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단 목화가 낳은 사람들

배우 장영남

글_이소영

 

비오는 주말, 남산골한옥마을 천우각 광장에서 장영남을 만났다. 영화 <극비수사> 이후 드라마 촬영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 밤샘 촬영을 마치고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녀는 남편(이호웅)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행복한 엄마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고 카메라가 돌아가자 눈빛이 달라진다. 다시, 배우 장영남이다.

 

목화에서의 7년, “물레를 돌리는 마음”으로

장영남은 스물 세 살 부터 7년간 목화에서 활동했다.

 

기를 다지고 가장 많은 것을 빨아들였을 나이. 그녀가 겪은 목화는 어떤 곳인지 물어봤다. "목화는 엄격하고, 선후배 규율이 굉장히 깍듯한 곳이었어요." 첫 모임이 있던 날, 그녀가 연습실에서 본 것은 양반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선배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행여나 발소리라도 들릴까봐 까치발로 숨죽이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어렵기만 한 선배들의 정적. 물론 그 후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휘모리장단의 생활이 펼쳐졌다.

 

"목화의 가치관 중에 '물레는 돌리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물레를 돌리듯이 실제로도 많은 일들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직접 무대도 만들고 소품도 만들고 연기도 하고 의상도 만들었거든요. 끊임없이 뭘 만들고 청소하고, 잠깐 시간이 되면 무대에서 연습하고…. 끝나는 시간까지 가만히 있었던 적이 없어요." 그러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엄격한 선후배의 규율 속에서, 오태석 선생님의 냉철한 가르침 아래서, 끊임없이 움직였던 극단 분위기에 맞춰 그녀의 역량도 차근차근 성장해 나갔다.

 

"저는 무조건 '잘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다들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했거든요. 그래서 늘 긴장해야 했고,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치열한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항상 정신없고 어리바리한 존재였죠." 처음 연극을 시작했던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새로운 작품에 도전해 온 그녀의 연기 이력은 극단 시절부터 몸에 밴 부지런함의 결과일 것이다. 장영남은 지금도 물레를 돌리는 마음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의 호랑이 할머니, 오태석 선생님

극단 목화의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목화의 수장, 오태석 연출가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으로 통하는 오태석 연출. 배우 장영남이 가까이서 겪은 '거장'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요” 한다.

 

"오 선생님은 무서우셨어요. 굉장히 차가우셨고요."

 

평단에서 '가장 한국적인 연극을 만들어내는 연출가'라는 말을 듣는 오태석. 이십대부터 지금까지 60편이 넘는 연극을 쓰고도 여전히 창작을 멈추지 않는 극작가. 극단 목화를 30년 이상 이끌어온 힘 뒤에는 역시나 호랑이같이 무섭고 엄격한 인간 오태석이 있다. 물론 덮어놓고 무섭기만 한 스승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할머니 같기도 했어요. 표현 안하시는 차가운 할머니 있잖아요. 정갈하게 쪽지고 앉으셔가지고 깐깐한 눈빛으로 저희를 바라보시는. 그런데 알고 보면 또 깊은 곳에 사랑이 있는 분이셨어요. 그 사랑은 엄마도 아니고 할머니만 가질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사랑인거죠.” 즐거운 표정으로 스승을 추억하는 배우 장영남. 그 모습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과 여전한 어려움, 그리고 감사가 느껴졌다.

 

목화의, 목화만의 템페스트

목화의 <템페스트> 공연 시작 부분

 

본격적으로 목화의 <템페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템페스트>는 올여름 남산골한옥마을 국악당 기획공연 <국악, 시대를 말하다>의 세 번째 레퍼토리로 선정된 작품이다. 원작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것을 가져왔다. 셰익스피어가 마지막으로 쓴 희곡이자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 있는 희곡’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템페스트>인데, 오태석은 이 작품을 자신만의 연출법과 상상력을 동원해 새롭게 각색했다. 먼저 이야기의 배경은 우리나라 삼국유사에 나오는 가락국으로 설정했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노래와 안무 모두 한국식으로 바꾸었다. 장영남은 목화의 <템페스트>를 이미 여러 번 관람한 팬이다.

 

“이번 공연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기대하신다면, 아마 큰 오살일 거예요. 정말 새로운 해석이 들어간 작품이거든요.”

 

더불어 그녀는 ‘오 선생님’ 곁에서 <템페스트>를 준비하는 목화 후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걱정이나 염려는 없다. ‘오 선생님’과 ‘목화’이니까. 분명 이번에도 잘 해낼 것이다.​ 인터뷰가 마무리 될 때 즈음, 옆방에서 아빠와 놀던 아들 운상이 엄마를 찾는다. 다시 배우에서 엄마로 돌아간 장영남. 다가오는 8월,관객으로서의 그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