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 가곡

 

정통한 세대를 잇다 ‘여창가곡 두바탕’

다시 재현하는 ‘가곡의 품격’

  글_이소영

 

조선시대 상류층이 향유하던 음악, 가곡

일반적으로 ‘한국의 3대 성악곡’을 꼽을 때에는 판소리와 범패, 가곡을 이야기 한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가 짝을 이루어 하나의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장르이고, 범패는 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불교음악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행해지던 판소리와, 다수의 신자를 확보했던 종교의 음악인 범패는 대중에게도 친숙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성악곡인 가곡은 판소리나 범패에 비해 대중에게 퍼지지 못했다. 이유는 가곡이라는 장르가 일부 상류 계층의 사람들만 즐기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가곡은 다른 정가에 비해 세련된 멜로디와 고도의 예술성을 지니고 있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가객들을 통해서 전수되어 왔다.

 

 

시조와 가곡 구분하기

같은 시조를 부르더라도, 시조와 가곡은 구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출처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

가곡은 시조에 음악을 붙여 부르는 정가(正歌)다. 물론 시조 역시 그 자체에 간단한 음을 붙여서 부를 수 있는 시절가요였다. 다만 가곡은 잘 지어진 시조를 음악적으로 더욱 치밀하게 구성한 것이다. 그래서 시조와 가곡은 같은 정가에 속하면서도 차이점이 뚜렷하다. 먼저 시조의 형식이 초장∙중장∙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가곡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구성 안에는 반주인 대여음(大餘音)과 간주인 중여음(中餘音)도 갖추고 있다. 시조에서 중요한 것이 가사전달이라면, 가곡에서 중요한 것은 가사전달이 아닌 노래를 잘 하는 것, 즉 음을 잘 뽑아내는 것이다. 시조는 누구나 쉽게 지어 부를 뿐 아니라 별다른 악기가 없어도 손 박자를 치며 즐길 수 있었지만, 가곡은 현악기와 관악기의 반주를 갖춰놓고 부르는 고급음악이었다.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지는 여창가곡 두 바탕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에 참가하는 네 명의 가객들. 왼쪽부터 김영기, 강권순, 김윤서, 박진희

11월 26일(목),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전통 가곡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여성 가객들이 무대에 선다. 일반적으로 가곡은 남성이 부르는 남창(男唱) 26곡과 여성이 부르는 여창(女唱) 15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남창 26곡과 여창 15곡을 각각 한바탕이라 부른다.남창은 풍부한 울림과 깊은 소리가 특징이라면, 여창은 고음의 가냘픈 소리를 특징으로 꼽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영기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와 중요무형문화제 제30호 가곡 이수자인 강권순과 김윤서, 그리고 박진희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이수자 등 네 명의 여성 가객이 여창가곡 두 바탕을 부를 예정이다. 젊은 창자에서부터 경지에 오른 명(名)가객으로 구성된 출연진인 만큼, 관객들 역시 가곡의 다채로운 표현과 다양한 특성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곡, 제대로 감상하는 법

가곡의 반주악기로는 거문고·대금·세피리·해금·장구가 원칙적으로 사용되며, 별도로 가야금과 단소가 추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곡을 더 잘 듣는 법도 있을까. 대체로 가곡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얼마 못가서 지루함을 느끼거나,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 가사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실제로 가곡은 단어 하나를 긴 장단으로 뽑아내는 영언(永言, 길게 끌면서 하는 말)의 형식을 갖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아도 정작 가사는 몇 단어 부르지 않은 상태가 된다. 하여, 가곡에 있어서 가사를 전달하거나 알아듣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 가곡을 들을 때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가객이 뽑아내는 음의 변화, 즉 소리의 예술성이다. 가객의 음정과 음색 뿐 아니라 가객과 악사들 간의 호흡도 훌륭한 가곡을 좌지우지하는 요소에 속한다. 완성도 높은 가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객과 악사들이 서로 밀접하게 만나서 자주 호흡을 맞춰보아야 한다.

 

가곡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팁이 있다면, 가곡의 바꿀 수 없는 법칙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시조의 필수 법칙은 종장의 첫 3자 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이 3자의 법칙이 가곡에서도 적용된다. 총 5장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가곡은 시조의 초장을 1, 2장에 나누어 부르고, 중장을 3장에 부르고, 마지막 종장을 4, 5장에 나누어 부른다. 이때 4장에는 시조 종장의 첫 3글자만 부를 수 있다. 26박이나 되는 긴 장단 안에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세 글자만 불러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가곡의 형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이다.

  
 

가곡을 감상하는 일, 그 힘겨움과 즐거움에 대하여

가곡을 부르고 있는 김영기 가객 
 

예나 지금이나 대중에게 가곡은 지루하고 어려운 음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곡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가사전달이 중요하지 않은 가곡의 특성으로 인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평가가 있다.

천재현 예술감독은 “가곡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음악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은 된장의 깊은 맛을 아는 그런 정도의 일은 될 것”이라고 했다. 마치 지리산을 종주한 듯한 기분. 처음에는 힘들고 온갖 잡생각이 들어도, 산을 경험한 후에 찾아오는 감동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