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으로 다시 태어난
동시대 판소리
노은실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본질 안엔 ‘판소리’라는 전통의 장르가 자리하고 있지만, 예술 세계는 판소리 너머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판소리, ‘엠비언트 판-소리’다.
이 작품은 기존의 판소리에 대한 인식을 깨부수고, 그것의 정의를 다시 세운다. 판소리란 무엇일까.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가 음악으로 이야기를 엮는 작업이다. 무대에서 소리꾼은 심청이 되기도 하고, 심봉사가 되기도 하며, 용왕이 되기도 한다. 요즘의 판소리는 진화와 변화를 거듭했다. ‘서사’가 중심에 자리했던 판소리는 기존의 다섯 바탕을 뛰어넘어 서양의 고전, 현대 소설로 장르를 확장했다.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 서사를 확보하는 것이 판소리를 동시대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다.
노은실은 상식을 깼다. 그는 “판소리가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는 매너리즘을 타파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은 아예 새로운 장르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은실은 스스로에 대해 “나는 판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현시대의 판소리이지, 판소리와는 ‘다른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리어 “판소리의 원형을 유추했을 때 어쩌면 지금의 형태에 가깝지 않았을까 판단했다”는 것이 이 공연의 출발이었다.
판소리의 구음과 시각적 장치가 어우러져
<엠비언트 판-소리>는 60분 동안 이어진다. 이 시간 동안 나온 여섯 곡은 판소리의 기존 형식과 구성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음악 공연이라 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엠비언트 판-소리>엔 서사가 사라졌다. 구구절절 주고받는 언어의 향연을 채운 것은 구음(口音)이다. 서사가 빠진 판소리는 추상의 형태였으나, 공연에서 선보인 6개의 곡은 ‘음악을 위한 음악’만은 아니었다. 6개의 곡은 각각의 스토리를 안고 있고, 공연은 놀랍도록 ‘공감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