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5호  남산 STORY

놀며 쉬며: 놀이문화의 지속적 변화

장장식_길문화연구소 소장
발행일2021.03.09

놀이하는 인간을 일컬어 ‘호모 루덴스’라고 했던가. 놀이는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한데 우리가 지금 즐기는 놀이문화는 어떤 변모의 과정을 거쳤을까. 우리가 전통놀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으며, 근대 개화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신문명과 함께 놀이는 어떠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쳤을까. 놀이 그 자체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놀이의 문화사가 펼쳐진다.

그때 그 시절의 놀이는 왜 사라졌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노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놀이가 재미없다고 하는 것은 놀아보지 않은 탓이다. 놀아본 사람은 놀이의 효용성을 구체적으로 셈하지 않지만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에 놀이는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놀이도 문화의 하나인지라 시대가 변하면 놀이도 변하기 마련이다. 문화변동이라 할까, 작동하는 외부의 자극에 따라 지속과 변화, 소멸의 길을 걷는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문화현상이다. 외려 변하면서 진지해지고, 바뀌면서 놀이성이 작동된다. 이것이 놀이의 속성이다.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쌍뉵치고>, 24×32.8㎝ ⓒ 국립민속박물관. 기산은 단원, 혜원에 못지 않은 풍속화가로
1900년 이전 유럽에 1,500여 점이 소개된 바 있다.
백제시대부터 놀았고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쌍륙. 서양에서는 백개먼(backgammon)이라 부른다. 필자 제공
근·현대의 놀이문화사에서 지속과 변화에 대한 원인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개화기를 거치면서 일제강점기를 맞고 그야말로 세상은 상전벽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고누놀이, 자치기, 윷놀이, 그네타기, 널뛰기, 씨름, 쌍륙, 투호 등 다양한 놀이가 행해졌다. 하지만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신문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놀이에서도 이 점을 놓칠 수 없다.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놀이는 전개된다.
<태평성시도>, 49.1×113.6cm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작자 미상의 8폭 병풍으로
그네타기, 투호놀이, 윷놀이, 고누놀이 등을 포함한 성 안의 다양한 생활상을 묘사하고 있다.

첫째, 전통놀이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지만 아쉬운 것은 차츰 동력을 잃어가는 양상이다. 윷놀이, 씨름, 고누, 그네, 연날리기 등이다. 둘째, 전통놀이가 갑자기 소멸되는 양상이다. 장치기, 자치기, 투호, 골패, 투전 등이다. 소멸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놀이도구의 출현과 대체 놀이의 출현이다. 이를테면 투전, 골패, 쌍륙 등은 ‘화투’와 ‘트럼프’라는 놀이도구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이때가 19세기 말이다. 또 하나는 교육적 목적을 가진 신문사, 잡지사에서 외국의 새로운 놀이를 소개하거나 개발하여 보급한 탓이다. 시조놀이의 하나인 가투(歌鬪)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투는 시조 전체를 적은 카드(읽는 카드)와 종장을 적은 카드(바닥에 펼치고 찾는 카드)로 나누되 모두 100수를 선정하여 200장의 카드로 노는 시조놀이다. 1922년 윤태오가 만들었고, 194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사에서도 널리 선전했고, 고상한 취미로 여긴 수많은 여성이 대회에 참여하였다. 시조를 부흥하려는 목적에서 보급된 것이지만 이는 일본의 메이지(明治) 중기 이래 정월민속으로 전래한 가투놀이[歌ルタ遊ピ]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가투대회 기사, 조선일보 1928년 2월 18일자, 필자 제공
화가투 ⓒ 국립민속박물관. 1920년대 초부터 1940년대까지 유행하던 놀이로 일명 ‘가투’라고도 한다.

