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기획공연 - 국악, 시대를 말하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서는 <언니들의 국악> 을 소개합니다!

마음을 다해 준비한 공연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공연 소식]

남산골 기획공연 - 국악, 시대를 말하다

언니들의 국악

남산골 기획공연 – 국악, 시대를 말하다 <언니들의 국악>

 

언니들이 불러주는 우리네 이야기

‘언니’라는 단어는 친근하고 편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만만하지 않은’ 느낌도 풍긴다. 사사로운 오지랖과 똑 부러지는 언변. 이 땅의 언니들은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낸, 그 시간만큼 더 섬세하고 노련하게 진화한 고등생물의 느낌을 갖고 있다.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리는 남산골 기획공연 – 국악, 시대를 말하다 <언니들의 국악>은 국악계에서 활동하는 언니들이 전하는 산전수전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국악기 연주와 굿, 판소리 그리고 노동요다.

 



당신의 내일이 평안하기를, 평안히 돌아가기를 
시대의 마지막 무녀, 김동언의 '오구굿'

국악계 속 개성 넘치는 언니들이 출연하는 <언니들의 국악>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왕언니가 있다. 세습무녀 김동언이다. 김동언의 집안은 증조부 김천득에서부터 4대 째 세습무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근대화과정 속에서 몇 번씩이나 말살 위기에 처했던 것이 세습무 가계이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으로 사라지는 세습무 집안 중 김씨 가계 또한 여러 번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3대 세습무였던 동해안 화랭이 김석출과 그의 부인 무녀 김유선이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82-가호(동해안별신굿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동해안별신굿 계승자 김동언(왼쪽에서 두 번째)과 가족들

 

김씨 가계의 4대 세습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동언은 현재 남편 김동렬과 함께 부산시 문화재 '부산 오구굿' 보유자이면서, 동해안별신굿의 계승자로 활동하고 있다. 오구굿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극락천도를 염원하는 굿을 뜻한다. 동해안별신굿의 풍어제가 한 마을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공동체 굿이라면, 오구굿은 죽은 사람의 한을 위로하고 혼을 천도하는 개인 굿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 오면서 개인적으로 굿을 청해 오는 사람들도 사라져 오구굿 역시 한동안 연행되지 못하였으나, 2011년에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다시금 오구굿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부산 문화재 '부산 오구굿' 보유자 김동언

 

서울남산국악당 무대에서 김동언은 일본군위안부를 위한 오구굿을 올릴 예정이다. 1930년대 후반, 일본군위안부로 동원된 조선의 여성들은 하루에 열 번에서 서른 번 이상의 성관계를 강제로 요구 당했고, 그로 인한 온갖 착취와 성병에 시달려야 했다. 더욱 참담한 것은 그렇게 끌려간 위안부 대부분이 식당 종업원 및 여공 모집 등 취업사기에 속거나 강제 연행 당한 경우였다는 점이다. 일본이 패망하는 과정에서는 무자비하게 학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188명은 우리 곁에 없다. 지난 6월 11일 두 분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이제 생존자는 50명뿐이다. 


오구굿은 제당에 부정하거나 불결한 것들을 몰아내 자리를 깨끗하게 하는 부정굿부터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는 시석굿까지 총 열두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올 해. 그저 개인의 역사일 수만은 없는 시대의 아픔이 여전히 우리 곁에 선연하다. 숱한 아픔과 세월의 풍파 속에서 민중과 함께 해 온 것이 국악이라면,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위로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음악 또한 국악이어야 할 것이다. 시대의 마지막 무녀 김동언이 그 자리 한 켠에 서 있다.

 


흥부랑 놀부의 아내가 동일인물이라고? 
박민정 창작 판소리극 <장태봉>

김동언의 뒤를 잇는 박민정의 창작 판소리극 <장태봉>은 ‘못되 처먹은’ 놀부와 ‘불쌍한’ 흥부의 아내가 사실 동일 인물이었다는 상상 하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홉 남매의 어머니이자 괴팍하고 또 가난한 남편의 마누라로 사느라 자신의 이름 석자도 챙기지 못하는 장태봉. 박민정은 장태봉의 입을 통해 세상천지가 몹쓸 놈, 빌어먹을 놈, 패 죽일 놈 투성인 요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흥보가의 눈대목과 판소리 특유의 해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박민정의 창작 판소리극 <장태봉> 무대 장면

