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 - 음악과 문화의 원형 ‘바리’

무대에 올라온 굿  “오, 나의 귀신님”

글_이소영

왼쪽부터 이상순, 이장단,김동언 무녀 



시대의 무녀들, 서울남산국악당 무대에 오르다

남산골한옥마을은 11월 7일(토)부터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을 진행한다. ‘귀한 음악’은 우리가 지키고 계승해야 할 한국 음악의 원형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귀하디 귀한 한국음악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로 무대를 장식할 귀한 음악은 굿이다. 누군가에게는 굿이‘국악’에 포함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 수 있다. 물론 굿의 정체성은 예술이 아닌 무속신앙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굿이 지닌 종교적 신념은 지금도 유효하다. 문화재로서의 굿은 그 안에 들어있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정신 뿐 아니라, 굿판을 만들고 진행하는 데에 들어가는 장식과 음악, 전승하는 주체의 기교와 예술성에 대한 가치에 집중한다.

 

굿은 크게 산 사람의 복을 비는 재수굿과,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는 오구굿으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망자를 천도하는 굿은 지역에 따라서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서울에서는 진오기굿, 동해안에서는 오구굿, 그리고 전라도에서는 씻김굿이라고 한다. 이번 공연에 올라갈 굿 시리즈에서는 이상순 무녀의 ‘서울새남굿’과 이장단 무녀의 ‘남도씻김굿’, 김동언 무녀의 ‘동해안오구굿’ 등 서울∙전라도∙동해안 등지의 지역별 굿을 차례대로 만나볼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 국악으로서의 굿과 문화재로서의 우리 음악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다.


 

서울에서 가장 장엄한 굿, 서울새남굿 ‘이상순’

​* 이상순의 서울새남굿 : #신내림을 받은 강신무, #국가적인 차원으로 행해지던 서울굿, #규모가 큼

굿을 하고 있는 이상순 무녀
 

이상순 무녀는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신내림을 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신내림을 받을 기미가 보여(무병(巫病)을 앓아) 바깥출입이나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스무살이 되어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의 반대로 얼마간 무업(無業)을 중단했으나, 터져 나오는 신기(神氣)를 억누르지 못해 다시 무녀가 되어야 했다.

    

본격적으로 무녀의 길에 들어선 그녀는 여러 스승을 만나 서울굿의 다양한 면면을 배웠다. 영천의 신박수와 옥순이에게는 바리공주를,이지산에게는 천신굿을, 박종복에게는 새남굿을 배우는 식이었다. 스승마다 잘하는 분야가 달랐기 때문에 그녀 또한 여러 스승을 섬긴 것이다. 그런 열심 덕분에 집안이 대대로 무업을 이어온 세습무가 아니었음에도, 서울굿에 대한 의식과 기예를 깊이 있게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반평생이 넘는 길을 꾸준히 걸어왔고, 1996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 서울새남굿 교육보조자를 거쳐 2007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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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새남굿의 예술성

서울새남굿 모습

기획공연 <귀한 음악>의 첫 순서를 맡은 이상순 무녀는 본래 이틀에 걸쳐서 진행되는 서울새남굿의 전 과정을 6시간으로 압축하여 실연한다. 서울새남굿은 집안의 복을 기원하는 재수굿 ‘안당사경치기’와 망자를 극락으로 천도하는 ‘천근새남’을 겸하는 굿으로, 궁중에서 행해지던 굿의식이라 다른 씻김굿에 비해 장대하고 깊이가 있다고 한다. 보통 서울새남굿을 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상순 무녀가 처음 서울새남굿에 서게 된 것도 무녀가 된지 20여 년이 지나서였다. 그만큼 갖춰야 할 기술과 기교가 많은 것이 서울새남굿이다.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굿을 행할 때 부르는 대사와 박자, 리듬, 옷과 무구(巫具) 등 전 영역에서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상순 무녀는 “바리공주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은 가사를 관중이 들을 적에 가사며, 박이며, 음정이 제대로 들리도록 하는 것”이 진짜 예술성 있는 굿이라 말했다.

  
 

남도굿의 살아있는 역사, 남도씻김굿 ‘이장단’

이장단의 남도씻김굿 :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세습무, #섬 문화와 육지 문화를 아우름, #남도지역 예술의 원형

굿을 하고 있는 이장단 무녀
 
이장단 무녀는 남도의 섬 굿과 육지 굿을 모두 연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무녀로, 대중에게는 크게 알려진 적이 없으나 남도지역과 학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주목받고 있는 무녀다. 그녀는 진도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에 남편 박영태를 만나 결혼을 했다. 사실 무업을 이어온 집안은 이장단 쪽이 아닌 박영태의 집안이었다. 어머니에서 딸로, 혹은 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세습무 집안의 특성으로 인해 집안의 무업을 받은 사람은 이장단이었다. 때문에 반대도 많았던 결혼. 이장단 무녀는 남편과 함께 영암 신북으로 도망을 쳤고, 그곳에서 당숙 할머니 최씨에게 처음으로 굿을 배웠다. 춤도 따라하고 굿 대사도 외우고, 굿판에는 징을 갖고 쫓아다녔다. 그렇게 현장에서 남도굿을 몸에 익힌 후에 장흥 용산면 계산리에서 처음으로 혼자 굿판에서 생일굿을 진행했다.

 

이장단 무녀와 박영태 악사는 결혼 후 진도에서 영암으로, 영암에서 장흥으로, 장흥에서 강진으로 와서 17년을 살다가 현재 광주로 거처를 옮겼다. 섬과 육지를 넘나들며 떠돌다시피 살아왔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에 진도의 섬굿과 남도의 육지굿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그녀가 이번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에서 선보일 굿 또한 육지굿인 바리데기 굿을 포함한 남도굿의 주요 굿거리들이다.