옥돌로 알려진 당구, 순종도 좋아하다

성인놀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당구’이다. 당구는 원래 ‘옥돌(玉突)’이라 불렸는데, 알렌(Horace Allen, 1858~1932, 조선 최초의 선교사이자 의사)의 회고에 따르면 1884년경에 이미 인천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883년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를 적은 <해관세칙(海關稅則)>에 “충구(衝球, 당구공)의 값을 100분의 30으로 관세를 매긴다.”고 했으니 그 이전부터 수입되었음이 분명하다. 순종도 당구를 매우 좋아해서 창덕궁 인정전 안에 ‘옥돌실’(당구장)을 설비하고 즐겼다. 오늘날의 점수로 따지면 150점 정도라니 퍽 잘 쳤던 모양이다. 일제강점기에 외국인들은 옥돌장(당구장)을 여기저기 열었고, 유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당시의 옥돌장에는 옥돌대(당구대)마다 짧은 치마의 신식여성이 배당되어 게임 기록을 맡았다. 이런 역사를 가진 당구는 최근 중·노년층의 인기 있는 놀이로 자리 잡았으나 코로나19 이후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창덕궁 인정전 내의 옥돌실 전경, 18.2×26cm ⓒ 국립고궁박물관. 사진의 상단에 ‘조선 경성 창덕궁 내의 구희실(球戲室)’이란
제목을 달았다. 구희실은 옥돌실과 마찬가지로 당구장을 말한다.
아이들 놀이는 가투처럼 대회로 발전하지 않았으나 신문사는 물론 어린이 잡지사에서 주도적으로 새로운 놀이를 소개하고 보급한 탓에 널리 퍼졌다. 동아일보가 소개한 놀이로는 ‘자마춤딱지ㆍ속담딱지(1938년)’나 ‘고양이 잡기(1931년)’, ‘꼬리잡기(낱말 잇기)ㆍ이야기 밧기(이야기 잇기)(1934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자마춤딱지는 정인승이 고안한 문자 유희의 놀이인데, 한글의 자모 24자를 기본으로 하되 56매의 딱지로 만든 글자맞춤놀이다. 한글 보급을 목적으로 한 교육적 놀이라 하겠다.

놀이에 스며든 일제강점기의 흔적

<어린이>는 1923년 3월 20일 소파 방정환(1899∼1931)이 어린이들을 위해 창간한 월간잡지로
동요· 동화의 창작품을 최초로 수록하였다 ⓒ 대한민국기록관

잡지 <어린이>에 소개된 놀이로는 ‘어린이출세말판’(1927년 1월호)과 ‘명산대천 일주말판’(1928년 1월호) 등을 들 수 있다. 때로는 회사의 홍보 차원에서 만든 놀이 말판도 있다. ‘조선명소승경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는 1935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가 만든 것인데, 목적지인 금융조합본부에 도달한 사람이 일장기를 흔들고 있다. 이런 점을 들어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제작된 것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말판 놀이는 오늘날의 판놀이(Board game)에 해당하는데, 주사위나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끗수에 따라 말을 이동하여 최종 목적지를 빠져 나오는 놀이다.  

조선명소승경도, 54×38.5cm ⓒ 국립민속박물관. 주사위나 윷을 굴려 조선 명소를 유람하는 놀이 기구로, 소화(昭和) 10년(1935) 조선금융조합연합회 발행, 붉은 테두리와 구획을 짓고 조선 13도 명승지의 이름과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
이는 전통적인 승경도(조선 시대에 양반 아이들이 즐겨하던 놀이로 말판에 관직 이름이 적혀 있음)나 승람도(승경도와 비슷한 놀이로,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는 형태의 게임)의 놀이 방식을 따르면서, 일본식 ‘쌍륙’(すごろく)의 영향을 받아 변용시킨 놀이다. 이 놀이는 1970년대 ‘뱀주사위놀이’ 따위로 이어져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판놀이가 워낙 인기가 많았던 탓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출판되어 유통되기도 했다.
뱀주사위놀이, 필자 제공

