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김구림 편]
한국미술의 거장 3인의 동거동락(同居同樂)전
작가와의 대화 - 김구림 작가, 김남수 평론가와 함께 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글_이소영
한 세대를 살아가는 아방가르드 작가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한 세계를 홀로 보았지만, 너무 멀리 있는 세계를 발견한 탓에 동시대로부터 외면당한다는 점. 그가 이해받기까지의 시간은 30년이 될 수도 있고, 50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故백남준 작가는 ‘전위 예술가가 빛을 보려면 80세는 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햇살이 좋던 가을날, 남산골한옥마을 민씨 가옥 사랑채에서는 김구림 작가와 관객들이 만나는 ‘작가와의 대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국의 1세대 전위예술가 세대를 대표하는 김구림 작가는 올해로 80세가 되었다. 노장이 된 그가 작가로서 '빛을 보기'까지 겪었던 많은 방황과 도전의 이야기. 평론가 김남수와 김노암, 이건용 작가가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음양 시리즈, <Yin and Yang>
한옥마을 마당에 설치된 김구림 작가의 작품 <Yin and Yang>.
한옥마을 마당에 설치된 김구림 작가의 작품은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작품명은 <Yin and Yang>. 음양이다.
김남수 : 김구림 작가의 <Yin and Yang>은 2000년대부터 쭉 진행해온 음양 시리즈의 연속작이라 보면 됩니다. 동아시아에서 음양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남녀도 음양이고, 천지도 음양이고, 홀짝도 음양이죠. 그런데 이 음과 양은 동시적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특이한 성격이 있는데, 김구림 작가의 작품에는 이런 에너지학적인 조화가 표현되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김구림, 대지미술 <현상에서 흔적으로>, 1970년 作
김남수 : 이런 철학을 보여주는 비슷한 작품으로 <현상에서 흔적으로>시리즈가 있어요. 70년대 작품인데, 당시 뚝섬지역에 있는 잔디밭을 삼각형 모양으로 불태웠죠. 이후 계절이 바뀌고 잔디밭에 싹이 돋아나는데, 작년에 불을 태우면서 생긴 재가 자양분이 되어서 훨씬 무성한 잔디가 자라나더라고요. 사람들은 그걸 보면 ‘아 이런 아이러니가 있구나’ 생각하는 거죠. 역삼각형과 삼각형은 반대인 것 같지만, 두 개가 맞물리면 빈틈없이 서로를 의지하게 되잖아요. 김구림 작가의 음양 시리즈에도 이런 생명의 묘함을 찾으려고 하는 모험이 있습니다.
김구림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한옥마을 마당에는 바닥에 거울이 깔려있고, 그 위에 기울어진 배가 놓여 있다. 그리고 배 안에는 해골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망자의 유골이라 한다.
김구림 : 처음 전시 제의를 받고 장소를 보러 한옥마을에 와보니 마당에 우물이 하나 보이더라고요. 머리에서 떠오르는 게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였어요. 한을 못 풀고 우물에서 죽은 여인의 모습 같은 장면이 떠올랐죠.
사실 이번에 전시된 김구림 작가의 작품이 100퍼센트 처음 의도대로 나온 것은 아니다. 배를 설치하기 위해 마당의 흙을 1미터 정도 파려고 했으나, 땅 밑으로 전선이 깔려 있는 바람에 흙을 떠낼 수가 없었다.
김구림 : 원래 땅을 파서 양 옆과 바닥에 거울을 붙이고 배를 반듯하게 놓으려 했어요. 거기에 물을 채우려고 했죠. 그러면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울과 거울이 마주보고 있으니 무한대로 퍼져 나가는 느낌을 주도록 만들려고 했는데, 실연이 못됐어요. 해서 배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세워놓았어요. 원래 내가 생각하던 방향의 작품은 되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어요.
작품은 억울한 사연으로 목숨을 잃은 한 여인의 한을 표현하고 있다.
배 옆에 있는 무덤 안에는 무덤의 주인인 여인이 있다. 한을 다 풀지 못해 저승으로 올라가지도, 무덤 속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무덤 위를 보면 투구처럼 돌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이름 없는 묘비다. 무덤 뒤로는 하얀 천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망자를 위한 굿을 하는데, 굿의 마지막 부분에서 무명천을 가르는 순서가 있다. 이때 천은 저승의 다리를 상징하는데, 무당은 망자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잘 가기를 바라며 자신의 몸으로 천을 가른다. 그러나 김구림 작가가 설치한 작품에서는 이 천이 갈라지다가 말았다.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것이다.
고집스러웠던 젊은 시절
작가와의 대화에서 관객의 질문을 받고 있는 김구림 작가.
김구림 작가의 유년시절은 유복했다. 한의사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덕분에 고집도 상당했다고 한다. 무엇을 하든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기 원했다.
김구림 : 혼자 할 수 있는 예술이 뭔가 했더니 소설가였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쓰다 보니 번역을 해야 세계로 나갈 수 있는데, 그렇게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겠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이 난 게 화가었어요. 번역이나 통역도 필요 없고, 음악가처럼 연주하러 외국에 갈 필요도 없이 작품만 보낼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미술대학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나를 예뻐했던 교수들이 내가 자꾸 엉뚱한 질문을 던지니까 ‘교수를 골탕 먹이려 든다’고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그만 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헌책방을 배회하던 중 김구림은 바닥에서 잡지 한 권을 발견한다. 미군들이 보다가 버린 잡지. <라이프>였다. 이때부터 <라이프>지와 <타임>지는 김구림 작가의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 된다.
