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남산골기획공연 - 국악, 시대를 말하다

극단 사니너머의 <돌아온 박첨지> 시즌3

글_이은혜

<돌아온 박첨지>시즌3 공연 장면

 

요새 부쩍 요리 프로그램들이 많아졌지요? 오죽하면 먹방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TV만 켜면 간식을 물론 일품요리까지 웬만한 레시피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와 더불어 야식 없이는 긴 밤을 지새울 수 없는 지병과 지방까지 얻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갈고 닦은 전문가의 소중한 비법을 몽땅 전수 받는다는 것은 설레고 신나는 일이지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그분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까지 딸에게 또 며느리에게 고이 전해주었던 비법. 그것은 단순히 요리를 넘어 가족의 삶을 오래토록 지탱해준 원동력이자, 살아있는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죠.  

그렇게 보면, 전통이라는 것도 수많은 세대를 통해 그 명맥을 잃지 않고 전수 되었다는 점에서 한 민족의 삶을 고이 담아 간직해온 산 증인이 아닐까 싶어요. 이름 모를 숱한 선조들을 지나 현재, 우리에게 남겨진 전통문화 하나하나가 결국에는 내 존재를 또 담아내 전수 될 것이라 생각해보니, 새삼스러우면서도 애착이 가는데요?      

 

매력 만점 꼭두각시인형, 박첨지가 돌아왔다!

<돌아온 박첨지> 시즌3 공연 첫부분

대표적인 한국의 전통 예술 스승님의 스승님의 스승님이 전수해주신 전통 인형극 돌아온 박첨지 시즌3 공연이 지난 7월 23일부터 8월 9일까지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에서 열렸습니다. ‘국악, 시대를 말하다’라는 기획 하에 풍자와 해학이 담긴 이야기로 무대를 신명나게 달궈주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탈 많은 세상인건 매한가지! 이런 시대를 한바탕 속 시원한 웃음거리로 만들어주던 사람들! 마당에서, 장터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찾아온 우리들의 소중한 놀이꾼들! 바로 남사당패입니다. 돌아온 박첨지는 남사당패 놀이 종목 중 꼭두각시놀음인데요. 꼭두각시놀음은 민속 인형극으로 특히 노골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특징이 있지요. 이 극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던 민중을 대신해서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돌아온 박첨지>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까요?

 

 

​1거리 박첨지 유람거리

선글라스까지 끼고 신나게 춤을 추는 박첨지 모습

 

첫부분에서는 재담꾼인 박첨지의 팔도 유랑담이 펼쳐집니다. "아는 사람 빼고 다 알 정도로 유명한" 박첨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목이지요. 그나이쯤 되면 뒷방에 편안히 누워 아들 손자 며느리가 가져다 주는 좋은 음식 먹으며 한가롭게 살 법도 한데, 박첨지 할아버지는 조금 다릅니다. 타고난 방랑끼를 멈출 수 없어 이동네 저동네, 이지역 저지역을 떠돌아다닌 거지요. 그런 박첨지의 목소리는 아주 유쾌하고 즐거워 보인답니다. 유람거리에서는 박첨지가 꼭두패에 끼어들어 사물놀이까지 하게 되죠. 놀기의 황제, 자칭 한량들의 조상급 영감탱이와의 첫만남의 재미가 쏠쏠합니다.

 

 

2거리 피조리와 상좌중

피조리에게 들이대는 상좌중들의 모습

 

다음 장면에서는 박첨지의 두 조카딸 피조리들과 상좌중(스님)의 놀이가 펼쳐져요. 은근 슬쩍 여인네의 가슴을 매만지는 상좌의 음탕함이 웃음을 자아내죠. 타락한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해요. 해탈을 하기 위해 도를 닦아야 할 젊은 중들이 해탈은 커녕 일탈만 일삼고 있으니 말이에요. 상좌중들을 서로 티격태격 하면서도, 어여쁘고 젊음 여인네들만 나타나면 또 헤롱헤롱 정신을 못차립니다. 스킨십의 수위가 꽤 짙어서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들은 '깜짝' 놀라기도 했던 대목! 하지만 아이들은 좋아서 '깔깔깔' 웃기만 했다지요. ^^ 요 상좌중들은 결국 '벌거벗은 상남자' 홍동지에게 혼이 나서 쫓겨납니다.
 

