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 - 서울새남굿
나라의 태평 그리고
당신의 평안함을 위하여
이상순의 큰 굿
글_이소영
11월, 서울남산국악당의 기획공연으로 올려지는 첫 무대는 만신 이상순의 ‘서울새남굿’이다. 서울새남굿은 오직 서울 사대문 안에서만 행해지던 굿으로, 한 번 시작하면 이틀은 족히 걸리는 큰 규모의 굿이다. 이번에 국악당에서 새남을 선보일 무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 서울새남굿 예능보유자인 이상순 무녀다. 공연이 있기 1주 전,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이상순 무녀의 집에 찾아가 보았다.
굿 중의 굿, 꽃 중의 꽃
서울새남굿을 진행중인 이상순 무녀
이상순 : 서울새남굿은요. 우리 서울 지방에서만 하는 거야, 서울 사대문 안에서. 부유층이나 고위층이. 옛날부터 한양에는 금성당이라는 데가 있는데, 대궐의 옹주나 임금님, 그리고 중전이 돌아가시면 상궁 나인들이 거기 나와서 새남을 하고 그랬어요.
그러나 이상순 무녀가 처음부터 서울새남굿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나이 열 다섯 살, 처음으로 신내림을 받았을 때는 서울이 아닌 이북 굿으로 신이 내렸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을 하던 중,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이 한양이니까 서울의 법칙을 따라야겠다고 다짐한 것. 이후 이상순 무녀는 서울 곳곳에 있는 실력 있는 만신들을 스승으로 모셨다.
이상순 : 모셔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니까 재미가 있어 너무. 하면 할 수록 깊이가 있고. 악사 분들이 새남굿 끝나고 점심들 잡숫고 사신당에 나와서 앉아계시면 “참 이 서울새남굿은 이걸 문화재 만들어야지, 안 만들며는 이거 참 너무 허무한 거”라고, “굿 중에 굿이고 꽃 중에 꽃인데 맨들어야 된다”고 하시곤 했어. 정말 문화재를 맨들려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 그런 소리를 듣고 제가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새남굿 하시는 선생님들만 따라댕기면서 공부하고, 새남굿을 이제 집 2층에다 채려놓고 매일 연습도하고. 그래가지고 새남굿의 매력에 빠져서 막 하노라니까 남이 안하는 재주도 선생님들이 가르쳐주고 그랬어요. 이 신의 복은 참 많은 사람이에요 제가.
이상순 무녀는 이번 공연에서 서울새남굿의 전 거리를 6시간에 걸쳐 선보인다.
본래 서울새남굿은 집안의 복을 기원하는 재수굿 하루, 망자를 천도하기 위한 오구굿 하루를 합해 이틀 동안 진행되는 장엄한 굿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새남굿의 모든 거리를 구현하되, 이를 6시간으로 압축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이틀 동안 이어지는 거리를 6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이상순 무녀는 “했던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이상순 : 옛날에는 새남굿을 구경만 한번 해도 극락을 간다는 거야. 새남굿이 그만큼 귀하니까. “아유 새남굿 어디서 한 번 하면 우리 구경이라도 좀 갔다 옵시다” 그랬지. 그도 그럴 것이, 인제 와서 보면 경문 소리가 다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좋은 일만 하자, 부모에 효도하자, 나라에 충성하자 하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새남굿을 보기만 해도 극락을 간다고들 한 거지. 그러니까 “난 두 번도 싫고 한 번만이라도 큰 만신이 새남굿 하는 것 좀 봤으면 좋겠다”고 그랬어.
최고의 정예멤버가 선보이는 서울의 대표 굿
서울새남굿 중 '본향거리' 모습
대부부의 굿이 그렇지만, 서울새남굿은 특히나 규모가 크고 웅장해서 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마치 절에서 영산재나 수륙재를 지낼 때와 비슷한 규모였다. 때문에 주로 궁중에서 진행되는 일이 많았고, 개인이 한다 하더라도 주로 재력 있는 부자들이나 고위층에서 새남굿을 신청하곤 했다.