김구림 : 거기는 미술 뿐 아니라 무용이나 연극 분야도 실려 있었어요. 그때부터 ‘아, 예술이라는 건 사진같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구나. 거기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사상이 있어야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용, 영화, 음악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김구림 작가가 처음으로 두각을 보이며 대중에게 인정받은 분야는 무용 공연의 무대미술이었다. 연극분야까지 발을 넓혀서 오태석의 작품 <웨딩드레스>를 각색한 작품을 올렸고,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를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 <1/24초의 의미>는 지난 9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의 스타오디토리움극장에서 3일간 상영되기도 했다.
작가 김구림의 정체성 - 한결같이 변하기
김구림 작가는 회화를 비롯하여 오브제, 해프닝, 대지미술, 바디 아트 등 미술의 전 영역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 왔다.
관객 : 아무리 아방가르드 작가라 해도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있잖아요. 우리가 백남준 선생님 생각하면 텔레비전을 떠올리듯이. 그런데 김구림 작가는 다루는 물질이 자유로우시고 다양한 것 같아요.
김구림 : 대부분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캔버스에 연도가 적혀 있잖아요. 그걸 보고 사람들은 작품이 몇 년도에 제작된 건지 알 수 있고요. 그런데 내 작품은 그걸 보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언제나 변모되어 왔기 때문이죠. 50년대부터 지금까지 내 작품은 늘 변해왔어요. 그래서 다양성을 가지게 됐고요.
김구림 : 그러면 50년대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내려온 사람들의 작품은 정체성이 있는 작가인지,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정체성인지,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같이 당연히 변모해 가는 것이 정체성이 없는 작가인지 말이지요.
김구림, <태양의 죽음>, 1964년 作
재료의 구애를 받지 않고 늘 변하는 작업을 하는 것 또한 세월이 지나면 작가만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분명한 것은, 김구림 작가의 작품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아주 보편적이기도 하고, 또한 개인적이기도 하다. 작품이 <태양의 죽음> 시리즈도 그랬다.
김구림 : 1950년대, 나는 군대에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크게 잘못한 게 없어도 매를 많이 맞았어요. 나중에는 하도 맞아서 입원까지 하게 됐죠. 여기저기로 병원을 옮겨 다니다가, 어느 날 산 속에 있는 형편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어요. 처음 가서 놀란 게 뭐냐면 자고 일어나니까 옆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는 거죠. 그때 내 옆에 누워있던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군에 왔는데 병에 걸렸더라고요. 나는 외동아들이라 하니까 자기도 외동아들이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어요.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괜찮아서, 병원에 있을 때 내 앞으로 미숫가루나 설탕이 배달되곤 했어요. 내가 먹으면 다들 먹고 싶어 해서 나눠주기도 했는데, 특히 그 농부한테 많이 줬죠. 어느 날 아침이 되어서 음식이 배달된 걸 먹고 있는데 옆 친구가 늦잠을 자더라고요. 흔들어 깨웠는데, 알고 보니 죽어있더라고요. 기가 막힌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틀 있다가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면회를 오는 거예요. 이 친구는 그저께 죽었는데 누가 면회를 왔나- 하고 대신 나가봤어요. 그랬는데 어떤 할머니가 보따리를 들고 “우리 아들은 안 나옵니까” 이러더라고요.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목이 메어서 뭐라고 했냐면 “아이고, 한 발 늦었습니다. 아드님 그저께 제대해서 집에 가셨는데. 집에 가면 아드님 먼저 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까 내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너무나 슬퍼서. 그 사건으로 인해 내가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충격에 의해서 검은색으로만 작업을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태양의 죽음>이에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김구림 작가는 지난 9월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다. 테이트모던에서 전시를 연 한국 작가는 백남준 이후 김구림이 두번째다.
일반적으로 전위예술은 '현실의 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는 미술'이라 판단하기 쉽고, 같은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구림 작가의 작품 안에는 본인이 직접 들어가서 체험했거나, 언론을 통해 보고 느꼈던 시대상이 녹아들어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리아 난민 사건을 들으며 그가 받았던 충격과 느낌을 '삶과 죽음'에 담아 작품으로 표현했다.
김남수 : 한옥이라고 하면 상당히 퇴락한 공간처럼 관광 코스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현실에 가장 첨예한 문제, 역사의 문제를 붙잡아다가 표현을 하셨잖아요. 그 점에 대하여서는 젊은 작가들이 코를 박고 클로즈업해서 작업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대의 메시지나 정신을 담으려는 실험과 용기가 돋보이는 것 같아요.
김구림 : 아까도 말했지만, 살다보면 내가 경험하는 시대 상황이 나에게 어떤 작품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곤 해요. 요즘 작품에는 보면 시리아 난민과도 같은 사건들이 나한테 충격을 주고. 그리고 앞으로는 또 계속 변하겠죠.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계속 변할 것'이라고 말하는 김구림 작가. 그래서 우리는 더욱 그의 작품을 쉬이 판단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다. 김구림 작가 역시 관객에게 일정한 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작품을 표현할 자유가 있듯이, 관객 또한 자신의 나름대로 작품을 볼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ㅡ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