3거리 꼭두각시 (박첨지의 본처)

박첨지와 꼭두각시

“어따 대고 못생겼다 그러냐? 절세미인 본처 두고 첩이랑 놀아나다니~ 세상아 허망이로세~”

박첨지의 본처 꼭두각시의 한 섞인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남편을 찾아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니며 조강지처의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죠. 곰보자국 가득한 얼굴을 하고 다녀도, 그래서 사람들이 "못생겼다 못생겼다" 놀려도 자존감 하나는 최고! 오매불망 찾아다닌 남편 박첨지가 '작은 마누라' 덜머리집을 얻었을 때에도 결국엔 인사 한 번 나누세~ 하고 먼저 손을 내밀지요. 물론 한 성깔 하는 덜머리집이 위아래 없이 꼭두각시에게 싸움을 걸어 쫓겨나긴 하지만요.

​꼭두각시 거리는 박첨지와 처첩간의 갈등을 보여주며,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를 비판하고 있어요. 남성의 횡포를 묘사하는 모습이 압권입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꼭두각시가 태어났다면, 어땠을가 싶기도 해요. 저 근성과 아량을 가지고, 사업이라도 하나 크게 벌리지 않았을까요? ^^

 

 

4거리 이시미

공공의 적 이미시

이어 공연에 등장하는 최고 악당을 소개합니다. 바로 이시미랍니다! 용이 되려다 실패한 구렁이 이시미는 박첨지의 조카딸 피조리, 홍백가, 꼭두각시 등을 차례대로 잡아먹어버려요. 이시미의 잔인함에 약간의 충격이 있었지요. 심지어 주인공 박첨지도 죽을 뻔 하는데,홍동지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요. 이시미를 물리치는 홍동지의 힘이 잘 드러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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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거리 평안감사의 사냥 놀이

평안감사의 매사냥 놀이 장면

 

이어지는 거리는 새로 부임한 평양감사가 꿩사냥을 하는 거리로, 매와 꿩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부패한 양반에 대한 조롱을 전면전으로 보여주죠. “내 30년 고시원 독방살이에 부모허리 다 휘어놓고? 드디어 평안감사로 부임하였다. 이제 해먹을 일만 남았구나. 껄껄껄!” 오늘날의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지 않나요? 탐관오리 평양감사는 결국 개미에 물려 저세상으로 갑니다. (개미에 물려 죽는 권력가라... 발상이 재미있죠!)

참고로 이번 공연에서 평안감사는 특이하게 '낙타'를 타고 등장합니다. 낙타라... 2015년 우리사회의 큰 이슈로 떠올랐던 메르스 사건이 떠오르네요. ^^;

    
 

6거리 평안감사 상여 거리

평안감사의 상여가 지나가는 장면

 

나오자마자 저승길로 떠난 평양감사의 상여거리. 실컷 매사냥을 마치고 낮잠을 자다가 개미에게 불알이 물려 죽어버렸다는 슬프고도어이없는 전설의 주인공이 된답니다. 탐관오리의 종말에 대한 본보기가 무서우면서도 허망하죠. 하지만 왠지 속이 시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장면에서 평안감사의 아들로 나오는 상주는, 겉으로만 슬픈 척 하고 나중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생각에 신이 난 패륜아로 등장합니다. 양반들의 허례허식과 무너진 도덕성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어요. ​ 


 

7거리 절 짓고 허는 거리

절을 짓고 관객들로부터 시주를 받는 상좌중들의 모습

 

절을 짓고 허무는 장면이 사실 조금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민중들의 신앙과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거리들과 연결이 되요. 재미있는 점은 관객들을 무대 위로 불러내어 직접 시주를 하게 한다는 것인데요.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민중들의 실제의 삶을 기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답니다.

<돌아온 박첨지> 시즌3 공연 장면

한국 유일의 전통 인형극, 돌아온 박첨지 시즌3 공연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인형들은 흥겨운 노래와 연주, 탈춤과 재담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친숙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특별히 이번 공연에서는 상모나 버나를 돌리기 등, 풍물놀이가 중간 중간 적절하게 섞여 더욱 신명나는 놀이판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극 말미에는 극단 사니너머의 단원 한분 한분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요. 요즘 같이 새로움을 과하게 추구하는 시대에 여전히 꿋꿋하게 전통을 전수받고, 또 전수해가는 모습들이 너무 멋지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고된 연기에도 지치지 않는 단원들의 생기 넘치는 눈빛을 지켜보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그만큼 끈질기고 생명력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매력만점 박첨지 영감탱이!

곧 또다시 돌아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