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4호   山:門 FOCUS

전통예술의 미래를 위한 현재

남윤일_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
그림김희연_일러스트레이터
발행일2020.12.08

전통예술 분야에서 창작 실험 지원이라는 것이 표면화된 지는 상대적으로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남산국악당의 ‘젊은국악 단장’이 2년 전 그 첫 선을 보였고, 최근에는 전통예술 창작자를 위한 창·제작 공간 ‘전통공연창작마루’가 개관하기도 했다. 이처럼 젊은 전통예술 창작자에 대한 지원이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작업에 밑거름이 되기 위한 지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질문하게 된다. 이에 이미 10년 넘게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창작 실험의 장을 펼쳐오고 있는 ‘두산아트랩’의 PD가 짚어주는 주요 지점들을 참고해볼 만하다.

실험을 위한 최초의 질문

젊은 예술가의 실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을 짚어보기에 앞서 새삼 돌아보게 된다. 두산아트센터와 함께한 협업 창작자와 작품 중에 이자람과 <사천가>가 떠올랐다. 이자람은 2008년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각색해 창작 판소리 <사천가>를 선보였다. 이듬해 오디션을 통해 2명의 소리꾼을 발굴하고, 소리를 전수하여 트리플 캐스팅으로 공연을 구성했다. 판소리 장기 공연 방안을 마련함과 동시에 판소리 레퍼토리로 안착, 전통음악의 현대화와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는 국악계에 고무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자람은 동시대 판소리는 무엇이고,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탐색한다. 창작에 대한 질문과 실험, 시도와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메소드를 발전시킨다. 2014년에는 ‘판소리가 2시간이 넘는 긴 이야기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요섭의 단편소설 <추물>, <살인> 2편을 각 1시간 분량의 단편 판소리를 창작해 옴니버스로 구성하며 2014년 2월 ‘두산아트랩’을 통해 쇼케이스로, 그해 11월 정식 공연으로 선보였다. 판소리 단편선_주요섭 <추물/살인>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창작의 시작점에 있는 치열한 고민과 집요한 질문은 창작자의 예술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고, 역량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 김희연

젊은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지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원 프로그램 기획자는 창작자가 당초 목표에서 방향을 잃었거나 목표를 재설정할 경우 조력자가 되거나, 향후 작품 발전을 위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는 등 다양한 역할 수행이 요구된다. 두산아트센터는 비영리 민간 제작극장으로, 예술가의 공연예술 시장 내 위치와 성장 단계에 따라 단계별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자 했다. 창작자를 고려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창작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제작극장과 창작자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관계성을 고려했다. 제작극장은 창작자 지원을 통해 공연콘텐츠를 마련하고, 창작자는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과 환경을 지원받으며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모색한 것이다. 공연예술계 진입 단계의 젊은 예술가와 만나는 최전선에는 ‘두산아트랩’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본다.

이자람, 판소리 단편선_주요섭 <추물/살인>, 2014년 11월 20-23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창작자육성프로그램 공연 ⓒ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와 기획자, 그 관계의 시작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한다. 압축적으로 말해, ‘예술가와 좋은 질문을 주고받기’라고 할 수 있다. 창작자의 질문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두산아트랩’의 경우, 창작자 선정 시 서류심사와 인터뷰가 있다. 그 과정만으로 창작자를 온전히 알기에는 부족하여, 되도록 창작자의 공연을 관람하려 노력한다.(당연하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공연 관람은 창작자와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며, 창작자와 기획자 간 소통의 매개가 된다. 창작자의 예술 언어와 미학적 관점이 어떻게 무대화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고 상상해본다. 창작자도 ‘두산아트랩’ 공연을 보며 해당 프로그램이 본인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창작자와 관계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다양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두산아트랩’이라는 실험의 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두산아트랩’은 만 40세 이하의 창작자를 지원한다. 창작자들은 활동 분야, 경험, 인적 네트워크 및 인프라, 창작 노하우와 역량이 각기 다르다. 지원 프로그램 기획자가 처음 만나는 창작자에게 예술적인 조언을 전하는 게 쉽지 않듯이, 창작자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호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섣불리 조언하는 것은 자칫 파트너십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온전히 창작자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수평적 대화로 나아갈 수 있다.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기획자로서 ‘육성’한다는 시각과 표현을 경계한다. 다양한 지원 정책, 제도 및 사업 평가 시 성과 항목이 될 수 있겠지만, 창작 지원 프로그램 소개 시 ‘육성’이라는 표현이 드러나는 것에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젊은 예술가를 수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각을 담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