  
 

망자의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씻김굿

남도씻김굿 모습

씻김굿은 말 그대로 죽은 이의 부정을 씻겨주어 극락으로 천도하는 전라남도 지방의 굿이다. 굿 안에 들어가 있는 ‘씻김’이라는 핵심 거리가 굿 전체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굿은 총 10개의 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성주신에게 굿을 하게 된 연유를 아뢰는 안당을 시작으로 조상신을 모셔서 자손을 축복하는 선부리, 생명과 자손을 관장하는 제석신에게 드리는 제석굿, 망자 천도를 위한 오구굿이 진행된다.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넋풀이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을 풀어주는 고풀이, 씻김이 진행된다. 씻김 거리에서는 망자의 육신으로 간주되는 ‘영돈’을 말아서 향물, 쑥물, 맑은 물에 차례로 씻어내면서 망자의 천도를 비는 무가를 부른다. 씻김이 끝나면 망자의 넋을 운반한다는 넋당석을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을 상징하는 긴 무명 천인 길베에 띄워 길닦음을 하고, 이후 굿을 마무리하며 잡귀를 돌려보내는 중천과 사자풀이가 펼쳐진다.

 

이장단 무녀가 이야기하는 남도씻김굿은 다른 지역 굿에 비해 음악적인 기예가 뛰어나다고 한다. 연극성과 서사성은 최대한 지양하고 음악성에 집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거리에서도 다양한 장단이 수시로 들어가 있어 연주가 어렵고, 기교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굿이다. 이번 공연의 경우, 소리에 있어서도 이장단 무녀 특유의 개성이 돋보인다. 그녀가 내는 성음이 그렇다. 보통 굿을 할 때 내는 소리는 힘을 뺀 채로 소리를 내는 '어정성음'을 낸다. 판소리처럼 힘 있게 지르는 '패기성음'과 대비되는 성음으로, 소리와 대사가 계속 이어져가면서 어느 한 부분에도 힘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장단 무녀의 경우, 어정성음 뿐 아니라 판소리에 가까운 패기성음을 모두 사용한다. 굿판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경우다.

 

동해안의 마지막 무녀, 부산기장오구굿 ‘김동언’

김동언의 동해안오구굿 : #동해안을 대표하는 세습무 집안, #화려한 장단의 향연, #오구굿의 핵심거리 바리데기 굿

김동언 무녀
 

김동언 무녀는 동해안별신굿의 초대 인간문화재 故김석출 명인의 셋째 딸로, 4대째 집안의 무업을 이어가고 있는 동해안별신굿의 세습무녀이자 현재 부산기장오구굿 예능보유자다. 김동언 무녀는 이번 기획공연 <귀한 음악>에서 동해안오구굿의 발원굿(바리데기굿)을 선보인다. 동해안의 발원굿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딸이 저승에 가서 약물과 꽃을 꺾어와 죽은 부친을 살려낸다는 바리데기 신화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리로, 이번 공연은 3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이때 무녀는 머리에 종이꽃 한 송이를 꽂고 한 손에 손대를 들고 무가를 부른다. 한 굿거리가 끝날 때마다 여러 지옥을 면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지옥가를 부르고, 고삼염불 왼 후에는 신태집 무(舞)를 춘다. 신태집 무는 망자의 넋이 담긴 신태집을 들고 추는 춤으로, 망자의 넋을 위로함을 춤으로 승화시키는 의미가 담겨있다.신태집 무가 끝나면 오구굿의 모든 거리를 마치는 길가름이 시작된다. 길가름은 하얀 천으로 만들어진 뱃줄을 길에 늘어뜨리고 망자의 넋이 담긴 신태집을 뱃줄에 실어 극락 가는 길을 닦아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지난 7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오구굿을 마친 김동언 무녀와 일가족들
 

음악적으로 볼 때 동해안의 굿은 보통의 굿판에서 사용되는 삼현육각(두 개의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이 각각 하나씩 편성되는 풍류)이 아닌 타악기 위주의 무악이 주를 이룬다. 또한 예로부터 마을 단위의 별신굿이 연행되어진 덕에 굿에 있어서 화려한 퍼포먼스가 발달했다. 게다가 이번에 김동언 무녀가 선보이는 발원굿은 그녀가 지난 2012년에 공연한 심청굿과 2013년에 선보인 성주굿에 이어,동해안의 대표적인 굿의 원형을 선보이는 ‘완창 프로젝트’의 마지막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동해안의 마지막 무녀’ 김동언을 통해, 이번 공연에서 동해안 무속의 원형과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일반 시민들도 참여하는 오구굿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에서 펼쳐지는 굿 시리즈 공연에서는 각각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굿의 주인공 10여 명을 모집하여 망자를 위한 굿을 진행한다. 가족이나 지인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의 생년월일과 옷, 사망일자 등 자세한 정보를 모두 받아 실제로 (망자를 천도하는) 오구굿을 진행할 예정이다. 굿의 거리만 보여주는 공연이 아닌, 특정한 영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굿의 형식에서부터 정신까지 전통문화로서의 원형을 구현하게 된다. 망자의 가는 길을 돌보고자 하는 산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굿판에 선 사람들과 굿판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마음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본다.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 굿 시리즈 공연일정

이상순 - 서울새남굿 : 2015. 11. 07(토) 13:00

이장단 - 남도씻김굿 : 2015. 11. 14(토) 15:00

김동언 - 동해안오구굿 : 2015. 11. 21(토)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