당의 공동기획이다. 우리네 병신춤을 토대로 새롭게 탄생시킨 이번 작품에 세 명의 젊은 예술가 김설진·김재승·허창열이 참여했다. 서로 다른 춤의 기반을 가진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무대를 완성할지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몹쓸춤판>의 주인공인 세 명의 춤꾼. 왼쪽부터 김설진, 허찰열, 김재승

 

왜 지금, 이 주제를 꺼내든 것일까. 공연을 마주했을 때 처음 떠올린 인상이다. 아름답고, 자연스럽고, 훌륭한 것에 이끌리는 것이 당연하건만 이 작품은 굳이 그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는가. 자조적인 동시에 반어적 의미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공연명이 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비정상적이고, 불편한 것들을 무대 위에 올려 관객과 함께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고. 

자, 그렇다면 우리는 충실하게 이들의 문제제기에 응답해보자. 이것을 왜 비정상이라고 하는지, 정상이 아닌 것은 아름답지 않은지…. 공연의 제목마저 ‘몹쓸 춤판’이 실은 ‘몹시 쓸 만한 춤판’이라지 않는가.

 

공연은 프롤로그로 시작해 세 무용수의 독립된 솔로, 그리고 에필로그 형식의 합동 무대로 마무리되는 전형적인 형식으로 진행됐다. 각각의 작품은 ‘병신춤’이라는 큰 주제 아래 궤를 함께했으며, 김설진·김재승·허창열은 각자의 솔로에 자신의 춤 스타일을 충실히 녹여냈다.

 

왼쪽 김재승, 오른쪽 허창열

 

멋스러운 블랙 페도라를 쓴 김재승이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상자를 끌고 나오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그 안에서 부채를 꺼내들어 흔들기도 하고 때때로 탈처럼 얼굴을 가리기도 하는데, 장구의 두드림과 대금·피리의 울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흥과 애잔함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부채는 우리의 전통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그 안에는 예술가의 세계가 담기기도 하며, 펼침과 닫힘이 반복되며 객석과 밀고 당기는 존재다. 첫 순서를 열기 위한 훌륭한 설정이었다.

 

이번 공연의 총감독을 맡은 허창열은 고성오광대 탈놀이 가운데 ‘문둥북춤’을 새롭게 선보였다. 여러 판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다듬어지고 때론 덧붙여져 온 광대춤에 현대적인 시각을 가미한 것이다. 관객에게 그 의미까지 온전히 전달되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전통의 것을 현대의 공간에 어울리게 풀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나병(문둥병)에 걸려 수족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 나동그라지고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 굳어버린 손으로 결국엔 북채를 쥐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그게 인생이지”하고 끄덕일 수밖에 없는 설득력을 제시한다. 그의 연기에 “얼씨구”“잘한다” 하고 던지는 관객들의 외침은 지금 이 춤이 이 무대에 올라야 하는 이유를 대변한다.

 

김설진

 

마지막 순서로는 김설진이 등장했다. 앞선 무대가 대체로 국악선율을 배경으로 꾸려진 것과 달리 전자음악을 사용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하이힐을 신고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 차림을 한 그는 굉장히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동요 ‘사과 같은 내 얼굴’의 멜로디를 편곡한 음악과 여러 인터뷰를 채증한 목소리가 엉켜 마치 여고괴담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 스산하게 흘렀다. 기이하게 움직이는 그의 신체연기는 특별했으나, 주요하게 사용한 하이힐이라는 소재 때문에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다.

‘허튼style’이라 명명한 마지막 무대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야말로 ‘프리스타일’이었다.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젊은 예술가 세 명의 만남은 신선했으나 그 결과는 어설픈 접합에 그친 것이 아쉽다. 새로움을 무기로 완성도를 무마하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각자의 작품만큼 마지막까지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전체적인 인상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몹쓸춤판>은 제목부터 구성까지 젊음에 참 잘 어울리는 기획이다. 

무엇보다 주제를 확장하고, 서로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는 작업 방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전체 숲을 바라보는 차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운 발견도 있었다. 무대 양쪽에 오른 우리 음악 연주자들이다. 

각자의 악기가 빛을 발하고, 그 가운데 만들어내는 조화는 신선하고도 아름다웠다. 

춤을 보러갔다 음악에 두 배로 반하고 돌아왔다.

 

 

 

 

 

 

 

 

 

 

글 김태희

제12회 SPAF 젊은 비평가상 무용분야 수상. 월간 ‘객석’, 서울문화재단을 거쳐 국립극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