지속성이 노하우를 만들어

일러스트레이션 ⓒ 김희연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운영 주체에 따라 사업의 목적 및 방향이 미묘하게 달라 일괄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 정체성과 운영 노하우가 축적된다. ‘두산아트랩’은 국내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중 단일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10년 이상 지속된 프로그램이다. 매년 1~3월 시행하여 자연스럽게 시즌성도 확보했다. 쇼케이스, 워크숍, 낭독 등 미니멀하고 캐주얼한 형식으로 창작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한다. 창작자 소개와 더불어 창작 아이디어를 관객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장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평론가, 기자, 제작자, 일반 관객이 주요 관객층이며,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관객과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두산아트랩’은 중복지원이 가능하다. 유사한 성격의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창작자도 지원 가능하며, ‘두산아트랩’에 참여 경험이 있더라도 재지원이 가능하다. (명확한 발전 계획이 있다면 동일 작품으로 다시 지원할 수 있다) 이는 민간이 지원 주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공공부문은 지원의 공정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다른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이라는 창작 거점은 사업의 정체성 형성과 지속성, 안정성의 측면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서울남산국악당의 ‘젊은국악 단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두산아트랩’을 발전시켜 두산아트센터 기획 프로그램으로 편성하듯이, 서울남산국악당도 신진 예술가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해당 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편성할 수 있고, 창작자도 극장의 프로그램 성격에 맞게 창작의 다음 행보와 공연콘텐츠에 대해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창작자와 제작극장의 파트너십 발전 가능성에 대해 시사하며, 공연 콘텐츠 개발에 대한 새로운 모델로 제시될 수 있다. ‘젊은국악 단장’의 경우, 연구 및 창작 지원 단계가 세분화되어 있으며, 연구-창작 지원 단계를 8개월로 설정하여 창작자와 프로그램 간의 관계 형성과 교육적 기능에 집중하고 있다.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이후의 후속 지원을 모색할 수 있는데, 앞서 말한 정식 공연화와 레퍼토리로까지의 발전이다. 이러한 개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은 창작자와 극장 모두에게 노하우로 축적되며 궁극적으로 다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상설 공연으로 레퍼토리화, 국내외 투어링, 축제 및 아트마켓 참여 등으로 유통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 

박현미 <한국춤 101: 숨>, 2020 젊은국악 단장 쇼케이스 ⓒ 서울남산국악당

창작 지원의 마지막 단계인 포스트프로덕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작자 간의 자발적인 화학작용과 상호교류가 발생하기도 하며 적극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경우 창작자들이 상호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 젊은 창작자의 작업에 대한 아카이빙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신진, 신작은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일반 관객의 관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카이빙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창작자와 작품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대중의 감상과 전문가의 평가도 아카이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창작자는 이러한 평가를 통해 창작에 대한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공연예술의 새로운 창작 경향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새로운 담론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두산아트랩’ 공연을 대상으로 비평워크숍을 진행한다. 공연예술 애호가들이 비평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강좌로,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어 창작자에게 전달된다. 이를 통해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도 경험할 수 있다. 

창작자가 다양한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일회적, 단발성 경험인 경우 해당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기 어렵다. 공공과 민간 부문의 다양한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창작 설계를 지속적으로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예술 분야 창작 지원에 대해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젊은 전통예술 창작자는 타 장르의 창작자와 다른 부분이 있다.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창작 판소리가 전통 판소리로부터 비롯되었듯이, 전통예술의 양식 그 자체가 창작의 근간이라는 특성이 전제되어 있다. 창작 영역에 따라 개별적 특성이 존재하지만 전통을 기반으로 한 공연 콘텐츠 창작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전통예술의 원형 및 가치와 현재적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양식을 바탕으로 계승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 둘째, 전통예술에 어울리는 동시대성을 갖춘 이야기를 개발, 발굴하여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형식을 모색한다. 셋째, 연주 관행을 탈피하는 연주법과 다양한 악기 구성을 통해 음악적 실험을 가미한다. 넷째, 다양한 역할의 출연자와 스태프가 참여하는 프로덕션 구성으로 장르의 개념을 확장하며,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공연을 선보이며 변화를 추구한다. 이 네 가지의 전통예술 분야 젊은 창작자들의 실험 경향을 주목한다면 창작자의 니즈를 반영한 정교한 사업 설계가 가능할 것이다. 

문화다양성이 중요시되고 문화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전통예술은 전통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젊은 전통예술 창작자의 성장을 돕는 일에 전통예술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지원 방안, 사례 연구 등 후속 연구가 더욱 활발히 전개되는 데 있어, 이 글이 보탬이 되길 바란다. 

일러스트레이션 ⓒ 김희연
남윤일_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
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로,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여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두산아트랩, DAC Artist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제작극장에서 젊은 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림 김희연_일러스트레이터
HEEHEE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며,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통을 위해 여러 시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인스타그램(@hellobong)과 홈페이지 작업물을 공유하고 있고 콜라보레이션, 온라인숍, 오프라인행사, 서울일러스트페어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번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전통악기 피리와 탈춤의 요소에서 활기와 생동감을 ‘흔들리는 수염처럼’ 혹은 구름의 흐름 등을 통해 나타냈으며, 전통 복장 사이로 내민 양말과 풀속에 보이는 미니백과 같은 재미 있는 요소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전통 문양을 재해석하여 나무와 풀, 꽃, 새 등 자연적 요소에 생동감을 넣어 성장과 지향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여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