이상순 : 새남을 하면 거기 들어가는 게 많아요. 홍합도 들어가고 해삼도 들어가고 또 저승사람과 이승사람이 만난다 해가지고 송로도 사서. 뭐 정말 서울새남굿은 구경만 해도 좋은데 간다는 게 옛날 어른들 말씀이에요. 그만큼 참 의미가 깊죠.
물론, 규모가 크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만이 서울새남굿의 특징은 아니다. 이상순 무녀가 이야기하는 서울새남굿의 빠질 수 없는 핵심거리는 ‘중디밧산’이다. 중디밧산은 서울새남굿을 구성하는 거리 중 하나로, 만신(강신무)이 장고를 두드리며 망자의 혼신이 안정되도록 염불로 기원하고 망자를 천도시키는 지장보살님에게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절차다.
이상순 : 중디밧산은 8.15 해방 전에 나온 건데, (요즘처럼) 스님이 오셔서 같이 허는 건 해방 이후부터의 모습이야. 스님하고 같이 안 해도 중디밧산을 하며는 저승의 신들이 오셔가지고 망자를 잘 모셔간다고 해. 이 중디밧산이 긴 것은 아니지만, 중디밧산을 안하며는 새남이 허사야.
이상순 무녀는 서울새남굿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종합예술'이라고 말한다. 무교와 불교, 유교의 제사 등 모든 의식이 가진 형식미와 예술성의 총체가 서울새남굿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에서 선보일 서울새남굿에서는 최고의 무당, 최고의 악사들로만 구성된 정예멤버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상순 무녀는 "사람들에게 진짜 굿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의 종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줘야"한다고 말했다.
비는 마음, 착한 마음으로 하는 굿
서울새남굿 중 '조상거리' 모습
최근에는 무속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면서 굿을 찾는 이들도 많이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굿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절차에 대한 지식도 없는 게 사실이다. 이상순 무녀에게 오늘, 우리가 굿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이상순 : 그게 인제 굿을 하는 건 순전히 조상님을 위하는 거야. 말하자면. 조상님들이 집안이 편하려면 조상님들이 편해야 하고 가족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이제 그렇게 화합하라고 기도하는 거고. 이제 또 일 년에 한 번씩 두 번씩 햇곡이 나오면 하고 꽃이 피면 하고, 나라 국가 태평하라고 우리 만신들은 굿을 헐 적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서 하는 거야. 국태민안.
이상순 무녀는 작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위한 굿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제대로 된 굿을 열기 위해, 자신의 사비도 아낌없이 보태가며 준비한 자리였다. 사심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굿을 했던 이유는 그 굿이 향하는 소원 때문이다. 국태민안. 이상순 무녀는 나라의 태평함과 백성의 안녕을 위해 굿을 하는 것이 만신들의 진정한 사명이라 믿는다. 해서 그녀가 굿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마음도 ‘욕심’이 아닌 ‘착한 마음’이다.
이상순 : 요새는 굿을 옛날보다 확실히 몰라. 옛날 노인네들을 굿을 하면 “아이고, 불사 놀았으니까 도당 바르지”, “조상 놀아야 대감 놀지” 이런걸 아셨는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이걸 모르고 자기 답답한 것 때문에, 소원 들어달라고 굿을 해요. 자기가 그저 착한 마음으로 집안 편안하게 해달라고 자진해서 허는 사람은 몇 안 돼. 그러니까 비는 마음. 착한 마음. 비는 마음 착한 마음이래야 굿을 하는 거지. 그거를 뭐, 굿을 하면 금방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그런 건 참된 자세가 아니에요.
이상순 무녀는 이번 공연에서 일반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망자를 위한 굿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이상순 : 그러니까 이제 이번 공연도 국태민안하고 풍년들라고, 그런 의미에서 하는 거죠. 그러고 만 백성들 뭐, 요번에 지나간 유행병 응 메르스. 메르스 병 같은 거 안 돌게 해달라는, 그런 마음이 있죠.
이상순 무녀는 이번 공연에서 일반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망자를 위한 굿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하루, 죽은 사람을 위해 하루를 드린다는 서울새남굿. 이상순 무녀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새남굿을 보신 분들은 하시는 일이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잘 될 것이고, 또 돌아가신 망자님들은 좋은 데로 가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새남굿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이상순 무녀. 굿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착한 마음, 비는 마음을 안고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