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목화가 낳은 사람들
배우 손병호
글_이소영
배우 손병호
더위가 기승이던 7월, 남산골한옥마을에서 배우 손병호를 만났다. 연일 이어지던 드라마 <어셈블리> 촬영으로 바쁜 그였지만, '목화'와 '오태석'이라는 말을 듣고는 흔쾌하게 시간을 열었다. 촬영 허가를 받고 민씨 가옥 사랑채에 들어서자마자 “이리 오너라”를 외치는 남자. 예상 그 이상으로 유쾌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목화 베테랑 손병호의 목화사랑
<템페스트> 공연 앞부분. 배우들은 폭풍이 치는 바다를 표현하고 있다.
손병호가 극단 목화에 들어갔을 당시, 그의 나이 스물 아홉 살이었다. 극단에 막내로 들어가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였을 뿐 아니라 입단과 동시에 잘나가던 뮤지컬 활동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고 목화에 들어간 이유는 오직 하나, '오태석 연출가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1986년도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오태석 선생님의 연극을 처음 봤어요. 세조와 사육신의 이야기를 그린 <태>라는 공연이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아, 저분은 내가 꿈꾸는 연극을 하고 계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오태석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어떤 상상력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요."
손병호에게 있어서 목화는 ‘연극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극단’이다. 배우들의 심도있는 연기, 연출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법,다양한 볼거리가 주는 연극적 활달함. 손병호는 지금도 목화의 공연을 보러 가면 ‘아, 저 뒤에 한 서른 명쯤 뛰어다니면서 줄 당기고 있겠구나’ 가늠하곤 한다. 목화에 있어서는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베테랑’이다.
엄격함, 책임감의 또 다른 이름
인터뷰중인 배우 손병호
목화의 이야기를 하며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역시 오태석 연출가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가 처음으로 꺼낸 화두 역시 오태석 연출가였다.
"어떤 단체든지 수장이 참 멋진 분이어야 하지요. 저는 오태석 선생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목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선생님을 만나고 극단 목화를 만났다는 게 행복하고, 선생님이 지금도 활동하신다는 사실이 참 감사해요."
그렇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손병호가 15년 동안 겪은 연출가로서의 오태석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엄하시죠."
그러나 엄격함에도 이유가 있는 법. 손병호가 말하는 오태석 연출가의 엄격함은 '책임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집단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법칙과 기강,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요. 자기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낼 때 튼튼한 집단이 되는 거거든요. 배우였을 때에는 오태석 선생님이 조금 더 풀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제가 직접 극단을 운영해보니까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너무 잘해줘도 안되고, 너무 제지해도 안 되는…. 생각해보면 오태석 선생님도 당신만의 방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긴장하게 만들지만, 배우는 그 긴장속에서 (연극을 통해) 풀어내는 작업을 하잖아요."
공연 전날, 리허설중인 배우들
오태석 연출가가 무대에 앞서 엄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수많은 장치와 소품, 이동 속에서 배우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이 '보장되는 환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배우와 연출이 긴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연극은 앙상블이기 때문에 누구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라서 한 사람도 다치거나 실수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오태석 선생님 연극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의 장면에서도 수많은 소품과 움직임이 있고 배우들도 많은 등장인물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긴장이 필요해요. 여기서 긴장을 놓아버리면 사고가 생기고, 연극도 망치는 거잖아요. 해서 선생님의 엄격함은 배우 자신과 연극을 위해서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손병호는 지금도 드라마 촬영장에서 극단 동기였던 배우 성지루와 틈만 나면 목화며, 오태석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셈블리>촬영장에 있는 스텝들 마저 ‘마치 자신이 목화에 단원이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 라고. 그만큼이나 목화는 손병호의 배우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현재진행형 추억’이고, 오태석 선생님을 알게 해준 소중한 인연이다.
<템페스트>, 하나의 전통극을 꿈처럼 풀어낸 꿈같은 이야기
<템페스트> 공연 사진
이어 8월 13일부터 시작하는 <템페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손병호는 국내에서 <템페스트> 공연이 열릴 때마다 찾아가는 열정 있는 관객이다.
“<템페스트>는 하나의 꿈같은 이야기에요. 우리 설화에 연극적인 상상력과 전통적인 몸짓, 소리를 입혀낸 아주 예쁘고 깔끔한 이야기죠.”
이어 그는 템페스트가 “볼 때마다 다른 연극”이라고 했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공연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는 먼저 ‘극장’을 꼽는다.
"제일 중요한 게 극장이에요. 야외냐, 소극장이냐, 중극장 또는 대극장이냐. 오태석 선생님은 그걸 따져서 연극을 다 바꿉니다. 큰 극장에서 보면 화려하고, 작은 극장에서 보면 아주 소박한 연극이 되는거죠."
단지 스케일뿐 아니라 극장에 맞는 새로운 무대기법이 생겨나기도 하는 마술 같은 연극. 그 재미야말로 목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생명이다.
"이번에 공연하는 남산국악당은 또 공간이 예쁘니까, 선생님의 상상력이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하네요. 완전 다른 공연이 될 거예요."
손병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신기하게도 배우 손병호 뿐 아니라 오태석 연출가와 더욱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손병호의 이야기 속에는 오태석 연출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가득했던 것 같다. 앞서간 스승의 발자국을 존경할 줄 알고, 스승의 외로움이나 엄격함 또한 헤아릴 줄 아는 제자의 모습. 그가 주는 유쾌함 뒤에는 기분 좋은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