 

판소리의 필수 요소인 ‘해학’과 ‘풍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한국식 유머’다. 풍자가 양반, 위선자 등의 비판적 인물을 공격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해학은 그런 비판적 인물에게 공격받는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해 읽는 이에게 그런 상황을 공감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하여, 한 이야기인 ‘흥보가’에서도 욕심 많은 놀부는 풍자의 대상이 되고, 착하고 가난한 흥부는 해학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하지만 박민정의 창작 판소리에 등장하는 ‘장태봉’은 지금까지의 흥부와 놀부에 대한 이분법적인 인물 구도에 찬물을 끼얹는다. 풍자와 해학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이제 여자. 그것도 불쌍한 마누라 장태봉이다.


한 번 시작하면 퇴근도 퇴사도 없는 ‘엄마’라는 직업. 남편의 무능이나 괴팍함을 말없이 수발해야 하는 ‘마누라’의 자리. 장태봉이 들려주는 가정사의 희노애락을 듣고 있노라면, 그곳에 나오는 장태봉이 기실 우리 ‘어머니’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아, 천천히 가오
경기소리그룹 앵비 <이상 사회>

한편, 경기소리그룹 '앵비'는 그들의 노래에 창작음악과 현대적 움직임을 더해 우리시대의 노동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공연의 제목은 <이상 사회>. 영웅이나 철학가가 아닌, 평범한 회사원 또는 주부 등 이 시대의 흔한 여성 노동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경기소리그룹 앵비의 <굿 들은 무당> 무대 장면

 

앵비는 오래 전부터 노동하는 민중의 고된 삶을 위로하고, 마음을 시원케 해주었던 민중의 노래가 노동요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동요를 부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노동이 더 이상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 기여하지 못하고 상당 부분 왜곡되거나 훼손되어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앵비는 그들의 노동과 더불어 우리시대 노동의 가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점점 사물화 되어가는 일상을 표현하기 위한 안무, 왜곡된 현실과 ‘노동하는 마음’의 이상향을 전달하기 위한 앵비의 음악적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언니들의 사적인, 또는 사회적인 이야기 
꽃별, 이승희, 정민아, 차승민, 최민지

이번 <언니들의 국악>의 첫 스타트를 알리는 ‘언니들의 콘서트’에는 해금 연주자 꽃별과 이승희,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 홍대에서 활동하며 인지도를 굳힌 차승민과 최민지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언니들의 국악> 첫 주 공연 ‘언니들의 콘서트’ 출연자들

 

꽃별과 이승희는 국악의 현대화, 그중에서도 해금의 대중화를 위해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솔리스트들로, 작은 울림통과 두 줄의 명주실이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감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둘째 날 공연을 장식하는 정민아, 차승민, 최민지 역시 각각의 삶과 경험을 소재로 만든 노래를 부른다. 정민아와 차승민이 함께 하는 <산골>라는 곡은 세월호 사건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그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다. 세 명의 뮤지션이 한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 <새야새야>도 기대해 볼 만하다.


언니들의 콘서트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각각의 곡 모두가 본인들이 살아가며 겪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소하다 해도 직접 살아냈기 때문에 내 것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 내 것이기 때문에 또한 줄 수도 있는 위로일 테다. 

 

꽃별_<월하정인> 外
이승희_<상주아리랑> 外
정민아_<서른 세 살 엄마에게> 外
차승민_<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外
최민지_<아리랑-그녀의 노래> 外

 


어수선한 시절에 부치는 노래

남산골한옥마을의 천재현 예술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악은 언제나 세상과 이야기했으며, 함께 웃었고 종종 울기도 했노라”고. 그렇게 “풍악의 때와 풍악의 이유를 알았던 국악이 앞으로도 시대의 손을 놓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누군가는 예술을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 예술을 하는 사람은 이 땅에 두 발을 붙이고, 똑바로 보고 또 들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아픈 데를 이해할 수 있고, 마음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시절,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준비했다”는 이번 공연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니들’의 산전수전이 부디 진솔한 위로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어수선한 세상 속에서 잠시라도 우리의 아픈 데를 위로해주고, 뜨겁게 달아오른 이마를 만져주는 부드럽고 강한 손이 음악에 있기를, 또한 그것이 시대 속의 국악이 수행하는 역할이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