셋째는 유치원, 학교 교육의 영향과 이주 일본인과의 접촉에 의해 퍼진 놀이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체육 활동의 일환으로 새로운 놀이를 보급하였고, 일상에서는 일본 청소년과의 접촉으로 새 놀이가 자연스럽게 향유되었다. 일례로 피구, 훌라후프, 고무줄놀이, 오재미, 주먹야구, 땅바닥 탁구, 깡통차기, 짤짤이 등이다. 고무줄놀이를 할 때에는 노래를 부르기 마련인데, 이때 일본식 창가를 놀이노래로 불렀다. 내용은 일본 군가가 대부분이다. 놀이하는 가운데 절로 황국신민의 자질을 교육(문부성령 소학교 시행규칙)받는 방식이라는 비판받는 대목이다.

주먹야구는 일명 ‘호무랑’(home run 또는 ‘하블러시’)이라 불렸는데, 고무공이나 테니스공 등을 야구공으로 삼고, 배트 대신 주먹으로 공을 치고 맨손으로 받으면서 즐겼다. 깡통차기는 깡통을 발로 차셔 멀리 보내고 술래가 찾아오는 동안 숨고 찾는 놀이로 흔히 ‘겐또바시’라 불렀다. 숨바꼭질의 근대적 변형이다.

다하지 못한 이야기, 최근에 인기를 끄는 놀이 하나

최근에 와서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놀이가 ‘하노이탑’(Tower of Hanoi)이다. 이 놀이는 세 개의 기둥을 세워놓고 왼쪽 기둥에 놓인 원반들을 오른쪽으로 옮기는 놀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뤼카(Edouadrd Lucas)가 1883년에 처음 고안하였다 하나, 원래 이 놀이는 고대 인도의 베나레스 사원 이야기에 기반을 둔 놀이다. 64개의 원반을 모두 오른쪽으로 옮겨졌을 때 개벽이 온다는 종말론의 신화인데, 64개를 옮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움직이는 횟수는 2의 64제곱-1인데, 1초마다 한 개를 옮긴다 했을 때 2,922억 7천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노이탑, 필자 제공. 이것은 맨 왼쪽의 기둥에 있는 원반 9개를 맨 오른쪽 기둥으로 옮기는 놀이다.(좌측 사진에서 우측 사진과 같은 형태로) 작은 원반 위에 큰 원반을 올릴 수 없다.

그런데 이 놀이는 1914년 잡지 <청춘>(1권 1호)에 ‘고리 옴기기’로 소개되었고, 옮겨야 할 고리 8개의 순서를 차례대로 풀어 놓았다. 누구나 놀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인데, 9개로 늘여 판매되는 오늘날의 하노이탑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필자도 이 놀이를 익히기 위해 ‘열공’하면서 시간을 재보았는데, 9개의 고리를 옮기는 데 10여 분이 걸렸다. 그것도 정신을 집중하면서 말이다. 제법 머리를 개발함직한 수학적 놀이가 분명하다.

<청춘>은 1914년 10월 최남선이 청년을 대상으로 창간한 종합 계몽지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놀이 반대론자 이덕무(1741~1793)는 연날리기마저 “마음을 어지럽히고 학업을 잃도록 한다.”면서 엄하게 금해야 한다(<사소절>)고 했다. 아무렴 그럴까?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 것은 아닐까?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면서, “못 놀아서 안 노는 것이 아니고, 안 놀아서 놀지 못하는” 처지가 돼서는 곤란하겠다.
장장식_길문화연구소 소장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풍수설화의 연구>로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몽골국립대학교 객원교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관을 역임하면서 고려대·경희대·동국대 대학원 등에서 민속학을 강의하였다. 한국의 무형문화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 및 한·몽의 민속문화 비교연구에 집중하여 논문 100여 편과 20여 권의 공·편저를 출간하였다. 현재 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놀이문화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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